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맨> 영화 포스터

▲ <플랜맨> 영화 포스터 ⓒ 영화사 일취월장,롯데엔터테인먼트


한정석(정재영 분)은 1분 1초를 모두 계획대로 사는 남자다. 알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모든 일상은 계획대로 진행한다. 매사에 빈틈없이 살던 그에게도 사랑의 감정만큼은 풀리지 않는 숙제다. 항상 12시 15분이면 드나들던 편의점에 일하는 지원(차예련 분)에게 사랑을 고백했건만 자신과 닮은 모습이 싫다며 보기 좋게 퇴짜를 맞는다. 지원을 위해 변화하고자 결심한 정석은 그녀의 후배 유소정(한지민 분)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무계획적인 삶에 도전한다.

영화는 그동안 많은 강박증 환자를 정성껏 치료했다. 어떤 이와도 사랑을 나누지 못했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멜빈 유달(잭 니콜슨 분)을 완치시켰고, 매사에 "안돼"를 외치던 <예스맨>의 칼 알렌(짐 캐리 분)의 치료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이번 환자는 증상이 독특하다. 아침 6시엔 기상, 6시 35분이면 샤워를 하고, 8시면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8시 30분엔 출근을 하고, 정확히 8시 42분엔 건널목을 건너야 한다. <플랜맨>은 매사에 계획을 세우고 사는 남자의 이야기다.

끊임없이 시간에 쫓기는 한정석의 모습은 시간 강박증에 걸린 우리네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정석은 "계획대로 움직인다는 건 세상이 잘 돌아가는 것이다. 그게 이상한가? 성실한 거지"라고 반문한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것이 성실함의 지표임은 분명하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빠른 회전은 근대화 이후 최고의 기치가 아닌가.

하지만 세상사가 기계적으로 돌아간다고 능사는 아니다. 한정석은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계획대로만 살 뿐이다. 자로 잰듯한 인생을 사는 그의 삶에서 타인과의 교류는 들어갈 틈이 없다. 한정석의 삶을 통해 영화는 24시간을 시 단위, 분 단위, 나아가 초 단위로 잘게 쪼개어 바삐 사는 인생이 과연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주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기계처럼 살지 말고 때로는 느슨하게, 때론 즐기면서 살자고 노래한다. 마치 자우림의 노래인 '일탈'의 "뭐 화끈한 일, 뭐 신 나는 일 없을까"라는 가사처럼 말이다.

치밀한 남자의 이야기...정작 영화는 촘촘하지 못해

<플랜맨> 영화 스틸

▲ <플랜맨> 영화 스틸 ⓒ 영화사 일취월장,롯데엔터테인먼트


지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소정의 밴드에 들어간 정석이 흡사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처럼 행동하는 소정과 티격태격 거리는 에피소드는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플랜맨>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남자를 소재로 삼았던 것에 비해 정작 영화의 구성은 그다지 촘촘하지 못하다. '플랜맨'이란 소재로 흥미를 끌던 초반을 지나 정석과 소정이 아웅다웅하는 재미를 주는 중반까지는 버틸 만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정석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사연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소정의 과거가 맞물리면서 흥미로움은 동력을 상실한다. 특히 정석의 과거는 내용에서나 밝혀지는 과정 모두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여기에 한국영화가 유달리 집착하는 '눈물'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자신의 과거에서 도망치려 했던 두 남녀가 서로에게 치유 받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무리하게 신파의 틀에 맞춰 다시 재단된다.

비정상적으로 행동하던 남자가 계기를 통해 큰 변화를 겪으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내용의 영화들에 비해 <플랜맨>은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치료법이 없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뛰어난 이야기와 놀라운 연기, 훌륭한 연출이란 삼박자를 고루 갖춘 걸작이다. <예스맨>은 희대의 희극배우인 짐 캐리만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다소 알려지지 않은 <스트레인저 댄 픽션>은 예상을 깨는 스토리텔링을 구사한 바 있다. 반면에 <플랜맨>은 새로움도 부족하고, 재미도 약하다. 그저 비슷한 영화들의 이런저런 요소를 흉내 내는 선에 그쳤다.

<플랜맨> 영화 스틸

▲ <플랜맨> 영화 스틸 ⓒ 영화사 일취월장,롯데엔터테인먼트


흥미롭게도 배우 정재영은 '시간'을 다룬 영화에 연달아 출연했다. <열한 시>에서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절대적인 명제를 확인했다면, <플랜맨>에서는 시간은 소중하게 사용하는 의미를 확인한다.

정재영은 시간을 열심히 달렸건만 두 편의 영화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열한 시>는 한국 SF 영화가 척박하다 보니 연기 톤을 맞추기 어려웠었고, <플랜맨>은 흔치 않은 소재를 흔하게 소비하는 한계에 갇혀버렸다. <열한 시>와 <플랜맨>은 '정재영'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아는 여자> <웰컴 투 동막골> <바르게 살자> 등의 장진 감독의 손길이 닿은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김씨표류기> <내가 살인범이다> 등에서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던 정재영이기에 아쉬움은 크다. 충무로는 다시금 '정재영 활용법'에 대해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우리 선희>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정재영의 다음 영화인 <역린>은 그를 잘 활용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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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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