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황유미 추모기자회견  이날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이 울었다.

▲ 고 황유미 추모기자회견 이날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이 울었다. ⓒ 반올림


전화너머로 아빠가 "너가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해!"라고 말하던 순간, 내 눈은 딸의 죽음의 진실을 알리려는 한 아버지를 향해 있었다. 앞으로 내가 일하게 될 곳,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기자회견에,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겠다고, 부끄럽지 않은 기업이 되라며 많은 이들이 모여 울고 있었다. 그 자리에 박희정 배우도 있었다. 2013년 3월 6일 姑 황유미의 6주년 추모기자회견장이었다.

5월 어느날, 속초에서 <또하나의 가족> 영화 쫑파티가 열렸다. 쫑파티 자리에 황상기 어르신이 들어서는데, 스탭과 배우들이 눈이 빨개져 박수를 쳐댔다. 박희정 배우는 파리하게 깎은 머리를 차마 황상기 어른께 보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너무 죄송하다며, 나를 보며 딸을 떠올릴 당신께.

기자회견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던 그녀가 그새 황유미가 되어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다 쓰러졌고, 백혈병이 걸렸고, 머리를 깎았고... 택시 뒤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 결국 눈을 감았더라. 황상기 어르신 앞에는 그렇게 황유미를 꼭 닮은 배우 박희정이 서 있었다. '어쩜 딸과 뒤태까지 꼭 닮았는지...' 평소 조용히 뒤에 서 계시던 유미 엄마도 이날만큼은 희정 배우를, 아니 유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눈물이 자꾸 나 서로가 서로를 못 쳐다보고.

<또하나의 약속> 영화 속 유미네 집 속초, 유미네 집 세트장에서 찍은 사진

▲ <또하나의 약속> 영화 속 유미네 집 속초, 유미네 집 세트장에서 찍은 사진 ⓒ 반올림


내 책상 앞에는 <또하나의 가족>, 지금은 <또하나의 약속>으로 바뀐 영화의 유미네 집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 붙어있다. 그때 따뜻한 햇살 받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나 진성 합격했싸!" 유미가 좋아라하며 택시 운전을 마치고 들어온 아버지 품에 팔짝 뛰어든다. "잘했어! 우리딸" 하며 황상기 아버지는 껄껄웃고. 영화를 찍기 위해 만든 유미네 집에서 황유미씨의 행복한 나날을, 황상기 어르신의 기쁨을, 어머니의 미소를 떠올렸었다. 반올림 활동을 하며 일이 몰아칠 때면, 힘이 들 때면 사진을 흘깃 쳐다보곤 한다.

그 영화가 2월 6일 드디어 개봉한단다. 사무실은 덩달아 분주해졌다. 단체관람도 해야겠고, 공연도 했으면 좋겠고, 이참에 영화에 담긴 얘기, 담지 못한 얘기 알려야겠고...여러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영화 촬영할 때 너무 울어 힘들었다는 희정 배우가 언론에 새근새근 웃으며 나오고, 전화기 너머 황상기 어르신 목소리가 부쩍 밝다.

눈물이 웃음으로 바뀌어가는 요즘.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반도체 노동자만이 아닌 이 세상 모든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이 한뼘 올라가는 2월이 되길, 그래서 덕분에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면 참 좋겠다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반올림 권영은 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
반올림 또하나의 약속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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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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