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첫 경기에서 러시아와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16강 진출 가능성을 찾은 가운데, 공격수 박주영과 이근호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홍명보의 페르소나'로 불리우는 박주영은 예상대로 러시아전에서도 선발 명단에 최전방 공격수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박주영은 슈팅을 단 1개도 기록하지 못하는 등 부진한 활약 속에 55분을 뛰고 교체됐다. 공교롭게도 박주영을 대신하여 투입된 이근호는 13분 만에 귀중한 선제골을 터뜨리며 특급 조커로서 제 역할을 다했다. 생애 첫 월드컵 출전에서 터뜨린 첫 골이었다.

상무 소속으로 현역 군인 신분인 이근호는 이번 월드컵 출전국 32개국 선수들을 통틀어 최저연봉 선수로서 득점을 기록하는 이색기록도 세웠다. 반면 월드컵만 세 번째 출전하는 박주영은 경기가 끝난 후 외신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이제 한국대표팀은 오는 23일 오전 4시 알제리와의 조별리그 2차전을 앞두고 있다. 사실상 이번 조별리그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승부다. 러시아전 무승부로 자신감을 회복한 홍명보 감독이 알제리전에서 어떤 공격조합을 들고 나올지 주목된다.

그동안의 성향을 감안하면 홍명보 감독은 베스트11이나 전술운영에서 변화가 큰 감독은 아니다. 알제리전에서도 일단 원톱에 '박주영 선발-이근호 조커'라는 플랜 A를 고수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다. 사실 박주영의 컨디션이 좋기만 하다면 가장 최선의 조합이기도 하다.

박주영-이근호 역할 교대, 시도해볼 만하다

 18일 오전(한국시간) 브라질 쿠이아바 판타나우 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한국과 러시아의 경기에서 후반 11분 이근호가 박주영과 교체투입되고 있다. 이근호는 후반 23분 이번 월드컵 첫 골을 성공시켰다.

18일 오전(한국시간) 브라질 쿠이아바 판타나우 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한국과 러시아의 경기에서 후반 11분 이근호가 박주영과 교체투입되고 있다. 이근호는 후반 23분 이번 월드컵 첫 골을 성공시켰다. ⓒ 연합뉴스


러시아전을 살펴보면 홍 감독이 왜 혹평 속에서도 박주영을 꾸준히 총애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홍명보호의 전술상 원톱은 전형적인 센터포워드가 아니라 일종의 제로톱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박주영이 대한민국의 기존 공격수들과 가장 차별화된 장점이다.

눈에 자주 띄지는 않았지만 박주영은 간간이 2선 공격수들과 유기적인 연계 플레이를 통하여 수비수들을 끌고 다니는 역할을 해냈다. 전반 손흥민과 구자철의 결정적인 슈팅에서도 박주영이 수비를 유인하여 동료들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과정이 있었다.

기동력과 활동량이 뛰어난 이근호는 '조커'로서 상대의 체력이 고갈된 후반에 박주영과 교체 투입되며, 빠른 스피드와 과감한 슈팅을 통하여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 할 수 있었다.박주영이 슈팅 개수 0에도 불구하고, 연계 플레이와 수비 가담을 통하여 팀에 공헌했다는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전에서는 별로 기회가 없었지만 월드컵 프리킥 골 경험이 있는 박주영은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언제든 유용한 옵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박주영이 공격수의 역할을 다한 것은 결코 아니다. 컨디션이 좋았던 때의 박주영이라면 공수전환시에 최전방에서 볼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해주는 역할이나, 공중볼 다툼을 통한 제공권 다툼에도 경쟁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박주영은 평가전을 포함하여 지난 러시아전까지 이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몸싸움도 헤딩 경합도 안 되고 스피드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최전방 공격수인 박주영이 포스트에서 자꾸 밀려나오다 보니 공격 전개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어쩌다 직접 공을 잡아도 상대 수비의 압박에 가로막혀 공격권을 빼앗기는 경우가 더 많다. 수비와의 싸움을 이겨내고 슈팅까지 이어가겠다는 투쟁심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장면이 반복되면서 박주영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 활용 능력'의 가치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체력이다. 러시아전에서 박주영이 일찍 교체된 이유는 부진도 부진이지만 전반이 끝나고 이미 체력이 방전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박주영이 올 시즌 소속팀에서 단 한 번도 풀타임 경기를 소화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대체 투입된 이근호의 활약을 보면 박주영과 가장 비교가 되는 부문은 활동량과 과감성이다. 이근호는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좌우측면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과 한 박자 빠른 슈팅으로 러시아를 흔들어 놓았다.

