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태치먼트>의 한 장면. 폭력과 폭언이 오가는 교실에서도 기간제 교사 '헨리 바스'는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학생들의 존경심을 얻는다.

영화 <디태치먼트>의 한 장면. 폭력과 폭언이 오가는 교실에서도 기간제 교사 '헨리 바스'는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학생들의 존경심을 얻는다. ⓒ (주)프레인글로벌


학교는 학생에게는 배우는 곳, 선생에게는 가르치는 곳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지식을 배우고 생각을 나누면서 성장하는 배움터인 것이다. 도덕과 규범을 배우면서 인격적으로도 자라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중·고등학교, 대학교와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얻는 많은 정보들이 우리를 채우게 된다.

학교란 곳은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그 이상의 긴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선생의 입장에서는 수십 년이 될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은 거쳐 가는 곳이기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

영화 <디태치먼트>(토니 케이 감독, 2011년, 국내 개봉 5월 8일)는 미국의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역의 말썽꾼이자 문제아가 모인 어느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인 헨리 바스(애드리언 브로디)가 한 달 동안 임시로 학급 담임을 맡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학교의 선생들을 인터뷰하며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막을 올린다.

이 학교는 선생과 제자가 서로를 포기하면서 각자의 이기심을 풀어놓는 장소로 변해버린 악명 높은 곳이다. 폭력과 폭언이 난무하고, 학부모나 학생과 선생 중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런 곳에 있을 수 없다"며 치를 떨고 떠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높게 서 있는 건물 안의 사람들은 누구든 깊은 좌절감에 젖어 있는, 그야말로 암담한 분위기이다.

하지만 바스는 쉽게 당황하지 않는다. 문제학생이 욕설과 폭력적인 행동으로 부임 첫날부터 도발하지만,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학생의 마음을 돌려놓는다. 그는 자신에 대한 무례한 발언과 행동에는 관대하면서도, 다른 학생에 대한 폭언이 이어지면 해당 학생을 가차 없이 교실 밖으로 내쫓아버린다. 학생들은 부드러움과 강함을 적절하게 겸비한 바스의 모습에, 그전까지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존경심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들도 방황하는 학교

 영화 <디태치먼트>의 한 장면. 영화속의 선생들도 각자의 문제로 괴로워하며 방황한다.

영화 <디태치먼트>의 한 장면. 영화속의 선생들도 각자의 문제로 괴로워하며 방황한다. ⓒ (주)프레인글로벌


영화 <디태치먼트>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들, 나아가서 학교의 전체적인 풍경을 차근차근 덧칠하듯이 그려낸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산만한 분위기와 문제아들이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모습, 탈선한 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드러난다.

그 뒤에는 선생들의 방황도 엿보인다. 학생들과 학부모를 상담하는 닥터 도리스 파커(루시 리우)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학생에게 욕설을 내뱉은 뒤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좌절한다. 교장인 캐롤 디어든(마샤 게이 하든)은 교육감마저 학교를 포기하며 교장 자리가 위기에 처하자 불안과 우울에 빠진다. 유일하게 쾌활한 성격을 유지하는 듯 보이는 선생인 찰스(제임스 칸)는 우울증 때문에 약을 복용 중이다.

매일같이 학생과 선생들이 오가는 학교는 사실 간신히 유지되는 살얼음판과 다름없는 상태이다. 언제 어떤 일로 와르르 무너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랄까. 이런 상황은 주인공이자 냉철한 선생으로 보이는 바스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는 매일 밤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만나러 병원에 들르는데, 그때마다 하루하루 건강이 악화되는 부친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더불어 그를 만나는 순간에 떠오르는 어릴 적의 아픈 기억이 바스를 괴롭힌다. 바스가 보여주는 삶의 이면을 보면, 그가 학생들 앞에서 완벽할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태도가 더욱 신기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카메라는 교실과 교무실을 넘어 학교의 복도와 건물 전체를 비추고, 그 안을 들어가고 나오는 행렬을 차분하게 응시한다. 결국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각자 삶의 무게가 짓누르는 상황에서 학교는 점차 수렁으로 빠져드는 셈이다. 그 안에서 단순히 학생이나 선생 한쪽만을 탓할 수는 없다. 그저 모두가 나약한 개인일 따름인 것이다.

