'살아서 못한 1위 가수의 꿈을 이뤘다'는 기사 제목이 가슴을 때린다. 2013년 미니앨범 < CODE#01 나쁜여자 >로 데뷔, 2014년 제3회 가온차트 'K-POP 어워드' 여자그룹부문 신인상 수상. 그러나 더 많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곡을 알릴 시간은 턱 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또 한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됐다. 1992년생, 올해 우리나이로 22살. 꽃다운 나이에 걸그룹으로 활동하던 여성 연예인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 멤버 은비(본명 고은비)가 지난 3일 새벽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차량에 동승했던 같은 그룹 멤버 권리세는 4일 오후까지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있다.

경찰 측에 따르면, 레이디스 코드 멤버들은 3일 오전 1시경 대구에서 공영방송 음악 공개방송 녹화를 마치고 서울로 복귀하던 중, 경기도 용인시 영동고속도로 부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량 뒷바퀴가 빠지면서 난 사고라는 초기 보도와는 달리, 경찰 측은 정확한 사고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국과수에 사고 차량의 정밀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이미 사고 차량을 운전한 매니저는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잊을만하면 벌어지는 연예인 탑승 차량의 교통사고. 이미 10년 전이던 2004년 8월, 그룹 원티드의 멤버 서재호 역시 방송을 마친 후 다른 스케줄을 위해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로 숨진 바 있다. 당시 사고 원인이 무리한 일정으로 인한 매니저의 졸음운전으로 밝혀지면서 슬픔 역시 배가 됐었다. 그리고 2014년 9월, 또다시 한 청춘이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신인 연예인,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법 등으로 보호 받아야" 

 레이디스 코드 은비

레이디스 코드 은비 ⓒ 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


연예인 교통사고의 대부분은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려다 빚어진 비극에 가깝다. 이번 레이디스 코드의 사고 역시, (디테일한 상황은 경찰조사가 끝나야 알 수 있겠지만) 공연 직후 서울로 향하던 차량이 빗길을 달리다 일어난 대형사고라 볼 수 있다. 촌각을 다투는 방송과 지방 공연을 소화해야 하는 가수들의 경우, 이러한 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시각을 비틀어 보자면,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할 것이 바로 연예인의 노동자성이다. 어느 직종보다 자기 스케줄을 소화하는 동안 격무에 시달리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리는 이들이 바로 신인 연예인들이다.

이들은 통칭 '행사'라 불리는 무대 공연이 수입의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 살인적인 스케줄로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일이 다반사라 알려져 있다. 레이디스 코드의 사고 역시 바로 이런 환경이 기반이 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비단, 운전미숙이나 빗길 운전을 탓할 수 없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인 연예인이나 연예인 지망생은 장밋빛 꿈을 담보로 반인권적인 상황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연예인, 특히 (성희롱이나 성접대까지 요구받는)여성 연예인들의 노동자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연예인을 연예기획사에서 근무하면서 주어진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로 바라볼 경우 연예인과 소속사 간의 관계는 노동법에 따라 판단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법을 적용하여 이들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할 때는 실질적인 사용자종속 관계를 파악하여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확인하여야 한다.

특히 사업자와의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소수의 스타를 제외한 대다수의 연예인, 그 중에서도 연예인 지망생이나 신인 연예인처럼 자주성과 독립성이 부여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법 등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해석되어져야 할 것이다."

레이디스코드 은비, 하늘나라 가서도 그 최선 멈추지 않기를

 sbs 김성준 앵커 페이스북.

sbs 김성준 앵커 페이스북. ⓒ 김성준 페이스북


신인 연예인들 대부분은 '꿈이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이다. 혹자는 화려함과 돈을 좇는다며 그들의 꿈을 폄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직업으로서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현재의 불편함과 제약을 참고 버티는 중이다. 고 은비와 사돈관계라는 SBS 김성준 앵커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추모글도 이러한 그들의 속내를 잘 보여준다.

"레이디스 코드 데뷔 당시 저와 은비양의 사돈 관계 기사가 난 적이 있어서 기억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사실 저는 당시 기사 내용과는 달리 은비양과 잘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사돈 댁 어린 학생'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유일한 인연이라면 은비양이 '커서 방송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여중생이었을 때입니다. 은비양의 이모인 제 제수씨를 통해 소개 받아서 방송에 대해 궁금한 점을 알려주고 격려의 말을 전해줬던 기억이 납니다.(중략)

오늘 8시 뉴스에서도 이 사고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지 막막합니다. 소소한 인연이었지만 제가 미래를 엿보여주고 용기를 선물하려고 했던 한 어린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한창 꿈을 펼치기 시작하려던 순간에, 미래를 향한 달리기의 출발점 근처에서 엉뚱한 사고로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이 고통스럽습니다.

데뷔시절 기사가 나갔을 때 은비양이 자필 싸인이 담긴 첫 앨범 CD를 보내왔습니다. 거기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꼭 앵커님이 저희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미 자랑스럽지만, 하늘나라에 가서도 그 최선을 멈추지 않기 바랍니다."

그렇게, 미래만을 보고 달리고 또 달리는 신인 연예인들의 현재도 좀 더 안락하고 행복하기를. 꿈을 향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만은 지켜주는 사회가 절실한 지금이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과 권리세의 회복을 빈다.

레이디스 코드 고은비 권리세 연예인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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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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