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이비'의 목소리 연기로 출연한 배우 권해효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영화 '사이비'의 목소리 연기로 출연한 배우 권해효가 지난해 12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유성호 기자| 주연과 조연의 구분이 단순히 작품 내에서의 비중이 기준이라면 권해효에겐 그런 분류는 그다지 의미 없어 보인다. 우리가 접하는 드라마와 영화엔 늘 비중이 큰 배우와 적은 배우는 있기 마련이었다. 그 안에서 맛깔나게 작품을 채우면 우리는 마치 감투라도 되는 듯 '명품조연'이란 수식어를 붙이며 해당 배우를 치켜세우곤 했다. 그다지 영양가 없는 추임새일 뿐이다.

내공으로 따지면 권해효는 사실 명실상부 대한민국 남자 배우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연극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다시 TV 드라마와 각종 단막극 등으로 그의 활동 영역은 넓고 깊다. 1992년 이장호 감독의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로 대중들 앞에 나서기 전부터 그는 극단 활동을 하며 연기를 다져왔다.

그리고 또 하나, 권해효는 소신 발언 연예인으로 종종 회자되곤 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사실 권해효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부분도 있다. 언제부턴가 언론은 그를 '소셜테이너', 그러니까 정치·사회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배우라는 규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사이비> 인터뷰(관련기사:"영화 천박하게 대하는 세상, 이런 영화도 나와야죠")를 통해 만난 권해효지만, 2014년 신년을 맞아 권해효라는 거울을 통해 바라본 한국 연예계, 영화계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전한다.

"'주연급'이란 말은 모순, 배우라는 말만 있을 뿐이다"

인터뷰 당일 권해효는 마침 부산 해운대에서 열렸던 단편 영화제의 시나리오 심사 일정을 소화한 후 급히 올라와야 했다. 한 시간 정도 늦겠다는 사전 양해를 구한 권해효가 인터뷰하자마자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작가들의 상실감이 그 어느 직업군보다 가장 클 거 같다"였다.

배우를 면전에 두고 "다작을 하면서도 왜 주연에는 욕심 내지 않는가"란 질문을 준비하던 차에 선방을 맞은 셈이다. 그의 시각에서는 배우는 독립한 단독자가 아닌 방송·영화계의 일부였고, 창작자와 스태프 역시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 중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제게 주연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글쎄요... 배우는 주연과 조연으로 나눠볼 직군은 아닌거 같아요. 전 그저 좋은 역을 하고 싶은 겁니다. 한국사회에서 방송·영화·연극계를 가만히 보면 골품제가 있는 거 같아요. 영화는 성골이고, 방송은 진골이고, 연극은 뭐 그 이하의 무대로 보는 거죠.

전 동의하지 않아요. 예전에 한창 들었던 이야기가 '왜 요즘 왜 영화 안하세요?'라는 질문이었는데 그때마다 전 '왜 요즘 연극 안 하세요'라고 묻는 사람은 없는지 생각합니다. 역할에는 크고 작은 건 없어요. 다른 역할이 있을 뿐이죠. 영화에서 전 장의사(<더 웹툰:예고살인>)이기도 했고, 양아치 아빠(<피 끓는 청춘>)기도 했어요. 이 역시 다 제가 처음 해 본 다른 역할들이었죠.

'주연급'이란 말은 사실 제작자가 주판을 놓고 캐스팅을 고민할 때 쓰는 말입니다. 배우들 사이에서 쓰기에는 한심한 말이죠. 할리우드에서는 탐 크루즈 등의 배우들이 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해요. <유주얼 서스펙트>의 케빈 스페이시 역시 그 영화로 남우 조연상을 받았죠. 우리 기준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우리가 왜곡된 관점을 갖고 있기에 배우 송강호가 짧고도 강한 양아치 역할을 하고 이야기에서 퇴장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건지도 모릅니다. 급과 역할이 맞지 않는다고 캐스팅에서 제외되는 일은 옳지 않잖아요."

