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조선에는 또다른 피바람이 예고됐다.

1392년 7월, '변방의 촌뜨기' 이성계(유동근 분)가 드디어 삼한 반도를 품었다. 세계사에서도 유사한 예를 찾아보기 힘든 무혈혁명이었다고는 하지만 선지교(선죽교)에 흩뿌려진 정몽주(임호 분)의 핏자국이 아직도 선연했을 때다. 왕자가 된 이방원은 무릎을 꿇은 채로 정도전(조재현 분)에게 "마음껏 개혁을 펼칠 수 있도록 왕권이 강한 나라를 만들 것"이라며 자신을 세자로 만들어줄 것을 간청한다.

신권 중심의 나라를 원했던 정도전은 이로써이방원을 자신의 생전 마지막 정적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해 8월, 이성계는 신덕왕후 강씨(이일화 분)의 몸에서 난 의안군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는 파격적 행보를 보인다. 아버지가 보위에 오른 뒤 세상을 등졌던 장남 이방우(강주상 분)를 차치하고라도, 차남 이방과며 조선 건국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이방원(안재모 분)이 있음에도 이성계는 이 같은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비운의 왕자' 이방원, 하륜과 손을 잡기까지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 방송화면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 방송화면 ⓒ KBS


KBS 대하사극 <정도전>에서 이방원은 정몽주를 살해한 이후로 내내 '상처받은 야수같은 깊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으로 자신의 알현을 거부하는 아버지를, 또 자신을 금수(禽獸)처럼 대하는 정도전을 애달프게 바라봤다.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임에도 정도전이 죽기 전까지는 개국공신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비운의 왕자 이방원. 이성계와 정도전은 '덕망이 부족하다'며 새 나라의 중심에서 이방원을 밀어냈다. 이방원의 내면에 '인정욕망'의 샘이 있다면, 그 샘은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을 터다.

철저한 결과주의자였던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나 포은 정몽주, 삼봉 정도전과는 전혀 다른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정도전이나 이성계, 정몽주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대나무와 가장 가까울 것이다.

성장의 한계까지 곧게만 자라는 대나무 숲에서 '정상'이란, 결과를 도출해내는 과정이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대업의 과정에서 끝까지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고, 정몽주는 고려의 개혁을 갈급하면서도 사직을 지키려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속담은 명분 없는 자들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방원은 칡나무다. 어떤 방식, 어떤 모양으로든 목표한 만큼 성장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드라마 <정도전> 속 이성계도, 정도전도 쉽사리 건드리지 못했던 정몽주를 찾아가 "나는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려하지 않고 단칼에 자를 것이다. 잘려진 실 조각을 이어 붙이면 모양은 사나울지 몰라도 하나의 기다란 실이 되는 것은 매한가지"라며 협박했던 그다.

노회한 정치가들 틈에서, 약관을 갓 넘긴 이방원의 이 같은 행동들은 패기를 넘어서 치기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도당의 중신들 사이에서 그가 유독 돋보였던 것은, 휠 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그의 현실감각 때문이었다. 정도전도, 정몽주도 모두 대의라는 늪으로 침잠하는 괴물이 되어갈 때 이방원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에게 대의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었던 까닭이다.

이방원을 단순한 현실주의자, 실리주의자로 평가하는데 그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대의의 끝이란 또 다른 대의의 시작임을 명민하게 알아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이 대의란 것이 자신을 경직시키도록 놔두지 않았던 인물이었고, 그래서 극 중 가장 생동감 있는 캐릭터다.

아무리 정몽주가 역성혁명의 방해물로 급진개혁파의 미움을 받았더라도, 그를 죽이자는 발칙한 생각은 이방원의 머리에서 나왔다. 화합과 상생의 아이콘 정몽주조차 정도전과 손을 잡기를 포기할 때 그에게 자신과 함께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 보자며 능청스러운 회유의 손길을 보냈던 것도 이방원이었다.

그런 이방원이, 하륜(이광기 분)과 손을 잡았다. 이방원과 하륜의 성정을 비교해 봤을 때, '유유상종'이라는 성어가 안성맞춤으로 떨어지는 역사적 대목이다. 하륜은 정도전, 정몽주 등과 함께 목은 이색(박지일 분)의 문하생으로서 성리학을 공부한 유자(儒者)였지만, 동시에 권문세가의 수장인 이인임(박영규 분)의 조카사위이기도 하다.

