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이 1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이 1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지난 12월 18일 개봉, 한 달 만에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 1980년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변호인>은 송강호·곽도원·오달수·김영애 등 배우들의 열연은 물론 탄탄한 시나리오와 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력까지 3박자가 어우러져 '천만 신드롬'을 달성했다.

특히 양우석(46) 감독은 한국영화 사상 데뷔작으로 첫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감독이 됐다. 천만 관객 돌파를 얼마 앞두고 양우석 감독과 마주했다. 

"부림사건 세상에 알린 '변호인', 기억하고 있었다"

- 영화 개봉 초반에 인터뷰하지 않고, 뒤늦게 인터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마어마한 오해가 기다리고 있던 작품이라서, 자칫 말을 보탰다가 오해를 부를까 봐 걱정됐다. 그리고 관객들은 아무래도 배우들을 보고, 배우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것 같았다. 데뷔작이라서 관심도 없을 듯해서...(웃음)"

- 영화가 잘 될 거라고 예상했나.
"조심스러웠고, 긴장하면서 영화를 만들다 보니까 반응보다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서 스코어를 예측할 생각도 못 했다. 현장은 정말 즐거웠다. 즐거운 긴장감이 있었다."

- '천만 영화'다. 어떤 생각이 먼저 드나.
"일단 다행이다. 나뿐만 아니라 스태프, 배우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시대에 대한 이유, 실존적 고민이다. 이것을 이해해주고, 그 이해를 통해 과거를 성찰하기를 바랐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성찰을 이해해주실까 고민을 많이 했다. 관객들도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언제부터 영화화를 생각했나.
"(영화의 모티브가 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1988년 5공 청문회 때 각 신문에 도배됐던 분이다. 5공 청문회 때 질문도 잘하시더라. 당시에는 사법고시 합격자가 워낙 적었는데 고졸인 사람이 붙어서 판사까지 하고 국회의원이 되어서 지난 7년간 서슬 퍼런 5공에서 큰소리친 사람들한테 할 말 다하는 모습에 암행어사를 본 게 아닌가 했다. 진정한 입신양명의 모습이었던 것 같고. 언론의 엄청난 관심 속에서 전 국민의 99%가 몰랐던 부림사건이 뭔지 알려졌고, 부산에서 굉장히 돈을 잘 벌던 사람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영화 <변호인>의 '2000만 배우' 송강호

▲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 "김재익 전 경제수석비서관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면 1980년대 대한민국을 상징하던 민주화 경제화 혁명의 물결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두 분이면 1980년대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분의 이야기가 나오는 족족 기억하고 생각했다." ⓒ 위더스필름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지금 이 시기에 꺼낸 이유는?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놀란 것은 '왜 이렇게 피로해할까'였다. 조건에 완전히 짓눌려서인 것 같았다. 그런 20대에게 전 세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김재익 전 경제수석비서관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면 1980년대 대한민국을 상징하던 민주화 경제화 혁명의 물결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두 분이면 1980년대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분의 이야기가 나오는 족족 기억하고 생각했다. 웹툰으로 먼저 시작하려고 했는데,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변호인>을 만들게 됐다."
(기자 주 - 고려대학교 88학번으로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한 양우석 감독은 졸업 후에 MBC 프로덕션에서 영화 프로듀서로 일했고, 올댓스토리에서 이야기 창작, 로커스에서 애니메이션 제작 등을 했다. 또한 웹툰 '스틸레인' 'V' 등을 출간했던 웹툰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후에 제작자인 최재원 대표를 만나 <변호인>을 영화로 만들게 됐다.)

- 웹툰으로 만들려고 했던 <변호인>을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직접 감독으로 나선 이유는.
"제작사 대표가 내게 '다른 감독을 구하기보다 직접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해서 약간 오기가 생겼다. 당시에는 '독립 영화로라도 만들자'고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송강호가 함께하게 되면서 이렇게 판이 커지게 됐다."  

