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 영화 포스터

▲ <고질라> 영화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 기사에 영화 내용의 일부가 담겨있습니다

1954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혼다 이시로 감독의 <고질라>는 단순히 거대한 괴수만을 소재로 삼은 영화가 아니었다. 거듭되는 핵실험에 의해 해저의 동굴에서 지내던 종(種)이 자신들의 생활 환경이 파괴당하자 인간 세상에 나온다는 영화 속 설정은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았던 일본의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사람들에게 절망적인 공포를 안겨주는 거대 괴수 고질라는 핵무기의 다른 형상과 다름없었다. 영화에서 과학자 세리자와는 만약 핵실험이 계속된다면 또 다른 고질라가 다시 세상에 나타날 것이라면서 과학의 악용을 경고했다.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수십여 편의 영화에서 맹활약했던 <고질라> 시리즈 중에서 국내에 가장 인지도가 높은 '고질라' 판본을 꼽으라면 1998년에 만들어진 할리우드의 <고질라>가 단연코 일순위다.

재난 영화로 유명한 롤랜드 에머리히가 "크기가 중요하다(Size does matter)"는 문구를 앞세웠던 <고질라>는 도시를 파괴하는 재미는 보장했으나, 덩치 큰 고질라가 도시에서 먹을 것과 알을 낳을 둥지만을 찾아 갈팡질팡하는, 가장 고질라답지 못한 고질라 영화였다. 괴수가 도시에서 벌이는 바보스러운 소동극 같았던, 마치 도시로 간 <쥬라기 공원>을 떠올리게 하던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라곤 국내 기업이 만든 참치캔의 등장 정도였다.

괴수를 적으로 정의하는 잣대를 거부하는 영화

<고질라> 영화의 한 장면

▲ <고질라>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2004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고질라-파이널 워즈>를 마지막으로 긴 수면에 들어갔던 고질라를 2014년 할리우드는 다시금 깨웠다. 메가폰을 잡은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선배' <고질라>들과 마찬가지로 괴수가 도시에 나타나는 이유를 핵실험에서 찾는다. 영화는 1954년 남태평양에서 행해진 핵실험이 지구 깊숙이에서 지내던 고대 생태계의 최상위층을 불러온 원인이라 설명한다.

인간이 불러들인 괴수 무토와 고질라가 도시에서 맞붙는, 혹은 홀로 파괴를 일삼는 장면은 근래에 선보였던 <어벤져스> <맨 오브 스틸> <트랜스포머 3> 등이 보여준 도시 철거에 몰두하는 영화에 비해 심심한 측면이 있다. 어마어마한 괴수가 출현한 것치곤 파괴의 규모는 다소 소박하다. 영화는 괴수를 파괴만을 일삼는 단순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고질라>는 무토와 고질라를 적으로 정의하는 잣대를 거부한다. 인간은 그들은 침략자로 부르지만,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세운 기준일 뿐이다. 영화에서 무토는 방사능을 먹으며 사는 존재다. 무토는 핵으로 상징하는 인간의 무분별한 오염을 응징하기 위해 온 지구의 자정 작용과 같다. 무토를 사냥하러 온 고질라는 생태계의 최상위층 간에 균형을 만드는 자연의 섭리다.

자연의 심판과 같은 무토와 고질라를 인간의 시각에서 침입자로 해석하는 시각은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전작인 <몬스터즈>에서 다루어진 바 있다. <몬스터즈>는 태양계에서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발견한 우주선이 표본을 채취해 지구로 귀화하던 중 멕시코에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괴생명체 때문에 나라의 절반이 감염구역으로 지정되어 격리되는 상황을 통해 다른 존재를 타자로 바라보는 인간의 편견과 폭력을 이야기했다. 인간의 입장에서 정의한 '감염'과 '몬스터즈(괴물들)'는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다.

<고질라>의 주제는 <몬스터즈>의 연장선에 서 있다. <고질라>는 재난과 괴수라는 장르 형태를 빌려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사는 지구를 마치 내 것인양 주장하고, 마음대로 자연을 오염시키는 인간의 그릇된 생각을 비판한다. 지구에서 사는 하나의 종(種)에 불과한 인간은 지배자처럼 행동하며 다른 존재를 멋대로 타자로 규정한다. 자연은 그런 인간의 오만함에 준엄한 심판을 가하고자 무토와 고질라를 보낸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드러낸다.

<고질라> 영화의 한 장면

▲ <고질라> 영화의 한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지구에 처음으로 핵무기가 사용되었던 비극을 직접 경험한 미국과 일본은 1950년대에 두 편의 영화를 내놓았다. 일본이 자신들이 느낀 공포를 <고질라>에 스며들게 했다면, 미국은 핵이 지닌 위험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지구 최후의 날>에 담았다. 두 편의 영화는 이후 <고질라>와 <지구가 멈추는 날>로 리메이크되었는데, 아마도 1950년대에 던진 화두가 아직도 유효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인류는 1950년대와 다를 바 없이 공격성을 지닌 채로 전쟁을 일삼고 있으며, 인간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고질라>에서 파괴되는 잔자리 원전은 현실의 후쿠시마 원전이 아닌가. 영화에서 무토에게 핵미사일을 쏘려는 군인이 1954년의 핵미사일은 지금에 비하면 폭죽이라면서 규모가 다르다고 강조하는 대목에선 소름이 돋는다.

<고질라>에서도 무토를 없앤 고질라는 조용히 자신이 머물던 곳으로 돌아간다. 마치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 인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외계인 클라투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지구 최후의 날>에서 외계인 클라투는 말한다. 모두 평화롭게 살지, 아니면 함께 파멸할지는 우리의 몫이라고.

지금의 기회를 놓친다면 인류는 곧 무토와 고질라 같은 파괴의 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고질라>를 마냥 즐겁게 볼 수만은 없는 것은 영화가 말하는 '공존'과 '공멸'이 현실의 단어이기 때문이다.

고질라 애런 존슨 브리이언 크랜스톤 엘리자베스 올슨 와타나베 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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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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