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월화드라마 <태양은 가득히> 마지막 회의 한 장면. 한영원(한지혜 분)과 정세로(윤계상 분).

KBS 2TV 월화드라마 <태양은 가득히> 마지막 회의 한 장면. 한영원(한지혜 분)과 정세로(윤계상 분). ⓒ kbs


자, 문제 하나 풀어보시라.
얼마 전 종영한 KBS2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 현재 방영중인 SBS의 <쓰리데이즈>, 그리고 새로이 시작한 KBS2의 <골든크로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배우 이대연이다. 극중 이대연은 <태양은 가득히>에서 정세로의 아버지로, <쓰리데이즈>의 한태경의 아버지로, 그리고 이제 <골든 크로스>에서 김강우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그것도 보통 아버지가 아니다. 남자 주인공 인생의 궤도를 바꿔버리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태양은 가득히>에서 배우 이대연이 분한 정도준(이대연 분)은 다이아몬드를 빼돌린 사기꾼이다. 그로 인해 자신은 목숨을 잃고, 고시에 합격한 아들 정세로(윤계상)마저 살인 누명을 쓰고 복수에 칼을 가는 인물로 변모시켜 버린다.

<쓰리데이즈>에서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경제 수석이던 한태경의 아버지 한기준(이대연 분)은 드라마가 시작되자마자 거대한 트럭에 부딪히며 비명횡사한다. 그리고 청와대 경호관이었던 그의 아들 한태경은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밝혀가면서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들게 된다.

<골든크로스>의 오프닝에서 강도윤(김강우 분)의 아버지 강주완(이대연 분)은 친딸의 살해범으로 체포되어 예비 검사인 아들의 삶을 180도 달라지게 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태양은 가득히>를 논외로 하고, <쓰리데이즈>와 <골든크로스>에서 이대연의 역할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청와대 경제 수석이던 한기준과, 강주완이라는 캐릭터가 딛고 있는 드라마적 현실이다. 이 두 인물은 우리나라 경제 현실의 모순을 그 자신이 고스란히 품어 안은 캐릭터인 것.

<쓰리데이즈>, 암살범 뒤에 숨은 거대 음모의 실마리를 찾아라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의 한 장면. 왼쪽이 이대연.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의 한 장면. 왼쪽이 이대연. ⓒ KBS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 시작된 <쓰리데이즈>는 11화를 맞이하면서, 이야기의 폭과 깊이가 달라지고 있다. 그저 대통령의 암살범을 찾으면 되는 줄 알았던 이야기는 양진리 주민 학살 사건이라는 과거사가 등장하며 대통령의 연루 가능성을 제시했다. 더 나아가 최근 드라마는 그 양진리 사건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극중 한태경의 아버지 한기준은 양진리 사건 당시 의도치 않게 자금 전달을 맡았던 인물이다. 드라마는 한기준이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16년 동안 줄기차게 매달린 인물로 묘사했다. 한기준은 대통령의 특검 발표를 앞에 두고, 조작되지 않은 '기밀 서류 98'을 특검에 전하려다 목숨을 잃는다.

11화에서 드라마는 남북의 협잡인 것으로 알려졌던 양진리 사건이, 사실은 김도진이라는 재벌과 그와 결탁한 팔콘 등이 무지막지한 이익을 만들어 내기 위해 획책한 사건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는 곧 전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하며 나라를 구하려고 애썼던 IMF와 같은 경제 위기가 상위 1%의 가진 자들에게 무한 배팅의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상위층들은 드라마에서처럼 다시 언제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울 한복판에서 폭발물을 터트리는 테러 정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즉 한 나라의 위기라는 게 소수의 누군가에겐 그저 이익 창출의 수단일 수 있다는 점을 <쓰리데이즈>를 통해 단순명쾌하게 학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재벌 개혁을 주창하던 한기준이 당연히 양진리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런 일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재현을 막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 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성실한 가장의 몰락, 지금 이 시대를 투과하다

 SBS 수목드라마 <쓰리데이즈> 1화에서 이동휘 대통령(손현주 분)이 재래시장에서 상인이 건넨 어묵을 먹고 있다.