"송강호와 내 이름 딴 '송우석 변호사', 부담 잔뜩 걸었다"

 "영화 초반에 '이 영화는 허구'라고 썼고, 이름을 고민하다가 사실 작가, 배우, 감독이 하는 건 시뮬레이션이니까 '지금이 만약 35살에 노무현이 그 사건을 맡았을 때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건 부담감이었다. 그래서 '선배님 성 걸고, 제 이름 걸고 부담 잔뜩 걸고 합시다!'라고 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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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관심은 물론, 부림사건 당시의 실존 인물을 떠올리며 영화를 보는 이들도 많다.
"모티브가 된 분의 사실보다는 진실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차동영이란 인물은 없다. 송우석 변호사와 대비되는 캐릭터를 고민했다. 우리 사회에서 그런 시련을 가진 분이 많았다. 6.25를 겪으면서, 이데올로기를 피와 몸으로 배워서 그런 마인드가 많을 테고, 절대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반면 송우석은 자신이 아는 순댓국밥집 아들을 보고 자신의 신념에 대해 성찰한 인물이다. 차동영과 송우석에게는 모두 신념이 있었지만, 한쪽은 인문학적 성찰이 있었던 반면 다른 한쪽은 아예 없었다고 볼 수 있다."

- 송우석 역을 맡은 송강호의 연기력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송강호라는 큰 배우가 합류하면서 제대로 된 상업 영화로 탈바꿈했다. 긴가민가했던 분들도 확신하게 됐다. 송강호라는 분은 배우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라면 주어진 대사와 역할을 놀라운 연기력으로 보여주지만, 송강호에게는 대본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있다. 문장뿐만 아니라 문맥과 행간, 전체적으로 이 영화가 어떻게 보일 것인지를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말하지 않지만 서로 다 아는 암묵적 합의가 굉장히 많았다. 송강호의 위대한 점은 관객의 눈으로 자신을 본다는 것이다. 그건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일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냉정하게, 객관화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 주인공인 송우석은 양우석 감독의 '우석', 송강호의 '송'이 합쳐진 이름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름으로 쓸데없는 오해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영화 초반에 '이 영화는 허구'라고 썼고, 이름을 고민하다가 사실 작가, 배우, 감독이 하는 건 시뮬레이션이니까 '지금이 만약 35살에 노무현이 그 사건을 맡았을 때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건 부담감이었다. 그래서 '선배님 성 걸고, 제 이름 걸고 부담 잔뜩 걸고 합시다!'라고 했다." 

- <변호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다 좋다. 특별히 꼽자면 마지막 장면이다. 세트 마지막 날 찍은 분량이다. '국민이 법률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조인이 맨 마지막에 서야죠'라는 대사가 있었다. 그날은 그분 생각이 많이 났다. 돈을 버는 변호사가 아니라 법을 공부하고 법을 지키고, 널리 확산시키려고 했던 그분 말이다. 법이 있지만, 이에 상관없이 살아가는 분들이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이 집약돼 보여서 볼 때마다 울컥한다."

  영화<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이 1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차 공판은 좌충우돌, 2차는 실망감, 3차는 고문을 표현했다. 고문을 따로 뽑아서 보여주기보다 법정에서 피고인의 모습을 통해서 이 학생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술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또 4차에는 신념 대 신념의 충돌, 5차에는 반전이라는 게 있었으면 했다." ⓒ 이정민


- 이 소재를 법정 영화로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옛날에는 '스포츠 영화, 동물 영화, 법정 영화는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국가대표> <마음이> <부러진 화살> <도가니> 등이 그나마 그런 것을 깨줬다. 그럼에도 법정 영화는 많이 부담됐다. 하지만 영화라는 것은 정형시와 비슷해서 장르가 있어야 관객이 이야기하고 소화하기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장르가 필요했다.

