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귀환 바램 담긴 노란리본 세월호 침몰사고 12일째인 27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리본이 줄지어 있다.

▲ 무사귀환 바램 담긴 노란리본 세월호 침몰사고 12일째인 27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리본이 줄지어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참사 13일째,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고 구조 작업은 기상 악화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실종자를 자식, 형제, 자매, 친척으로 둔 이들은 오늘도 진도 바다를 바라보며 그들의 이름을 목메어 불러본다. 제발 살아 있기를, 대한민국에 기적이 순간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

실종자들의 가족들이 울면 해군, 해난 구조대도 운다. 부모가 '훌륭한 잠수부님'이라는 제목으로 아들을 살려달라는 내용의 장문의 쪽지를 손에 쥐어주며 애곡하면, 해난구조대 대원들은 고개를 숙인 채 더 구조를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다시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어떤 구조대원은 안면마비가 왔고, 어떤 구조대원은 하지마비가 왔다. 그럼에도 잠수부들은 죄스럽고 송구하기만 하다.

아직도 100명이 넘는 실종자들은 바다 밑 어딘가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반드시 실종자들은 구조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희망과 기적이라는 말은 그저 삶을 위로하기 위한 허상이나 허구가 아니다. 이는 반드시 세상에 존재하며 세월호 참사 앞에서 대한민국이 바라며 끈질기게 붙잡고 있어야 하는 굳건한 믿음이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적 비극의 차원을 넘어섰다. 사상 최대의 사망자를 낸 사고는 사회, 경제, 정치, 문화에 걸쳐 대한민국 전체를 통째로 뒤집어 놓는 비상사태를 야기했다. 여객선 안전교육의 허술함이 드러나고,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과 그 실소유주인 전 세모그룹 일가의 비리가 들추어지고 있다.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정치인들은 사뭇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아마도 언제 깨질지 알 수 없는 살얼음판을 숨을 죽이며 걷고 있는 심정일 테다.

참사 이상의 참혹한 뉴스도 쏟아졌다. 몇몇 항해사들의 안일한 운항과 비양심적인 탈출, 어른들의 책임감 결여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국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참사의 배후에는 구원파라는 기독교 집단과 그들이 일으킨 세모그룹의 꼭꼭 숨겼던 불법·편법 경영, 비자금 조성이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비리는 국민들로 하여금 더없이 괘씸하고 치가 떨리며 견디기 힘든 화를 불러 일으켰다.

애도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으로 끝날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추악한 사실들은 국민들을 슬프게 했을 뿐만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게 해 실낱같이 남아있던 이해심마저 깡그리 부숴버렸다. 결국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일부는 눈에 보이는 대로 밟히는 대로 비난의 잣대를 들이대며 손가락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상호 기자는 한 기자를 향해 세월호 관련 과장 보도를 했다며 <고발뉴스> 생중계 도중 욕을 했고, 곧바로 사과를 해야 했으며, 욕을 먹은 기자의 회사 측은 소송을 고려하고 있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오죽하면 욕을 했을까 하며 이상호 기자를 두둔하기도 하고, 과장 보도하는 언론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그동안의 분노를 거침없이 토해내고 있다.

얼마 전 리쌍의 길이 음주운전 파문을 일으켰을 때도 국민들은 그의 경솔함을 비난하고 나섰다.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했어야 할 상황임에도, 오히려 이에 반하는 행동을 보임으로써 국민들의 화를 돋우고 말았다. 그는 스스로 <무한도전>에서 하차했다. 음주운전을 한 그 어떤 연예인들보다 자숙의 시간을 더 깊고 길게 가져야 한다는 따끔한 질책이 이어지기도 했다.

화가 날만한 일에 화를 내고, 비난을 해야 할 일에 비난을 하며, 분노가 일어날 만한 일에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현이다. 그러나 중요한 하나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분노에도 분별력이란 것이 있어야 하며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최근 방송인 이경규가 골프 회동을 가진 사실이 기사회됐고, 현 상황에 반하는 경박한 연예인으로 매도하는 댓글이 달렸다. 이러한 반응에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이경규의 대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 역시 비난을 받아 마땅한 연예인일까? 그도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개념 없는 연예인으로 낙인 찍혀야 하는 걸까?

이번 논란은 분별력을 잃은 분노가 낳은 어처구니없는 촌극이 아닐까 싶다. 그는 비난을 받을만한 일을 했다고 볼 수 없다. 길의 상황과는 엄연히 다르다. 그가 취미로 했건, 일의 연장이었건, 국민이 그것을 구분할 필요도 없고 그럴만한 권리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 무조건 내 눈에 거슬린다 하여 불편한 감정을 쏟아내고 비난을 하며 분노를 터트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

세월호 참사를 보며 국민들은 한없는 애도를 표하고 있다. 동시에 온갖 비리와 잘못에 대한 분노로 들끓고 있기도 하다. 국민들의 올바른 공분은 그릇된 사람과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준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정도를 넘어 이성이 결여된 분노가 되면 그것은 결국 사회를 우울한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악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마뜩찮게 여겨 헐뜯고 화를 내는 상황으로 우리를 내어버려서는 안 된다. 애도가 지나쳐 분노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분노의 대한민국이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이는 세월호 참사로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더욱 쓰라린 상처를 안겨줄 수도 있다. 같이 아파할 수는 없지만 묵묵히 기도해 주는 것으로, 그들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으로, 우리 희망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으로 우리의 몫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DUAI의 연예토픽),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경규 이상호 기자 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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