하륜은 이인임의 최측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진사대부들과 척을 지지 않았다. 실제로 사형 박상충(김승욱 분)이 무고하게 옥에 갇혔을 때나, 정도전이 이인임과의 대결에서 패해 귀양을 갔을 때 하륜은 결코 그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또한 하륜은 불교나 도교 등의 타 학문을 철저히 배제했던 정도전에 비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극 중 이인임의 노채(폐결핵)를처음 진단했던 것 역시 하륜이었다.

대의에 매몰되지 않았던 하륜, 이방원과 닮은꼴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 방송화면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 방송화면 ⓒ KBS


수많은 정쟁을 거치며 귀양을 갔다가도 어느새 도당에 복귀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뤄줄 진영으로 재빠르게 옮겨다녔던 하륜은 이미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정도전>의 '신 스틸러'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조선 건국의 대업이 이뤄지기 전 <정도전> 속 하륜의 비중은 한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느 때는 권문세가의 틈에서, 또 어느 때는 유림 사이에서 안광을 번뜩이며 존재감을 자랑하던 하륜의 모습에 '인생은 하륜처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였다.

하륜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당여들을 모으던 극 중 다른 인물들과는 달랐다. 그는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으로 스스럼없이 이동하지만, 비겁하게 군중 안에 몸을 숨긴 채 묻어가려고는 하지 않았다. 하륜은 이인임의 수족과도 같았던 염흥방과 임견미보다도 더욱 영민하게 이인임을 보좌했고, 이인임 사후에도 도당에서 내쳐지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온건 개혁파 진영에 합류, 정치적 생명을 이어나간다.

이는 하륜이 정치진영의 선과 악을 쉽사리 가를 수 없음을 알고 진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었다. 즉 하륜은 이방원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대의에 매몰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던 인물이었다.

정치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며, 사람을 위한 일이다. 하륜은 <정도전> 안에서 적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아군이 생각보다 착하지 않다는 진리를 깨친 인물이자, 진영 자체가 의인화되어 정치대결이 단순한 싸움으로 전락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정치가로 그려졌다. 하륜은 정치진영이 그 안의 개인과 동일시되는 순간, 개인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자신의 변호에 급급한 자가당착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처럼 너무도 비슷했던 이방원과 하륜은 언젠가는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경직된 여말선초를 살아가던 송곳같은 이방원과 그 뾰족한 끝을 감싸는 송곳주머니 같은 하륜.

아무리 특출난 인물일지라도 대의 안에 자신의 몸을 깊게 담근 채 그 대의의 제물이 되어갔던 당시, 이를 가장 현실적으로 파악하고 있던 두 인물이 만났을 때의 화학반응은 그토록 격렬했던 것이다. 결국 2차에 걸친 '왕자의 난' 끝에 조선 제 3대 임금이 된 이방원과 하륜에게 '최후의 승자'만큼 어울리는 수식은 없었다.

조선의 하늘이 열리자, 그간 이성계에게 집중됐던 욕망들도 각자 제 자리를 찾은 채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수많은 욕망들을 베어 버린 채 '여말선초'라는 격동의 터널을 가장 먼저 빠져나올 것이다. 이 터널의 최초이자 최후의 통과자가 이방원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이방원과 그를 도왔던 하륜이 스스로를 대의에 매몰된 괴물로 자처한 이들을 움직였던, 대의를 초월한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방원의 손에 칼을 쥐어준 것은 그를 "보위에 올려 주겠다"고 천명한 하륜이 아니라, 그를 끝에 끝까지 몰고 갔던 이성계와 정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방원의 칼날은, 쥐어준 그대로 마주 선 이성계와 정도전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여름, 조선에는 또 다시 '왕자의 난'이라는 피바람의 씨앗이 잉태되고야 말았다.

덧붙이는 글 일부는 기자의 개인블로그에서 직접 작성한 관련 포스팅을 인용했습니다. (thebestsurplus.tistory.com/213)
정도전 이방원 하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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