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야수> 영화 포스터

▲ <미녀와 야수> 영화 포스터 ⓒ (주)영화사 선,NEW


유럽에 민담으로 전해지던 <미녀와 야수>를 처음 책으로 옮긴 이는 16세기 무렵 이탈리아의 작가 겸 민담 수집가였던 지오반니 프란체스코 스트라파졸라다. 대중의 읽을거리로 정착하는 계기는 1697년에 프랑스의 동화 작가 샤를 페로가 <어미 거위 이야기>에 <미녀와 야수>를 실으면서 마련되었다.

<미녀와 야수>를 한층 대중의 품으로 다가서게 한 이는 수잔 바르보 드 빌뇌브와 잔 마리 르 프랭스 보몽이다. 1740년 빌뇌브가 발표한 <미녀와 야수>는 야수로 변해버린 왕자와 벨의 과거 사연을 넣는 등 이야기가 제법 복잡한 편이었다. 그러나 1757년에 보몽은 <미녀와 야수>를 읽기 쉽도록 상당 부분을 축약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미녀와 야수>는 보몽에 의해 쓰인 판본이다.

<미녀와 야수>의 어떤 면이 대중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저주를 받아 인간에서 짐승으로 변해버린 야수와 착하고 아름다운 여자 벨은 대비되는 존재다. 처음에는 야수의 겉모습만 보고 꺼려하던 벨이 점차 마음을 열고 그의 진심을 알아가는 과정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미녀와 야수가 만드는 순수한 사랑은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깊은 호소력을 지녔기에 오랜 세월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 <미녀와 야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어떻게 다를까

<미녀와 야수> 영화의 한 장면

▲ <미녀와 야수> 영화의 한 장면 ⓒ (주)영화사 선,NEW


연극, 뮤지컬,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사랑을 받은 <미녀와 야수>는 영화로도 다수 만들어졌다. 1946년 장 콕토가 연출한 <미녀와 야수>는 영화사의 걸작으로 추앙받으며, 1991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공개된 <미녀와 야수>는 흥행뿐만이 아니라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미녀와 야수>의 잔영이 드리워진 작품도 많다. 무대를 현대로 옮긴 <비스틀리>와 이야기를 살짝 변형한 <페넬로피>가 선명한 인상을 준다면, <킹콩>과 <가위손>은 영감을 받아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진 경우다.

새로이 우리 곁을 찾아온 <미녀와 야수>는 <크라잉 프리맨><늑대의 후예들><사일런트 힐>을 연출한 크리스토프 갱스가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장 콕토가 구축한 시각과 정서에 디즈니가 보여준 감미로운 댄스 장면을 넣는 등 앞선 <미녀와 야수>의 장점을 골고루 흡수했다.

<미녀와 야수>에선 크리스토프 갱스의 전작들에서 보였던 특징이 도드라진다. 얼굴을 가린 킬러와 미녀의 사랑을 그린 <크라잉 프리맨>에서 얼굴을 숨긴 가면은 <미녀와 야수>의 변신과 다름없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쫓는 <늑대의 후예들>은 <미녀와 야수>처럼 야수를 다룬다. 동명의 게임을 영화로 옮긴 <사일런트 힐>은 게임의 공간을 성공적으로 영화로 이식한 사례로 <미녀와 야수>에서 세심히 매만진 것도 동화 속 공간의 구현이다. 어쩌면 크리스토프 갱스는 <미녀와 야수>를 만들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미녀와 야수> 영화의 한 장면

▲ <미녀와 야수> 영화의 한 장면 ⓒ (주)영화사 선,NEW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뱅상 카셀 분)는 탈을 뒤집어쓴 분장을 하지 않는다. 발전된 CG의 힘으로 야수는 <반지의 제왕>의 골룸이나 <혹성탈출>의 시저처럼 근사하게 재탄생했다. 야수를 따르는 거대 석상, 저주를 받아 모양이 변해버린 강아지 등도 CG의 힘을 빌려 만들어졌다. 기술의 힘이 들어간 야수의 성과 어둡고 음산한 숲 등은 공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의상 양식을 따른 <미녀와 야수>에서 눈여겨 볼만한 점은 색을 활용하여 감정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벨(레아 세이두 분)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야수의 성에 도착했을 때에 만나는 의상은 하얀색 드레스다. 이것은 순수한 존재로서의 벨을 상징한다. 희망을 상징하는 녹색 드레스를 입은 벨은 야수에게 예의를 가르치겠다고 말한다.

냉정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파란색 드레스를 입었을 때 벨은 야수와 크게 다툰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느냐고 묻는 야수에게 벨은 당신은 왕자처럼 입어도 잔인하고 외로운 야수일 뿐이라 고함친다. 두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순간에 벨이 입은 옷은 사랑과 정열을 암시하는 붉은색의 드레스다. 이렇게 영화는 색을 이용하여 감정선을 표현한다.

화려한 외양에 비해 이야기는 탄탄하지 못하다. 원작과 같이 아버지와 3형제, 3남매를 등장시키고, 벨의 가족을 괴롭히다 야수의 보물까지 노리는 일당을 새롭게 추가했다. 또한, 야수가 어떤 사연으로 저주를 받았는지를 다루면서 야수의 부인과 주변 인물까지 나온다. 113분의 러닝타임이 모자를 정도로 등장인물의 숫자는 빼곡하다. 인물의 숫자를 대폭 줄이며 '개스통'이란 인물에 악을 통합시켰던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와 대조적인 선택이다.

다수의 인물을 활용하는 <미녀와 야수>는 벨과 야수의 이야기, 야수의 과거, 벨의 꿈에서 만나는 야수의 부인, 여기에 책을 읽어주는 엄마와 아이들까지 여러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려준다. 그러나 다양한 시제를 쉴새 없이 오가면서 들려주는 통에 이야기는 산만하다. 과거의 이야기인 야수와 부인의 관계는 흥미롭지 않고, 성의 보물을 노리는 일당은 만들다가 그만둔 느낌마저 든다.

<미녀와 야수> 영화의 한 장면

▲ <미녀와 야수> 영화의 한 장면 ⓒ (주)영화사 선,NEW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경향 중 하나가 '동화의 재해석'이다. 주인공과 장르의 성격을 완전히 바꾼 <스노우 화이트 앤 헌츠맨>과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 동화의 인물을 새롭게 조명한 <말레피센트>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를 새롭게 확장한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이 그렇다. 카트린 브레야 감독은 <푸른 수염>과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 고전 동화를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다소 파괴성을 띄는 이런 영화들과 달리, <미녀와 야수>는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겉모습은 화려했지만, 속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라는 원작 소설의 교훈과 달리, 정작 영화가 외면에 치중하다가 이야기라는 가치를 잃어버린 꼴이다.

미녀와 야수 크리스토프 갱스 뱅상 카셀 레아 세이두 앙드레 뒤솔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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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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