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개봉 포스터

국내 개봉 포스터 ⓒ 파라마운트 픽쳐스


성경은 모든 문학의 원전이다. 그런 성경에 할리우드가 주목하고 있다. 2013년 3월 방영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더 바이블>은 성경 이야기를 10부작으로 제작한 TV 드라마다. 영화계에선 모세의 이야기를 다룬,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엑소더스>, 브래드 피트가 빌라도 역을 맡은 <본디오 빌라도>, 윌 스미스 주연의 <더 리뎀션 오브 가인> 등이 제작, 혹은 개봉 예정중이다. 이들 작품 중 가장 먼저 관객을 찾는 영화는 바로 <노아>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노아의 방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창조주가 인간세상을 멸하고자 40여일 간의 비를 내렸고, 노아에게 일러 방주를 제작하게 하고 세상의 동물들을 한 쌍씩 실어 새로운 세상을 열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 <노아>를 성경의 해석에만 치중한 종교적 색채가 강한 영화라고 오해해선 곤란하다. 이 영화의 감독이 누구인가? 바로 <블랙 스완>, <레퀴엠>의 대런 애로노프스키다. 게다가 러셀 크로우 주연이라니! 딱 봐도 견적이 나오지 않나?

'노아의 방주' 모티브...종교적 영화 넘어서는 극적 매력

 가인의 후예들은 자신도 살아남기 위해 노아의 방주에 오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노아.

가인의 후예들은 자신도 살아남기 위해 노아의 방주에 오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노아. ⓒ 파라마운트 픽쳐스


영화의 오프닝은 살짝 충격적일 정도로 의외다. 성경 중 창세기를 시각화한 장면과 타락천사와 인간의 전쟁 장면은 마치 이 영화가 <트랜스포머>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스펙타클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영화는 노아(러셀 크로우 분)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후, 가족들과 숨어살던 도중 계시를 받고 자신의 할아버지 므두셀라(안소니 홉킨스 분)를 찾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여정 중에 카인의 후손들에게 위협을 받기도 하고 타락천사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므두셀라가 사는 산에 당도하게 된다. 그리고는 계시를 확신하고 방주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매력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노아의 방주'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방주의 제작이나 성경 말씀의 전파에만 치중하지 않고, 창조주의 말씀을 전하고 계시를 실천하는 노아라는 인물과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노아라는 인물의 고뇌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를 죽인 장본인인 두발 가인과 그의 후손들이 타락천사와 벌이는 전쟁을 다룸으로써 극적인 요소를 획득했다는 것이다.

또한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은 여기에 노아의 자식들의 사랑 이야기와 형제 간의 질투 등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는 갈등 요소들을 집어넣어 이 영화를 종교적인 영화가 아닌 보편적 주제를 다룬 영화로 만든 영리한 전략적 선택을 했다. 그러기에 방주에 동물들이 몰려드는 장관이나 대홍수로 인한 혼돈 등의 영화적 재미 또한 얻을 수 있었다.

우직하다 못해 광기 어린 노아, 인간적인 모습도 엿보여

 노아 역을 맡은 러셀 크로우

노아 역을 맡은 러셀 크로우 ⓒ 파라마운트 픽쳐스


이 영화의 타이틀 롤을 맡은 러셀 크로우는 창조주의 말씀을 실천하는 충직한 인물인 노아를 훌륭하게 연기했다. 때론 우직하다 못해 무섭게 보이기도 하는 그의 모습에서 맹목적인 따름을 실천하는 종교인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물론 대다수의 비기독교인들이 봤을 때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볼 수도 있는 모습들이다. 자식의 행복을 빼앗는 것은 물론 계시를 지키기 위해선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노아의 행동에선 광기까지 엿보인다. 그러나 결국 인류의 말살을 위해 갓 태어난 손녀까지 죽이려던 노아는 끝내 가장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

러셀 크로우는 그런 인간적인 노아를 훌륭히 연기해 냈다. 신앙이라기보다 광기에 가까운 맹목적 실천을 행하면서도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정과 욕망에 괴로워하는 인간 노아를. <글래디에이터>와 <로빈후드> 등 시대극에 일가견이 있는 그이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조금 다른 색깔로 캐릭터를 창조한 느낌이다.

 노아와 나메 역의 러셀 크로우와 제니퍼 코넬리.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뷰티풀 마인드> 이후 또 다시 부부 역을 맡아 열연했다는 것이다.

노아와 나메 역의 러셀 크로우와 제니퍼 코넬리.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뷰티풀 마인드> 이후 또 다시 부부 역을 맡아 열연했다는 것이다. ⓒ 파라마운트 픽쳐스


제니퍼 코넬리는 노아의 아내, 나메라는 강인하면서도 자애로운 인물을 연기했다. 나메는 신의 과업을 수행하는 한 남자의 아내와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중압감을 갖고 있지만, 믿음과 사랑으로 자신의 남자들을 보듬는 역할이다. <뷰티풀 마인드> 이후 또 한 번 러셀 크로우와 부부 역할로 만나 극의 무게중심을 잘 잡아주었다.

또 하나의 반가운 인물은 바로 엠마 왓슨이다. 노아가 주워 기른 일라 역을 맡은 엠마 왓슨은 이브의 재연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노아와 그의 자식들을 현혹하는 인물로 볼 수도 있다. 여성적인 매력을 지닌 동시에 삶에 대한 강한 욕망을 지닌 일라를 잘 소화해 낸 엠마 왓슨은 점차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를 벗어가는 느낌이다.

므두셀라 역의 안소니 홉킨스나 두발 가인 역의 레이 윈스턴 역시 두말 할 필요 없이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가장 주목하고 싶은 것은 노아의 둘째 아들 함 역을 맡은 로건 레먼이다. <퍼시 잭슨> 시리즈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지만 아직은 낯선 얼굴인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무한한 성장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은 노아의 방주라는 엄청난 소재를 가지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내었다.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은 노아의 방주라는 엄청난 소재를 가지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내었다. ⓒ 파라마운트 픽쳐스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은 국내에도 <블랙 스완>으로 많은 팬을 확보했다. 난해하면서도 은근 매력적인 데뷔작 <파이>와 문제작 <레퀴엠>으로 국내에 알려진 그는 <더 레슬러>와 <블랙 스완>으로 평단과 관객을 모두 사로잡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 <노아>의 연출을 맡아 단순한 블록버스터가 아닌 자신만의 색깔을 투영해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시종일관 심도 얕은 화면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볼거리에 치중하는 게 아니라 거대한 자연과 전쟁 속에 있는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 의도적으로 조리개를 조절하거나 망원렌즈를 사용해 초점이 맞는 거리를 극단적으로 축소시켰다. 그로 인해 독특하고 인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 냈다. 시각적인 쾌감을 선사하는 스펙타클과 인물들에 초점을 맞춘 감정적 장면을 교묘하게 조화시킴으로써 실패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범하는 오류를 피했다.

다양한 이야기로 인해 2시간 10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관객은 지루할 틈이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중후반 이후 조금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고, 시대적 고증을 완전히 무시한 굉장히 현대적인 의상과 도구 등이 눈에 거슬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이 영화의 특색이 아닐까 싶다.

'노아의 방주'를 다뤘다고 해서 종교적인 색깔이 짙은 영화라거나 완전히 성경을 배제한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로 생각하지 마시라. 그간 보기 힘든, 독특한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될 것이다. 영화는 미국보다 일주일이나 빠른 3월 20일 국내에서 전 세계 최초 개봉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blog.naver.com/mmpictures)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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