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역사에 남을 '운명의 승부'가 다가오다

V리그 역사에 남을 '운명의 승부'가 다가오다 ⓒ 한국배구연맹


제대로 붙었다. 어차피 만나야 할 상대였다. 2013~2014 NH농협 V리그 챔피언결정전. 올 시즌 프로배구의 최종 승자를 결정할 외나무다리에서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맞붙었다. 4년 만이다.

누가 이길까? 아니다. '현대캐피탈은 과연 삼성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가 본질에 가깝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배구계는 삼성화재의 일방 독주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V리그 10년 동안의 전적도 이를 잘 말해준다. 작년까지 9년 동안 삼성화재가 7번 우승했고, 현대캐피탈이 2번 우승했다. 더 무서운 사실이 있다. 삼성화재는 현재 6년 연속 우승 중이다. 2007~2008시즌부터 2012~2013시즌까지 6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거머쥐었다. 여기에는 안젤코(2시즌), 가빈(3시즌), 레오(1시즌)로 이어지는 걸출한 외국인 선수의 맹활약이 있었다.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첫 '7년 연속 챔피언' 등극 눈앞

올 시즌까지 우승하면 국내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7년 연속 챔피언이라는 새 역사를 쓰게 된다. 가히 '삼성 제국'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프로리그 7년 연속 챔피언(우승). 지금까지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어떤 팀도 달성하지 못 한 대기록이다.

현재 최다 연승 기록은 삼성화재(2008~2013)와 여자 프로농구의 신한은행(2007~2012)이 달성한 6년 연속 우승이다. 프로야구는 4년 연속(해태·1986~1989), 프로축구는 3년 연속(성남·2001~2003), 남자 프로농구는 2년 연속(현대·1997~1999), 여자 프로배구도 2년 연속(흥국생명·2006~2007) 우승이 각각 최다 연승 기록이다.

삼성화재가 이번에 신기록을 달성한다면 팀이나 선수, 팬들에겐 마땅히 축하받아야 할 찬란한 빛이다. 그러나 나머지 6개 팀에겐 어두운 그림자다. 한 팀의 장기 독주를 허용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배구팬들은 삼성화재를 '몰빵(沒放) 배구'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벽도 딛고 넘어서야 하는 게 프로 구단과 선수들의 의무이다. 장벽이 거대할수록 그걸 뛰어넘었을 때 보상 또한 엄청날 것이다. 사람들은 '언더독'(Underdog·약자)의 대역전극에 가장 큰 환호와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대캐피탈이 챔피언결정전에 임하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도 싸워야 하지만, 삼성화재를 제외한 나머지 6개 구단의 자존심까지 걸려 있다. 새로운 대기록의 상대방이자 희생양이 되는 것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게 된다. 지난 3년 동안 3인자로 추락했던 수모도 이번에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

양팀 전력 '팽팽'... 오랜만에 '해볼 만한' 대결

지금 시점에서 양팀의 전력을 비교하는 건 사실상 무의미하다. 올 시즌 상대 전적도 삼성화재가 3승 2패로 근소하게 앞서 있다. 주선 선수들의 경기력과 컨디션도 백중세다. 레오-아가메즈(외국인 선수), 박철우-문성민(토종 공격수), 고준용-임동규(수비형 레프트), 유광우-권영민·최태웅(세터), 이강주-여오현(리베로). 어느 포지션에서 약간 앞선다 싶으면, 다른 포지션에서 약간 밀리면서 전체적으로 양팀 전력이 팽팽한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

체력 문제도 큰 변수가 못 된다. 삼성화재는 지난 13일 러시앤캐시전을 끝으로 챔피언결정전까지 14일간의 휴식 기간을 가졌다. 현대캐피탈도 마찬가지다. 플레이오프(PO)를 2차전으로 일찍 끝냈기 때문이다. 챔피언결정전까지 4일의 휴식 기간이 있다. 삼성화재보다는 짧지만 경기력을 유지하는데는 충분하다. 오히려 중간에 플레이오프라는 실전 경기를 치른 게 경기 감각 측면에선 유리할 수도 있다. 부상도 현재로선 변수가 아니다. 양팀 주선 선수들 대부분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화재 전력의 핵심인 레오는 '상수'다. 팀 전력의 70~80%에 해당하는 레오가 부진하면 곧 패배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걸 바라는 건 무모한 일이다. 경기 초반에 부진하다가도 끌날 때쯤 되면 어느새 자기 몫 다 채워넣는 선수다. 체력과 내구성도 뛰어나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위력적이다. 상대 팀에게 방법은 하나뿐이다. 가급적 대부분의 서브를 레오에게 집중적으로 넣고, 서브를 받고 공격하는 일을 빈번하게 만들어 블로킹에 막히거나 실수를 유도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다른 선수가 서브를 받고 레오가 정상적인 공격을 하는 상태에서는 블로킹 위에서 내려찍기 때문에 막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남은 변수는?... 문성민 회복 속도와 집중력 싸움

