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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문턱만 넘으면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릴 줄로만 알았는데, 취업을 위한 하나의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란다. 취업에도 퀄리티가 있으니, 대기업에 입사만 할 수 있다면 결혼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은 통과한 셈. 대기업 입사는 취업과 결혼을 동시에 보장하니 청년의 장원급제와도 맞먹을 정도로 꿈의 직장인 셈이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취업을 했건만 건강을 담보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백혈병 사망 사건이 있었던 삼성반도체의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경쟁 체제를 갖춘 환경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 요인에 노출된 채 일한다. 생산공정에서 발생하는 독성 물질을 막기 위해 송기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업무 효율 때문에 일반 마스크를 쓰고 일해야 한단다.

인간이 아닌 '부속품'으로 취급 당한 노동자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2007년 23세에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2007년 23세에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 OAL


오는 2월 6일 개봉을 앞둔 <또 하나의 약속>은 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실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2007년 23세에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천만원 안팎의 연봉을 위해 건강을 담보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게 사람의 건강이자 생명이다. 그럼에도 반도체회사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발암물질에 노출되었을 때의 위험성을 노동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영화는 고발한다. 이는 그만큼 근로자를 교체 가능한 부속품으로 바라보았다는 방증이다. 회사가 병이 든 노동자를 책임지고 치료하는 게 아니라 사직서를 들이미는 작태 말이다.

항암치료를 받느라 정신이 혼미한 윤미(박희정 분)에게 진성반도체 간부 이실장(김영재 분)이 지장(指掌)을 받는 장면은 공장 안에서 산업재해 노동자가 발생하지 않게끔 발 빠른 조치를 취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직원이 병이 들었을 때 회사에서 내쫓으면 회사로서는 무재해 근로 조건을 갖춘 입지를 다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중 한 장면. 진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윤미(박희정 분)와 아버지 상구(박철민 분).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중 한 장면. 진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윤미(박희정 분)와 아버지 상구(박철민 분). ⓒ OAL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또 하나의 약속>은 대기업의 인간 소외를 다루는 작품이다. 제품을 생산하는 근로자가 만에 하나 건강 이상으로 소진되면 사직서를 내게 만들고는 다른 새로운 직원으로 받아들이는 인간 소외 말이다. 이런 작업 환경 안에서라면 근로자는 인간으로서의 대우가 아닌 '부속품'으로 취급당한다.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부품 말이다.

청춘을 진성전자에 몸 담은 교익(이경영 분) 역시 화학약품과 가스에 장기간 노출돼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는 건 일반 노동자 외의 간부에게도 얼마든지 인간 소외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도체 공장의 '흑역사'는 이실장이라는 인물로 대표된다. 피해자 가정인 상구(박철민 분)의 주위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어른거린다. <또 하나의 약속>은 이런 지점에 있어서만큼은 백혈병으로 가족을 잃은 한 가정의 비극과 아울러 '민간인 사찰'의 어두운 그림자를 어른거리게끔 만든다.

진성전자는 윤미의 남동생 윤석(유세형 분)이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누나의 목숨을 앗아간 직장에 몸 담게끔 회유하기도 한다. 딸 윤미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상구의 염원을 아들로 말미암아 분산시키고자 하는 진성전자의 전략적인 획책에 다름 아니다.

<또 하나의 약속> 가운데서 유념해 두어야 할 부분은 진성전자를 상대로 상구와 노무사(김규리 분)가 벌이는 투쟁이 외롭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진성전자에서 근무하며 목숨을 잃은 이는 윤미가 다가 아니다. 목숨을 잃은 또 다를 누군가가 있음에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유가족이 있었기에 상구와 노무사는 이들과 힘을 합쳐 진성전자라는 골리앗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게다. 각개전투로 진성전자와 소송전을 벌였다면 백전백패하였을 소송전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유가족과의 연대로 말미암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상구(박철민 분)와 노무사(김규리 분).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상구(박철민 분)와 노무사(김규리 분). ⓒ OAL


그렇다면 <또 하나의 약속>과도 같은 영화가 한국 영화가에서 왜 재생산되고 화제를 불러일으키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건 바로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사회가 정의에 목마르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요즘 흥행에 성공하는 한국영화 몇몇만 살펴보자. <용의자>에서 최정예 특수공작원 지동철(공유 분)이 음모에 맞서 홀로 싸워야만 했으며, <변호인>에서 송우석(송강호 분)은 용공 조작으로 심신이 훼손당한 피고인에게 왜 그토록 무죄를 부르짖겠는가.

<또 하나의 약속> 역시 대기업의 폭압의 메커니즘에 맞선 한 아버지와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세 영화 모두 억울한 개인의 목소리를 스크린에서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스크린은 달달한 멜로 같은 환상만 관객에게 제시하지 않는다. 관객이 스크린을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걸 제시할 때 관객은 대리만족을 느끼고 입소문을 보탠다.

<또 하나의 약속>은 <하모니> 이후 남자 관객이 훌쩍이는 흐느낌을 간만에 들을 수 있던 영화임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 정의가, 바른 시대 정신에 얼마만큼 목말라 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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