"돈 때문에 나서서 발언하지 못하는 현실...슬프다"

 영화 '사이비'의 목소리 연기로 출연한 배우 권해효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회 문제에 참여하기에 소셜테이너라고 불리는 걸 알지만 왜 그렇게 규정짓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전 그렇게 불리는 사람이기보다 더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사회 참여가 제 전부는 아니니까요." ⓒ 유성호


한국 사회의 문화 정책과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만 밤을 새서라도 얘기할 기세였다. 그의 얘기가 무겁게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는 권해효 본인 역시 개인적 이익에 좌지우지하지 않고 나름의 소신을 지키며 배우 생활을 했기 때문이리라. 권해효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스크린쿼터(1년에 일정한 일수 이상 국산 영화를 상영하도록 한 제도) 축소 문제로 많은 영화인들이 들고 일어설 때 개인적 양심에 따라 "스스로가 거짓말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동참하지 않았다.

일정 사안에 대해 왜곡 보도를 일삼는다는 이유로 조선·중앙·동아일보의 인터뷰를 거부했고, 광우병 사태, 대학생 반값 등록금 등과 관련한 촛불집회 때 사회를 보는 등 배우로서가 아닌 사회인으로서 그의 전력 또한 화려하다. 언론이 그를 두고 '소셜테이너'라는 별칭으로 규정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어떤 때는 '폴리테이너'(정치적 목적을 갖고 활동하는 연예인)라고 불리기도 했어요. 사회 문제에 참여하기에 소셜테이너라고 불리는 걸 알지만 왜 그렇게 규정짓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전 그렇게 불리는 사람이기보다 더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사회 참여가 제 전부는 아니니까요.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어렸을 때는 좀 더 유명인이 되면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하며 고민도 했지만, 그때 안 했으면 지금은 더 못했을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연예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위축돼 있는 점도) 엄밀하게는 돈 때문이죠. 어떤 발언을 했을 때 그 파장을 돈으로 계산하기에 나서기 쉽지 않은 거죠. 슬픈 현실이에요."

'몽당연필' 활동 계속..."재일 조선학교 출신에도 관심 가져주길"

 영화 '사이비'의 목소리 연기로 출연한 배우 권해효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일관계와 역사 왜곡 얘기가 나올 때마다 재일 동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부터도 일본 내에서 동포들의 차별이 있었는데 아베 정권 들어 학비 보조금도 끊긴 상태예요. 차별에 대해서도 알려야 하고 올바른 역사 관계 정립을 위해서도 지원해야 합니다." ⓒ 유성호


사회 이슈에 대한 발언보다 권해효가 더욱 열정을 쏟고 꾸준히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재일 교표, 그 중에서도 일본 내 한국어 교육의 산실인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단체인 '몽당연필'을 꾸려가는 일이다. 드라마 일로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통역을 맡았던 재일교포들을 만나며, 조선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그였다. 2011년부터 권해효는 '몽당연필'의 대표로 꾸준히 조선학교 학생들과 교류하고 있었다.

"2011년 3월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때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2014년 봄이면 만 3년이 되네요. 안치환씨 등과 함께 꾸준히 후원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정기적으로 작은 무대를 열고 있고요. 근데 이게 갈수록 어렵습니다. 재일 조선학교 재학생 중 평균 60% 이상이 대한민국 국적인데 조총련 계라는 사회 인식 때문에 불이익이 많아요. 이걸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남북관계에 따라 영향 받는 건 사실입니다.

한일관계와 역사 왜곡 얘기가 나올 때마다 재일 동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부터도 일본 내에서 동포들의 차별이 있었는데 아베 정권 들어 학비 보조금도 끊긴 상태예요. 차별에 대해서도 알려야 하고 올바른 역사 관계 정립을 위해서도 지원해야 합니다. 이건 몽당연필만 하는 게 아니라 일본 내 양심적 단체들과 함께 하는 일이에요. 연대가 중요하죠."

단순히 조선학교를 후원한다는 명목으로 같은 동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나오고 있단다. 북한 학교라는 왜곡된 일부의 시각에 대해 권해효는 "조선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 강제로 일본에 끌려간 분들의 자손"이라며 "나라가 힘이 없어서 국민을 지키지 못한 걸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월 중 '몽당연필'은 2014년 주요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때 다시금 인터뷰를 하기로 기약했다. 작품 활동과 더불어 꾸준한 선행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또 다른 힘이 느껴졌다. 우리는 이 배우, 아니 이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나. 올 한 해 영화 <피 끓는 청춘> <관능의 법칙> <소수의견>에서 배우 권해효를 만나보고, '몽당연필'을 통해 동분서주 하는 사람 권해효를 주목해보자.

권해효 사이비 몽당연필 일본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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