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관객모독>에 출연하는 배우 기주봉.

연극 <관객모독>에 출연하는 배우 기주봉. ⓒ 이다엔터테인먼트


1977년에 태동한 연극 <관객모독>은 3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며 '장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연극이 다루는 언어와 만들어지던 시기 사이에는 불균형이 있다. 유신의 시퍼런 칼날이 살아 있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반민주주의자' '윗대가리들이' 같은 대사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관객모독>은 1977년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날 뻔했지만, 이를 반대했던 이가 있다. 오늘 소개하는 기주봉은 극의 언어성을 다져서 계속 공연하자고 극단을 설득한 배우다. 그의 설득 덕에 <관객모독>은 37년이라는 롱런을 기록하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단명할 뻔한 공연에 심폐소생을 한 일등공신인 기주봉을 지난 25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 <관객모독>은 한 두 해도 아니고 37년 동안이나 롱런하고 있다.
"씹어도 씹어도 맛이 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관객모독>은 어느 시대에나 들어맞는 작품이다. 대본이 논문처럼 씌여졌다. 한글이 갖는 다양성, 이를테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같은 끊어 읽기, 외국어 등 언어에 대한 모든 부분을 시대에 맞게 조합했다. '우리 언어가 이렇게도 변화할 수 있구나' 하는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언어유희가 관객에게 신선하게 전달될 수 있는 작품이다."

- 때로는 관객에게 욕도 하고 물도 퍼부어야 한다.
"십 년 전에 공연할 때와 지금은 배우의 연륜이 다르다. 관객에게 욕을 하는 연기도 순화되었다고나 할까. 관객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욕이 아니다. 그대로 욕을 하면 관객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에 리듬을 타는 게 중요하다. 배우의 욕이 소통이 되어야 한다. 욕도 즐길 수 있다는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 '소통하는 욕'을 듣는 관객은 기분 나쁜 듯하면서도 신선한 기분으로 욕을 들을 수가 있다. 그럼에도 공연하는 열정만큼은 변함없다."

- 인상적인 관객이 있을 법한데.
"어떤 남녀 관객이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손가락질을 하며 관람했다. 배우와 공감하면서도 손가락으로 배우와 함께 욕을 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배우에게 받은 욕 때문에 분을 참지 못하고 객석에서 일어나 한바탕 욕을 하면서 자기 스트레스를 모두 푸는 관객도 있었다. 관객도 공연을 보면서 자신들도 배우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한 나라를 알려면, 그 나라의 배우를 보면 된다는 자부심"

 연극 <관객모독>에 출연하는 기주봉과 배우들.

연극 <관객모독>에 출연하는 기주봉과 배우들. ⓒ 이다엔터테인먼트


- 형 기국서씨는 연출가다. 연출가인 형과 배우인 본인의 의견이 충돌할 때는 어떻게 절충하는가.
"작품에 대한 집중력이 극에 달해 저 자신을 힘들게 한 적이 있다. 연습하다가 연극적으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절충했다. 형에게 화를 낸 게 아니라 독백하듯 혼자 열정적으로 폭발시켰다. 당시 답답한 심경을 폭발적인 대사로 표현했다."

- 기주봉씨가 몸 담은 '극단 76'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제대할 무렵 알게 된 친구가 '친구들과 신촌에서 극장을 만든다니 가 보자'고 해서 찾아갔다. 방위 복무하기 전에 대학교에서 여러 작품을 한 적이 있어서 극장에 있던 이들 중 대표가 제게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다. 사무엘 베케트의 <마지막 테이프>라는 작품을 의뢰받았다. 당시 20대 배우였던 제가 소화하기에는 어려운 작품이었다.

(기)국서 형은 국문학을 전공했다. 고민을 하다가 형에게 작품을 분석해 달라고 달려갔다. 제대 무렵 신촌의 극장에서 만난 멤버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갔다. 극장을 국서 형이 맡으면서 연극하는 배우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극단 76이 활성화되었다. 많은 연극적인 실험을 할 수 있었다."

- 배우들은 극단 활동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우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제가 극단 생활을 처음 하던 20대에는 아르바이트라는 개념이 없었다. 생계에 답이 없었다. 그래도 생계에 지장을 받든 안 받든, 계속 배우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은 아르바이트를 2~3개 병행하면서 연극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최근 벌어진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 희생자 가운데에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이벤트업체 직원도 있었다. 그런데 그 직원이 연극인이었다. 연극만으로는 돈이 되지 않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벤트업체에서 일하다가 리조트에서 죽음을 당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 나라를 알고자 한다면 그 나라의 배우를 보면 된다. 배우를 보면 그 나라에 알맞은 최적의 언어를 알고,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다. 나라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배우에게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한 나라를 알고자 한다면 그 나라의 배우를 보면 된다. 배우를 보면 그 나라에 알맞은 최적의 언어를 알고,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다. 나라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배우에게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 이다엔터테인먼트


-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라는 평을 듣는다.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가 카리스마로 나타난 결과다. 연기하는 캐릭터가 형사 반장 등 센 역할이 많았다. 악당 연기면 끝까지 보여주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면 최선을 다해 보여드렸다. 연기하다 보니 카리스마라는 이미지가 강해진 게 아닌가 본다."

- 최근 파격적인 연기는 영화 <노리개> 속 회장 연기였다.
"여주인공 민지현씨의 노출이 담긴 영화다. 여배우가 당혹스러워했다. 당시 저랑 감독이 여배우를 설득했다. 촬영을 마치고 민지현씨가 어쩔 줄 몰라했다. 마음이 짠했다. 극 중 역할이라 감수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라고 (여배우에게)용기를 주고 싶다."

- 연극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덕목은 무언가.
"연극인의 영혼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본다. 자유로움이 배우들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한 나라를 알고자 한다면 그 나라의 배우를 보면 된다. 배우를 보면 그 나라에 알맞은 최적의 언어를 알고,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다. 나라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배우에게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지금은 연극영화과에서 화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안타깝다. 아나운서가 아닌 배우가 그 나라의 정서에 가장 맞는 화술을 구사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배우는 이에 맞는 훈련을 해야 한다."

기주봉 관객모독 기국서 경주 리조트 노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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