1차 공판은 좌충우돌, 2차는 실망감, 3차는 고문을 표현했다. 고문을 따로 뽑아서 보여주기보다 법정에서 피고인의 모습을 통해서 이 학생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술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또 4차에는 신념 대 신념의 충돌, 5차에는 반전이라는 게 있었으면 했다. 5차에서는 양심선언 그런 것을 단선으로 가져왔다. 다른 사건이지만 이 이야기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법정 영화의 틀로 가져왔다."

- 신념과 신념이 충돌하는 장면에서, 송강호와 대립하는 곽도원이 있었기에 그 팽팽함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것 같다.
"곽도원의 순발력과 근성은 대단하다. 차동영 역할에 순식간에 몰입했다. 그의 집중력과 몰입도에 반했다. 남을 때리는 건 굉장히 힘든 연기다. 그런 역할을 하고 나면 대부분 후유증이 있기 마련인데 잘 극복했다. 현장에서의 친화력도 대단했다. 지금도 참 감사하다."

-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 임시완(제국의아이들)은 1980년대 부산 학생으로 완벽하게 분했는데.
"임시완은 오디션에서 놀라운 각오를 보여줬다. 이 역할은 각오가 굉장히 중요했다. 대역을 쓰기가 난감해서 고문 장면도 다 소화해야 하니까. 부산 사투리 역시 외국어보다 힘들어서 흉내 내기가 어려울 수 있는데 실제 부산 출신인데다, 심지어 시나리오와 마찬가지로 부산대 공대를 다녔더라. 30년 선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싱크로율이 높았고, 김영애 선배랑 닮기까지 해서 좋았다. 임시완은 엄청난 노력을 보여줬다."

"분노가 며칠 가는 건 쉽다...중요한 건 성찰을 통한 지속"

  영화<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이 1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분노가 며칠, 몇 주 가는 건 쉽다는 것이다. 이 분노가 성찰을 통해 몇 년이 지속됐고, 나를 경멸했던 사람들마저도 내게 동조해줬다는 것을 넣고 싶었다. 그걸 영화에 넣지 않으면 결국 패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꼭 그렇게 영화가 끝나야 했다." ⓒ 이정민


- 당시를 겪지 않았던 2, 30대는 영화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내게 6.25를 물어보면 잘 모르는 것과 같다. <태극기 휘날리며>나 <고지전> 등을 보면서 '아, 저랬구나' 하는 것처럼. 지금 젊은이들도 내게 6.25가 그랬듯이 '1980년대는 저랬구나'라고 보면 좋겠다."

- 철도 파업 등 지금의 시대적인 환경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더 높게 한 것 같다.
"모든 이야기는 사회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야기는 반영을 넘어 사회와 의사소통하기도 한다. <변호인>은 우연히도 이런 시대를 만나서 메시지의 상호작용이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됐든 고 노무현 전 대통령한테서 와서 송강호라는 굉장히 신뢰하는 배우가 있었다. 그 두 가지가 합쳐져서 송우석이 태어났다. 관객들은 송강호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심을 두고 영화를 보게 된 것 같다."

- 엔딩이 감동적이다. 그동안 송우석을 무시했던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그를 지지하는데.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분노가 며칠, 몇 주 가는 건 쉽다는 것이다. 이 분노가 성찰을 통해 몇 년이 지속됐고, 나를 경멸했던 사람들마저도 내게 동조해줬다는 것을 넣고 싶었다. 그걸 영화에 넣지 않으면 결국 패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꼭 그렇게 영화가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객을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념의 공감과 연대가 이분을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한 거다. 거의 실화에 가까운 영화다."

- 차기작 계획은.
"써둔 웹툰이 몇 편 있다. 다음에는 가벼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 인생을 좌우한 것은 호기심이었다. 일관성은 없다.(웃음) 그보다, 고혈압에 고지혈증 등이 있어서 건강 회복이 우선이다."


변호인 양우석 송강호 노무현 곽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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