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새 파일럿 프로그램 <나는 남자다>의 MC. 왼쪽부터 임원희, 유재석, 노홍철

KBS 새 파일럿 프로그램 <나는 남자다>의 MC. 왼쪽부터 임원희, 유재석, 노홍철 ⓒ KBS


KBS가 준비한 또 다른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나는 남자다>가 9일 첫 선을 보였다. 2주에 걸쳐 선보였던 <미스터 피터팬>에 이어 또 하나의 남자 예능이다.

남자들만의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선포한 <나는 남자다> 첫 회, 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남중·남고·공대를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남자 250명을 스튜디오에 모아 놓았다. 거기에 MC도 유재석을 필두로 해서, 노홍철, 장동민, 임원희, 허경환까지 다섯 명의 남자들만으로 이루어 졌다.

거기에 첫 번째 게스트 역시나 공대를 다니고 있는 그룹 제국의아이들 임시완이었다. 그는 IZI의 '응급실'을 개사해 "공대 다닌다 말하면 여대 미팅 연락 올 줄 알았어. 허나 그건 큰 착각이었어. 여자를 모를 것 같대"라고 남자들의 심정을 담아 불러 방청객들의 공감을 얻었다. 다음 게스트 고유진은 250명 남자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 'endless(엔들리스)'를 부르며 등장해 거의 교주와 같은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수지가 등장하자 유재석의 '진정하라'는 소리가 묻힐 만큼 포효하기 시작했다.

유재석이 이끌어낸 남자들의 정서, 찌질하지만은 않네?

 KBS 2TV <나는 남자다> 첫 회에 등장한 그룹 미쓰에이의 수지.

KBS 2TV <나는 남자다> 첫 회에 등장한 그룹 미쓰에이의 수지. ⓒ KBS


쇼의 시작과 함께 장동민이 말했다. 마치 분위기가 306 보충대 같다고. 그보다 <나는 남자다>를 대변할 적절한 말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처음 훈련소를 들어가는 그때처럼 서로가 낯설고,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자리는 더 낯설었던 250명의 남자들이 남자들만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훈련소 동기들처럼 친밀해져 간다.

그리고 유재석이 이제 마지막이라는 멘트를 하자, 처음엔 남자들만 모여 있다고 징그러워하던 그 남자들이 40여 일간의 지긋지긋한 훈련소를 마치면서 서로가 헤어진다는 그 사실하나 만으로도 부둥켜안고 서운해 하던 그 심정이 되어 아쉬움을 드러낸다.

굳이 남자들만의 소셜 클럽이라는 수식을 붙이지 않더라도, 남중·남고·공대라는 공통점을 가진 250명의 남자들과 보낸 한 시간 여를 지켜보면, 바로 이 프로그램이 어떤 정서로 무엇을 나눌 것인가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만큼 첫 시도로서 <나는 남자다>의 콘셉트는 영리하다.

파일럿이긴 하지만, 공중파에서는 처음으로 특정한 타깃을 대상으로 한 이 예능은 남자들의 이야기임에도, 그래서 오히려 여자들이 더 관심을 가질만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각자의 닉네임을 소개하는 자리에서부터 소소한 재미가 시작되더니, 'endless'를 열창하거나 수지를 보고 넋이 나간 남자들의 모습은 생경해서, 혹은 익히 잘 알아서 재미가 있었다.

'고래'를 잡거나, '첫사랑과의 스킨쉽' 이야기는 뻔한 듯 했지만, 함께 나누면서 새로운 재미가 생겨났다. 마지막에 사진으로만 뽑은 킹카는, 남자들의 쇼에서도 결국은 킹카 타령인가 했는데, 사진과 다른 출연자의 면면이 화룡점정이 되었다.

또한 일부 평론가가 남자들의 예능이 결국 19금을 지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중간 '고래'나, '야동' 등 19금을 연상할 만한 내용이 나왔지만, 그 누구보다 그런 것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 왔던 유재석은 결코 이야기를 찌질한 남자들의 뒷담화로 넘기지 않은 선의 재미로 요리한다. 남자들이 모이면 그저 그런 이야기나 할 것이라는 편견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파일럿 <나는 남자다>는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나는 남자다>의 매력은 굳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지 않더라도, 동성의 남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면서 무르익어가는 그 분위기라 할 것이다. 마치 남고의 오락시간처럼, 쭈뼛쭈뼛하던 방청객들이 나중에는 서로서로 손을 들며 어우러져 즐기는데서 오는 그 정서가 가장 강점이다. 연예인들이 모여 제 아무리 극한의 리얼리티를 해도 뽑아낼 수 없는 정서 말이다.

그런 정서를 이끌어 낸 1등 공신은 역시나 유재석이다. 최근 신동엽이 각종 토크쇼를 통해 과거의 전성기 이상의 능력을 뽐내고 있지만, 되돌아 보건대, 유재석 역시 <놀러와> 등을 통해 다수의 일반인 게스트들과 함께 발군의 능력을 뽐냈던 MC였다. 그런 유재석이기에, 모처럼 일반인 250명과의 소셜 클럽에서 역시나 그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그간 소모되지 않았던 자신의 또 다른 장기를 맘껏 뽐내 보였다.

노홍철은 너무 익숙하고, 장동민은 늘 자신이 하던 대로 하고, 허경환은 세련되었지만 남자들에겐 다소 비호감이고, 임원희는 아직 굳어있지만, 그런 보조 MC들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심지어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250명의 사람들을 상대하기에 유재석 혼자로도 너끈했다. 또한, 마치 유재석과 연출진의 쌍두마차인 듯, 유재석이 던지고, 카메라가 잡아내는 식의 섬세한 연출 방식 역시 기대해 볼만한 요소다.

이미 케이블 등에서 자동차나, 패션, 19금 등의 소재로 남자들의 예능이 순항한 지 오래되었다. <나는 남자다>에서 유재석이 실토했듯, 공중파라는 한계(?)를 지닌 남자들의 예능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우려가 대다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남자다>는 19금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모든 성에게 열려있지 않은 특정 대상을 상대로 한 프로그램이라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아마도 순조롭게 정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하지만 첫 회에 이미 많은 남자들의 보편적 정서가 다 등장해 버리지 않았나 싶다. 과연, 첫 회에 등장했던 남자들만의 그 주제를 매회 신선하게 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 유재석이라는 MC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 프로그램의 고유성을 살려낼 수 있을지는 숙제로 남겨두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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