박주영을 활용하는 방식이 꼭 선발 기용을 고집하는 것만 최선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 박주영이 풀타임을 소화할 만한 체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일시적으로 이근호와 박주영의 역할 교대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대안이다.

'조커 김신욱'이라는 또 다른 옵션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한국과 러시아의 경기가 열린 18일 오전(한국시간) 브라질 쿠이아바 판타나우 경기장에서 후반전 이근호가 선제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한국과 러시아의 경기가 열린 18일 오전(한국시간) 브라질 쿠이아바 판타나우 경기장에서 후반전 이근호가 선제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근호는 본래 포지션은 윙포워드지만 최전방 공격수까지 가능하고, 실제로 박주영이 없을 때 원톱 공격수를 소화한 경험도 있다. 당시 박주영도 김신욱도 없던 상황에서 홍명보호가 그나마 가장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 때였다.

이근호의 최대 강점은 다재다능함과 헌신성이다. 팀플레이에 능하고 수비 가담도 좋아서 어떤 포지션에 놔도 제몫을 다 한다. 주전 2선 공격수인 이청용-손흥민과도 좋은 호흡을 선보였다. 이근호를 선발로 기용하여 상대를 흔들고, 박주영을 조커로 돌려서 짧은 시간 안에 공격적인 플레이에만 좀 더 집중하도록 주문하는 것은 어떨까.

이근호의 알제리전 선발 전환이 가능한 이유는 조커로 김신욱이라는 또 다른 옵션이 있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은 러시아전에서는 김신욱을 끝까지 기용하지 않았다. 발이 느리지만 체격 조건이 좋고 몸싸움에 능한 러시아의 수비 조직력을 뜷기 위해서는 김신욱을 내세운 제공권 경쟁보다 이근호나 김보경 같이 배후 침투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 만일 홍정호의 부상으로 교체카드 1장을 수비(황석호)에 돌려야했던 돌발 변수가 없었다면 김신욱의 투입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알제리전은 상황이 또 다르다. 알제리는 개인기가 좋지만 제공권과 수비 조직력은 러시아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평가다. 지난 벨기에와의 1차전에서 초반 끌려가던 벨기에가 190cm대의 장신 미드필더 마루앙 펠라이니를 투입하며 단번에 경기 흐름을 바꾼 장면은 홍명보호도 주목할 만하다. 펠라이니는 헤딩 동점골로 끌려가던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김신욱도 플레이스타일이나 전술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선발보다 조커로 기용됐을 때의 장점이 많다. 알제리를 상대로 기동력과 배후 침투가 좋은 이근호를 먼저 중용하고, 상대의 체력이 떨어진 후반에는 강한 제공권과 골결정력을 보유한 김신욱 카드를 조커로 활용하는 조합이 더 유용할 수 있다.

이근호와 김신욱은 울산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서로의 플레이스타일에 익숙하다. 이근호는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모두 포스트플레이에 강한 장신 공격수와 호흡을 맞췄을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전력도 있다.

16강 진출을 위해서 알제리는 무조건 이겨야 할 상대다. 사실상 무승부도 큰 의미가 없다. 최종전에서 H조 최강으로 꼽히는 벨기에와의 일전을 남겨두고있는 대표팀으로서는 만일 알제리전을 비기거나 지게 될 경우, 벨기에전에 대한 부담이 매우 커지게 된다. 상대팀과의 경우의 수까지 감안할 때 골득실까지 따져야 하는 상황이 올수도 있다.

승리를 위해서는 당연히 최대한 많은 골이 필요하고, 결국 최전방을 책임지는 공격수들이 기회가 왔을때 해결해 줘야 한다. 홍명보 감독이 2차전에 어떤 필승의 승부수를 들고 나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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