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만난 할머니의 큰 목소리며 다른 사람의 처지 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영 불편했다. 며느리에 대한 잔소리, 아들에 대한 더할 수 없는 자부심, 할머니의 손자 사랑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거기서도 역시 며느리와는 까끌거리고, 일하고 있는 '실버카페'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할머니와 드잡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 고생해서 내 힘으로 자식 길러 출세 시켰으니 누구 앞에서 기 죽을 일도 없고, 남한테 싫은 소리 들을 일도 없고, 세상에 무서운 것도 없다. 이런 할머니를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실제로 내 친정어머니도 시어머니도 다들 이런 모습을 어느만큼은 갖고 계시니까.

하지만 내가 유난히 불편하게 느낀 것은 그동안 20년 넘게 노인복지 현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총합 같은, 너무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칠십 어르신의 적나라한 맨얼굴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뽀글뽀글 할머니 파마에, 염치없고, 뻔뻔하고 등으로 표현하는 노인의 전형적인 모습 말이다.      

영화 <수상한 그녀>  포스터

▲ 영화 <수상한 그녀>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어린 나이에 혼자 돼서 스스로 벌어 유복자 아들을 국립대학 교수로 만든 '오말순' 할머니. 아들 며느리에 손자 손녀까지 부러울 것 없이 살지만, 집에서 살림하는 며느리가 뭐가 그리 힘든지 심장병이 있다고 해서 그게 걱정이다. 문제는 며느리의 병이 시어머니로 인한 스트레스라고들 생각하는 것.

결국 며느리가 쓰러지는 일이 벌어지고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가 오간다. 이럴 때 충격을 받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할머니는 받아들이기로 하고 생각난 김에 사진관에 들러 영정사진을 찍는데 그만, 무슨 조화인지 스무살 청춘의 몸을 갖게 된다.

영화는 이 때부터 속은 칠십 할머니지만 몸은 완전히 스무살 청춘인 '오두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젊은 시절 품었던 가수의 꿈을 이루고, 오랜만에 가슴 설레는 남자도 만나고.그러다가 오두리는 뜻하지 않게 젊음을 포기하느냐 마느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오두리가 무명 밴드의 보컬이 돼서 함께 부르는 노래들이 오십대인 내가 익숙하게 부르던 노래들이어서 좋았는데, 옆에 앉은 이십대 딸 또한 고개를 까딱거리며 박자를 맞춘다. 몸속에 할머니가 들어있으니 요즘 젊은 여자들과는 다를 수밖에. 거기에 또 매력을 느끼는 젊은 남자들의 모습에 나도 웃고 딸도 웃는다.

다르게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는 할머니.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보고 싶다는 할머니. 오두리의 정체를 알아차린 아들도 어머니께 눈물로 호소한다. 그냥 새 인생 한 번 살아보시라고, 더는 아들 걱정하지 말고 맘껏 살아보시라고.

결국 할머니는 할머니다운 마지막 결정을 내린다. 과연 그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여기에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까메오는 탄성과 함께 모두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올해 87세인 친정어머니는 아주 오래 전부터 말씀하셨다. 젊음을 돌려준다고 해도 나는 싫다고. 다른 것보다 수험생 엄마 노릇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입시가 요즘 같지 않다고는 해도 삼남매 대학 보내는 일이 그토록 힘드셨던 모양이다.

또 노년에 접어들어 수채화가로 이름을 얻으신 분이 하신 말씀도 떠오른다. 신께서 너 정말 열심히 살았으니 시간을 되돌려 주겠다고,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신다면, 'No, thank you. 됐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답하겠다는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다.

그럼 나는 어떤가. 돌아가고 싶은가,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왜 그 때인가, 돌아가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음 수업에 가서 어르신들과도 이야기를 좀 나눠봐야겠다.

그러려면 어르신들도 영화를 보신 다음에 이야기 나누는 게 좋을텐데, 극장에서 사람이 많지 않은 낮시간 같은 때에 어르신들께 단체 관람 기회를 폭넓게 드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토크쇼 같은 것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수상한 그녀> 상영관 앞  포토존에서

▲ <수상한 그녀> 상영관 앞 포토존에서 ⓒ 유경



덧붙이는 글 <수상한 그녀, Miss Granny (한국, 2013)> (감독 : 황동혁 / 출연 : 나문희, 심은경, 박인환, 성동일, 황정민, 이진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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