그러나 변수는 늘 있기 마련이다. 챔피언결정전 같은 큰 경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당연히 잘하리라고 믿었던 선수가 의외로 부진할 수 있고, 뜬금없이 예상 밖의 경기력을 보이는 '미치는 선수'가 나타날 수도 있다. 

가장 큰 관심사는 문성민의 회복 수준이다. 플레이오프전 2경기를 치르면서 문성민의 몸 상태와 경기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다. 득점과 공격성공률도 12득점(69.2%)과 17득점(80.0%)으로 급상승했다. 올 시즌 공격수(센터 제외) 중에 1경기에서 10득점 이상과 공격성공률 80%를 넘긴 건 전광인(16득점-88.2%), 박철우(16득점-87.5%)에 이어 3번째 기록이다.

문성민은 작년 6월 1일 월드리그 일본전에서 왼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선수에겐 치명적인 부상이다. 치료와 재활까지 완치하는데 보통 1년이 넘게 걸리고, 완치 이후에도 이전의 경기력을 회복하기 힘든 게 다반사다. 그런데 문성민은 불과 6개월 만인 작년 12월 29일 코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챔피언결정전을 코앞에 두고 부상 이전의 파워와 점프력을 거의 회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80억짜리 세계 최고 수준의 시설을 자랑하는 클럽 하우스의 위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현대캐피탈 정태영 구단주는 문성민의 빠른 회복을 위해 서둘러 실내 수영장 치료시설(3억원 소요)까지 만들어줄 정도였다.

문성민이 정규리그 때처럼 부상 트라우마로 불안한 상태가 계속 이어졌다면, 이번 챔피언결정전도 삼성화재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문성민이 아가메즈가 다소 부진할 때 이를 메워줄 확실한 대안으로서 활약만 해준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다. 양팀의 전력이 플러스 마이너스 해보면 대등해지기 때문이다.

드러난 전력 이외의 변수도 있다. 바로 경기 당일 선수들의 컨디션과 정신적 집중력이다. 어느 팀이 부담감을 잘 극복하고 매 순간 냉정하고 침착하게 플레이하느냐는 승패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결국 부담감과 범실은 최대한 줄이고,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리는 팀이 이기게 될 것이다.

라이벌 of 라이벌... '운명'이다

그동안 상대 전적만 놓고 보면 라이벌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양팀은 V리그 출범 이후 올 시즌 정규리그까지 10년 동안 총 88번을 맞붙었다. 그중 삼성화재가 58승 30패로 2배 가까이 크게 앞섰다. 그럼에도 삼성화재-현대캐피탈전은 국내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몇 안 되는 대표적인 라이벌 매치다. 상대 전적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흥행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두 팀이 만나기만 하면 케이블TV 대박 시청률인 1%를 넘기는 건 기본이고, 경기장은 늘 만원 관중으로 엄청난 열기를 뿜어낸다. 경기 전 양팀 관계자와 선수들은 물론 팬들까지 신경전이 대단하다. 양팀과 아무 상관없는 다른 팀 팬들까지 '이상하게' 긴장하게 만든다. 경기 후에는 숱한 화제들이 쏟아진다.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은 삼성화재와의 맞대결을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은 누가 이기든 한국 프로배구 역사에 커다란 족적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 환희와 후유증도 상당히 긴 세월 동안 지속될 것이다. 삼성화재가 7년 연속 우승으로 삼성 제국을 완성하느냐, 현대캐피탈이 역성혁명(易姓革命)에 성공하느냐. 그 대서사시가 오는 28일 밤 7시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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