심지어 영화 중반부에서 학교 측이 '국가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한 교육자료를 발표하면서 "아이들의 성적이 올라야 (전학을 많이 올 것이므로) 인근 부동산 가격도 오른다"며 선생들을 다그치는 장면은 압권이다. 아이들에게 성적에 대한 압박감을 주면서 대리만족 하려는 선을 넘어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요약되는 욕망을 선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어른'이란 이름으로 행하는 횡포의 극단으로 보인다. 결국 영화는 학생을 '미성숙한 아이'라고 쉽게 과소평가 하면서 기성세대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행태를 비판하는 듯 하다.

어른들의 욕망을 주입하는 교육... '폐허'가 된 학교

 영화 <디태치먼트>의 한 장면. 아이들을 '바꾸려는' 강압적인 교육 속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어쩌면 폐허 뿐인지도 모른다.

영화 <디태치먼트>의 한 장면. 아이들을 '바꾸려는' 강압적인 교육 속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어쩌면 폐허 뿐인지도 모른다. ⓒ (주)프레인글로벌


바스는 자신이 맡은 학급의 학생들에게 강압적인 태도로 명령하듯이 지시하지 않는다. 그 덕에 학생들은 느리게나마 조금씩 변해간다. 물론 영화라고 해서 간단하고 드라마틱하게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을 그려내지는 않는다.

<디태치먼트>(detachment)는 영화 제목처럼 '무심'하고 '분리'된 듯이 영화 속 상황을 우리들이 바라는 모습과 떼어놓는다. 다만 아이들에게 '강요'가 아닌 '공감'으로 서서히 다가가는 선생 바스의 모습에서는 분명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또한 가정과 학급에서 소외된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자살하는 여학생의 모습에서 우리의 사회가,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어떤 대우를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어른들의 권위주의와 '성인-청소년'으로 선을 그어놓은 서열의식을 지켜내고자 만든 '강압적인 교육'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영화가 보여주는 셈이다. 아이들을 어른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교육방식 속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어쩌면 그저 폐허뿐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디태치먼트>의 미덕이라면 그런 편견을 지워놓는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아이라고 해서 성인보다 미성숙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간섭해도 정당하다는 잘못된 생각 말이다. 영화 속에서 선생이든 학생이든 누구나 자신만의 고민으로 괴로워하고 방황하는 모습은, 결국 우리 모두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영화 <디태치먼트>가 미국의 교육을 바라보듯이, 한걸음 물러서서 한국의 교육현실을 바라보자. 우리는 과연 학생들에게 어떠했나?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라며 아이들을 성적만능주의 경쟁 속으로 떠밀고 학교가 싸움판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나? 그래서 성적이 오르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성공'이라며 치켜세우지 않았던가? '어떤 아이로 자랐는가' 하는 관심은 다른 과목들과 함께 묻어두고, 수치로 알아보기 쉽게 드러나는 국영수 점수에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나?

그래서 한국의 학교는, 그 아이들이 자란 우리 사회는 더 살 만한 곳이 되었을까? 마지막 질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고 웃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상태이지 않은가. 이제는 솔직해지자.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 어른들의 방식으로 학생들을 재단하고, 그 아이들에게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 욕망을 투영하는 것을 교육이라 불러왔다. 초라하고 부끄럽게도 말이다.

지난 4일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을 두고 보수언론은 '여도 야도 아닌 전교조의 승리'라며 당선자들의 업무가 시작되기도 전에 공포감을 조성한 바 있다. 하지만 진보교육감들의 교육공약은 그들의 말처럼 학생들을 좌우로 갈라놓거나 강압적으로 어느 한쪽의 사상의 주입하기 위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다만 학생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들여다 보일 뿐이다.

권위가 아닌 이해를 추구하는 교육정책으로 영화 속의 '바스'와 같은 선생님이 더 많아지기를, 그래서 학생들이 더 자유롭게 자랄 수 있기를, 한국 교육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기대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섣부른 색깔론이 아니라 비판적 지지와 응원일 것이다.

디태치먼트 교육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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