SBS 수목드라마 <쓰리데이즈> 1화에서 이동휘 대통령(손현주 분)이 재래시장에서 상인이 건넨 어묵을 먹고 있다. ⓒ SBS


<쓰리데이즈>가 IMF를 다루었다면, <골든크로스>가 딛고 있는 현실은 그보다 조금 더 2014년에 가깝다.

극 중 강주완은 과거 은행에 근무하다가 정부의 부실 은행 정리과정에서 해고된 아버지다. 그로 인해 가족에게서는 무능력한 가장으로 대우받는다. 상고 출신임에도 회계 전문가로 대접받는 그는 우직하게 성실함으로 버텨온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아들은 어머니의 가게를 위해 25억만 대출해 오라고 닦달하고, 은행에선 눈 한번 감아주면 50억짜리 집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골든크로스> 역시 한 나라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바로 드라마 속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국장 서동하(정보석 분) 등의 상위 1%라고 규정한다. 그들의 입맛에 따라 멀쩡하던 은행도 하루아침에 부실 은행이 되어 직원들의 밥그릇이 날아간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눈 하나 끔뻑하지 않고 부도덕한 일을 서슴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있다.

강주완 캐릭터는 상징적이다. 성실한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무능한 가장으로 취급받고, 심지어 아들에게 그깟 돈 하나 못 구해 오냐며 대놓고 다그침을 당하는 처지다. 뿐만 아니라, 그의 호구지책이 누군가에게 가장 만만한 미끼로 여겨질 뿐이다. 그는 자신이 무단횡단 한번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았다 항변한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비웃음이다.

현실의 우리들을 규정하는 건 바로 우리들의 밥그릇, 먹고사는 문제이다. 그러나 <쓰리데이즈>와 <골든크로스>는 말한다. 당신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골몰하는 동안, 위쪽의 누군가는 그런 당신들을 장기판의 졸로 여기며 당신들의 밥그릇을 가지고 투전판을 벌이고 있다고. <골든크로스>의 악의 축으로 등장하는 서동하의 직책이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 국장이라는 것은 곧 정경 유착을 상징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골치 아파하는 정치가 귀결되는 곳은 나의 밥그릇이라고 드라마는 친절하게 가르쳐 주려고 애쓴다.

재미도 의미도 동시에 잡을 수 있다

벚꽃이 만발한 봄날에 재벌가 자녀들의 사랑 놀음과, 외계에서 온 멋진 남자와 아름다운 여배우에 눈을 빼앗겼던 시청자들의 눈을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쓰리데이즈>나 <골든 크로스>가 뺏기에는 역부족이다. 덕분에 시청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두 드라마의 의미를 단지 시청률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잘 팔릴 수 있는 이야기만 하다보면 매양 다룰 이야기는 누군가의 갈등이거나 연애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는 동안 또 세상은 IMF를 반복할 수도 있고, 자기 밥그릇이 날아갈 수도 있다. 재미없다고 하지 말고 성의 있게 드라마가 우리 현실에 대해 말을 할 때 귀 기울여 보자. 

중국 정법 대학의 한 교수는 <쓰리데이즈>가 등장한 이유에 대해 '그것이 곧 한국적 정치 상황에 대한 자신감의 반영'이라고 SNS에 올렸다. 낯부끄러운 자긍심이라도, 시청률에 휘돌리지 않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좋은 드라마가 자꾸 만들어 지길 바란다. 막장도 자꾸 보면 중독되듯이 딱딱한 드라마도 자꾸 보다보면 친근해 진다' 더불어 정신도 번쩍 들 수 있으니 금상첨화아닌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쓰리데이즈 골든 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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