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 ⓒ 대한축구협회

브라질월드컵 이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차기 감독이 아직 공석으로 남아있는 가운데, 하반기 A매치 일정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9일 베네수엘라(9월 5일)-우루과이(9월 9일)로 이어지는 9월 평가전 일정을 확정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누리집에도 한국의 일정이 공지됐다. 월드컵 이후 한국대표팀이 치르는 첫 평가전이자 차기 사령탑의 데뷔 무대가 될 확률이 높다. 이는 곧 차기감독이 늦어도 8월 초까지는 결정돼야 한다는 의미로 통한다. 그래야 선수들을 파악하고 평가전 출전 명단을 확정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첫 상대인 베네수엘라는 FIFA 랭킹 30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번 2014 브라질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는 6위에 머물러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한국과의 A매치 전적은 없다. 우루과이는 브라질-아르헨티나와 함께 남미의 대표적인 강호중 한 팀이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도 16강에 올랐다. 한국은 우루과이와 여섯 번을 겨뤄 1무 5패에 그쳤다.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 2패에 그치며 1998년 프랑스 대회 이후 최악의 성적으로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은 분위기 전환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하지만 대표팀은 차기 감독 선임은 고사하고 전담기구인 기술위원회 개편조차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차기 감독을 선임하는 시간이 지연될수록 평가전을 준비하고 팀을 재정비할 시간은 촉박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대표팀을 바라보는 여론이 곱지 않은 가운데, 첫 평가전에서부터 좋지못한 성적을 거두면 차기 감독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여러모로 비교되는 일본, 한일전 대신 간접평가전?

대한축구협회에 우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이웃나라 일본과 확연히 비교되는 행보 때문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일본은 9월 A매치에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우루과이-베네수엘라와 번갈아가며 평가전을 치른다. 날짜만 바꿔 9월 5일은 일본이 우루과이를 먼저 상대하고, 9일에는 베네수엘라를 만난다.

상대팀이 똑같은 만큼, 평가전 성적이 현재 양국의 전력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 될수밖에 없다. 객관적인 전력상 지금은 일본이 한국보다 앞선다는 평가다. 대표팀 평가전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못한 성적을 거둔다면 대표팀을 바라보는 여론은 더욱 차가워질 게 뻔하다.

일본도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별리그에 탈락하며 부진한 성적표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일본의 신속한 대처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일본은 브라질월드컵 이후 곧장 멕시코 출신 하비에르 아기레 신임 감독을 영입하며 공백기 없이 바로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대비한 팀 재정비에 돌입했다.

무엇보다 일본은 필립 트루시에(프랑스, 1998~2002), 지코(브라질, 2002~2006), 알베르토 자케로니(이탈리아, 2010~2014) 등 여러 외국인 감독들을 영입하며 다양한 스타일의 선진축구 수혈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일 감독 체제에서 4년간 계약기간을 준수하며 안정성과 연속성을 바탕으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1997년 프랑스월드컵 최종 예선 기간 중 경질된 가모 슈 감독을 끝으로 감독을 경질한 적이 없다. 1~2년 단위로 감독이 바뀔 때마다 팀을 새롭게 구성하는 혼란을 반복하는 한국 축구와 가장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만큼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목표와 기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초 한국 축구는 올해부터 일본축구계와 협의 끝에 한일 정기전 부활도 염두에 뒀었다. 한일전은 아시아 축구 최대의 빅매치이자 히트 상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브라질월드컵에서의 부진 이후 한일전에 부담을 느낀 대한축구협회는 한일전 기획을 일단 유보했다.

대표팀의 최근 상황이 좋지않고 후임 감독도 아직 선정되지않은 가운데 결과에 신경쓸 수밖에 없는 한일전의 분위기가 대표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은, 자존심이 상하지만 현실적이었다. 오히려 지난 브라질월드컵의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일전도 마다하지 않은 일본의 자신감과 대조를 보인다.

평가전보다 더 큰 문제는 2015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이다. 월드컵과 6개월간의 시차를 두고 열리는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1960년 이후 반세기 넘도록 한 번도 정상을 차지하지 못했다. 역대 아시안컵 우승 횟수에서 한국은 이미  일본 등 아시아 경쟁국들에 비해 뒤처져 있다. 지금 당장 새로운 감독을 선임한다고 해도 아시안컵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한 게 사실이다.

차기감독의 조건,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비전'

하지만 지금의 한국축구계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촉박한 시간을 이유로 서두르다 보면 오히려 중요한 감독 선임 과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될 위험도 높다. 한국축구가 지난 브라질월드컵 4년을 망친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조광래 - 최강희 - 홍명보로 이어지는 국내파 감독들은 모두 부임과 동시에 충분한 기간없이 아시안컵 본선, 월드컵 최종예선, 본선을 코앞에 두고 '시간과의 싸움'을 펼쳐야 했다.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역시 능력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나 비전보다는 그때그때 상황 논리에만 치우쳐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이뤄진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평가전이나 아시안컵에서의 성적을 의식하다 보면 차기 감독이 누가 되든 정상적으로 팀을 정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국내파 감독이든 외국인 감독이든 새로운 지도자가 와서 자신만의 팀을 꾸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진정한 평가 기준은 차기 월드컵인 2018년 러시아 대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게 옳다.

차기 감독 선임에 있어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팬들도 인정할 수 있을만한 수준급 감독을 영입해 7월 말이나 8월 초까지 감독 선임을 마무리짓고 아시안컵 체제로 돌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9월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까지 차기 감독에 대한 인선을 마무리짓지 못할 경우, 한두 경기 정도는 임시 감독체제를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새 감독에 대한 철저한 검증 과정이 우선해야 한다. 어쩌면 내년 아시안컵까지도 차기 월드컵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희생할 수 있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차기 감독에게 원하는 목표 의식과 비전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2002년 당시 히딩크 감독의 가장 큰 업적은 월드컵 4강이 아니라, 한국 축구가 '세계와 맞설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지금, 지난 월드컵에서 현재의 한국축구가 과연 세계축구의 흐름을 얼마나 따라잡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2014년 한국축구대표팀 차기 감독의 시대적 과제도 비슷하다. 세계축구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대표팀의 수준을 그에 맞게 끌어올릴 수 있는 비전과 노하우를 지닌 인물이 필요하다. 그러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감독이 누구인지 냉철하게 파악하고 검증하는 것이 지금 축구협회가 가장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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