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배구 대표팀, 진천선수촌 연습경기 장면

남자배구 대표팀, 진천선수촌 연습경기 장면 ⓒ 박진철


"블로킹 확실하게 떠. 상대 팀은 더 큰 놈들이야."

박기원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하늘에서 먹잇감을 노려보는 매의 눈이었다. 월드리그 첫 경기 출국을 이틀 앞둔 27일. 남자배구 대표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활기차 보였다.

올해 남자배구는 월드리그(5.31~7.20), 폴란드 세계선수권대회(8.30~9.21), 인천 아시안게임(9.19~10.4) 등 중요한 국제대회를 연달아 앞두고 있다. 대표 선수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박 감독이 추구하는 '빠르고 정교한' 배구(일명 스피드 배구)는 어느 정도 완성돼 가고 있을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27일 오후 3시 진천선수촌으로 달려간 이유이다.

진천선수촌은 평온하면서도 삭막한 느낌이 들었다. 한적하고 깊숙한 시골에 체육관 건물들이 덩그러니 솟아 있었다. 선수촌 밖으로 나가봐야 딱히 갈 데도 없다.

"여기는 선수들이 운동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겠네요. 운동이라도 전념해야지 안 그러면 우울증 걸리겠다"고 농반진반으로 말했더니, 선수촌 여직원이 폭소를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전보다 치열했던 연습경기

하지만 체육관 안은 밖의 평온함과 전혀 딴판이었다. 배구 대표팀이 훈련하는 체육관에 들어서자 쩌렁쩌렁 울리는 선수들의 기합 소리와 코트가 뚫어질듯 내리찍는 스파이크 소리에 귀가 멍멍했다.

사전에 방문 약속을 해서인지, 박 감독이 금방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침 이날은 국가대표팀과 한국전력 프로배구팀과 연습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월드리그를 앞두고 마지막 평가전이었다.

이날 경기는 승패와 상관없이 총 4세트를 치렀다. 대표팀이 한국전력에 세트스코어 4-0(25-20, 25-22, 27-25, 25-17)으로 이겼다. 특히 3세트에서 대표팀이 12-18, 22-24로 끌려가다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남자배구 '야전사령관' 두 세터...한선수, 박기원 감독, 이민규(왼쪽부터)

남자배구 '야전사령관' 두 세터...한선수, 박기원 감독, 이민규(왼쪽부터) ⓒ 박진철


결과는 대표팀의 완승이었지만 경기 내용은 실전과 다름없이 치열했다. 세트 중반까지 한 점씩 주고받는 시소 게임도 자주 연출됐다. 그만큼 한국전력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모습도 자주 나왔다.

박 감독은 상황에 따라 선수를 고루 기용하며 최종 점검을 했다. 이날 경기에선 박철우 선수(삼성화재·30세·199cm)가 돋보였다. 공격 감각과 성공률이 좋았고, 서브도 강하고 정확하게 들어갔다. 곽승석(대한항공·27세·190cm)도 수비와 서브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전광인(한국전력·24세·194cm)은 후반으로 가면서 호쾌한 공격을 선보였다. 송명근(러시앤캐시·22세·195cm)은 막내답게 코트 안에서는 강력한 서브로, 코트 밖에서는 연신 소리를 지르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월드리그 초반 야전사령관 역할을 해야 할 이민규 세터(러시앤캐시·23세·194cm)도 비교적 무난해 보였다. 육군 현역 부대에서 상근예비역으로 복무 중이다 지난 18일 선수촌에 합류한 한선수 세터(국방부·30세·189cm)도 수시로 교체 투입되면서 실전 감각을 익혔다. 아직은 지난해 보였던 절정의 기량까지는 올라오지 않았지만, 훈련에 임하는 자세가 사뭇 진지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다행인 것은 월드리그에 출전할 12명의 대표 선수 전원이 별 다른 부상이 없다는 점이다.

박기원 감독 "아직 배가 고프다"

그러나 박기원 감독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한다. "V리그가 끝나고 선수들이 1달 정도 휴가를 갔다 왔다. 아직 몸 상태나 조직력이 완전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며 "월드리그 경기를 치르면서 경기력과 조직력을 계속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월드리그에서 대한민국(세계랭킹 21위)은 체코(22위), 네델란드(31위), 포르투갈(38위)과 함께 E조에 편성돼 홈 앤드 어웨이로 예선라운드를 치른다. 한국이 세계랭킹에선 앞서지만, 결코 만만한 상대들이 아니다. 주전 선수들 상당수가 현재 러시아·이탈리아·폴란드 등 세계 정상급 리그에서 뛰고 있다.

1차전 상대인 네델란드는 유럽 최장신 팀으로 센터 KOOISTRA(209·폴란드 Czarni Radom)의 블로킹·속공이 특징이다. KLAPWIJK(200·이탈리아 CMC Ravenna), RAUWERDINK(200·이탈리아 Cuneo), KOOY(202·폴란드 Kedzierzyn-Kozle)의 공격 3각 편대도 위력적이다. 작년 월드리그에서 한국 팀에게 2전 전승을 거둘 정도로 강한 면모를 보였다.

박 감독은 "만만한 팀이 하나도 없다. 유럽 선수들은 공격 결정력이 높기 때문에 우리는 가급적 실수를 줄이고 빠르고 정교한 배구로 뚫고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주전 경쟁, 시작됐다... 종착역 '인천 AG'는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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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국


대표팀 선수들의 주전 경쟁도 시작됐다. 월드리그~AVC컵(8월)~세계선수권대회~인천 아시안게임까지 5개월의 대장정 속에서 누가 주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박 감독은 "아직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 한 선수들도 수시로 불러서 점검하고, 상황에 따라 경기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선수들의 각오도 여느 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대한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KOVO)도 올해는 대표팀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공언하고 있다. 문제는 아시안게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월드리그~세계선수권대회는 나 몰라라 하는 느낌마저 든다. 충실한 과정이 없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국제대회 호성적의 가장 큰 수혜자는 KOVO다. 감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숟가락만 얹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지원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대표팀은 29일 오후 출국한다. 월드리그 네델란드-대한민국 1차전은 31일 밤 10시(한국시간) 네델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열린다. SBS Sports는 31일 첫 경기부터 한국 팀이 출전하는 전 경기를 생중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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