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중순, 학교에서 듣는 현장취재 수업을 위해 서울시청 신청사 내부를 방문했다. 그리고 신청사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처음 접했다. 돈은 많이 들였을 것 같지만, '쓰나미 디자인'으로 불리며 시민들을 집어삼킬 듯한 '폭력적인' 위용을 자랑한다고. 서울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신청사 모습이 공개되던 시점은 내가 잠깐 서울을 떠나 외국에 나가 있을 때라 이런 논란이 있었다는 걸 잘 몰랐다.

하지만 먼 발치에서 봤을 때는 마치 구청사를 삼키려는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내가 보고 느낀 신청사 내부는 꽤 예뻤다. 최상층인 하늘광장까지 갈 수 있는 '누드' 엘리베이터도 좋았고, 담쟁이 덩굴이 덮고 있는 에코플라자의 모습은 왠지 소설 '해리 포터'에 나오는 '마법부'에 가면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때문에 나는 시청 건축 프로젝트가 그렇게까지 욕을 먹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울시청에 다녀온 바로 그 날, 신문에서 시청 건축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곧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신청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에 대한 나의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나는 특히 시청 내부의 이 '그린월'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것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논의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특히 시청 내부의 이 '그린월'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것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논의가 있었을 것이다. ⓒ 영화사 못


'사공이 많아 산으로 간' 서울시청 신청사 공공건축

 <말하는 건축 시티:홀>(감독 정재은) 포스터.

<말하는 건축 시티:홀>(감독 정재은) 포스터. ⓒ 영화사 못

공공건축. 공익성과 공용성을 갖는 건축물을 말한다. 서울시 공공기관의 으뜸인 서울시청은 특히 공공건축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0월 24일 개봉한 정재은 감독의 <말하는 건축 시티:홀>은 서울시청 신청사 설립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1980년대 즈음부터 꾸준히 있었던 시청 신청사 건립 논의는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기에 구체화된다. 장소와 디자인이 결정되고, 삼성물산이 턴키 방식(설계·시공일괄입찰방식)에 의해 2005년 최종 입찰을 받았다. 하지만 삼성물산과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가 내놓은 일명 '(깨진) 항아리' 디자인은 '덕수궁 주변 경관을 고려할 때 너무 높다'는 문화재청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후 2008년 건축가 4명의 지명공모를 통해 당선된 유걸 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 대표의 디자인으로 공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잡음은 있었다. 한 시공사(이 경우에는 삼성물산)가 모든 '키'를 잡는 턴키 방식 때문에 원 디자이너인 유걸이 공사 과정에서 제외된 것이다.

유걸 대표는 계속 참여를 요구해 결국 2011년 '토털 디자인 마스터플래너'라는 새로운 직책으로 공사에 뛰어든다. 하지만 발주처인 서울시와 시공업체인 삼성물산, 그리고 수많은 하청업체 사람들이 얽힌 공사현장에서 그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 결국 그의 디자인 중 제일 상징적인 부분인 꼭대기층의 '태평홀'에 가장 신경을 쓴다.

영화 후반부에는 '태평홀'의 반사판 각도 문제를 가지고 회의를 하는 아이아크와 삼성물산, 하청업체, 서울시의 갈등이 크게 드러난다. 지난달 30일 오후 '작가를 만나다' 행사를 위해 서울아트시네마에 방문한 정재은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시청을 짓는 7년 동안 엄청난 회의와 논의들이 있었을 것"이라며 "관객들에게 '반사판 몇 개 때문에 이 정도면, 큰 결정에서는 얼마나 논란이 많았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서울시청 신청사 건축 관계자들이 회의를 하는 모습. 시청을 짓기 위해 이런 갈등과 합의과정이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

서울시청 신청사 건축 관계자들이 회의를 하는 모습. 시청을 짓기 위해 이런 갈등과 합의과정이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 ⓒ 영화사 못


얼기설기 얽힌 시청 건축 프로젝트, 누구 하나만의 잘못일까?

천만 서울시민들이 이용할 건물이며 일제 강점기 이후 8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처음 짓는 시청이었으니, 이 공사에 각계의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관심은 신청사 건축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갔다. 2008년 지명공모에서 "2등 안이 건축적으로는 가장 좋았지만, 시민들의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이 유걸의 안이라 생각해 선택하게 되었다"는 한 심사위원의 심사후기는 이 이상한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토록 비난을 받는 시청을 누구 하나만의 잘못이라 말할 수 있을까. 시민들의 의견을 지레짐작한 심사위원들의 잘못도 있고, 초반에 턴키 방식 때문에 원 디자이너의 의견을 반영할 수 없었던 구조적인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영화 후반부에서 주요 갈등으로 다루는 것처럼, 아이아크가 내놓은 자잘한 의견을 완공일 준수 때문에 무시해야만 했던 행정주의의 문제까지.

공사를 발주한 서울시와 수주한 삼성물산·삼우, 중간에 끼어들어야 했던 아이아크와 유걸, 그리고 굵직굵직한 결정을 내린 시와 다수 위원회들. 모두가 공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으며 모두가 '뼈 빠지게 지어 놨더니 욕만 먹은 공사'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2등, 혹은 3·4등 안이 선정되었어도 어려움은 있었을 것이고, 어떤 면으로든 비난은 끊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재은 감독도 '누구의 잘못'이라는 답을 내리고 있지 않다. 그저 갈등 상황만을 담았을 뿐이다. 그는 영화 공식 블로그에 "지금의 신청사가 좋은가 나쁜가의 이분법적 논리가 아니라, 우리가 왜 더 좋은 건축물을 가지지 못했는가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밝혀 놓기도 했다.

그는 시청사 건축을 "애환의 프로젝트"라고 이야기한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신청사의 모습은 시민들의 의식과 여론이 종합적으로 내린 결론"이라며 "우리 모두가 대단한 것을 원했지만, 그걸 만들기 위한 사회적 준비는 안 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쓰나미 디자인'으로 욕을 먹는 서울시청 신청사. 누구의 잘못으로 신청사는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 공공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쓰나미 디자인'으로 욕을 먹는 서울시청 신청사. 누구의 잘못으로 신청사는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 공공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 영화사 못


"시청의 이야기는 누군가 촬영해 놓아야" 공공건축에 대한 관심의 시작

정 감독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서울시와 삼성물산 측에 수없이 촬영을 요청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촬영팀을 반기기도 했고, 어느 날은 차갑게 대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 블로그에 "(촬영을 하며 공사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던 부분은 '시청의 이야기는 누군가 촬영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써놓았다. 그의 영화의 의도도 그런 것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공공건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고 그에 대한 시민들의 담론을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나는 서울시민임에도 새로운 시청의 건축에 대해 전혀 몰랐을 정도로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신청사를 둘러보고, 이 영화를 접하게 되며 '공공건축'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됐다. 어떤 사람은 신청사를 '쓰나미 같다'고 욕을 할 수도 있고, 나처럼 '괜찮은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건물을 향한 관심이다.

정 감독은 30일 감독과의 대화 시간 내내 '공공건축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내려' 한 의도를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질문한 관객의 말이 인상 깊었다. "건물을 사람으로 비교한다면 앞에 있는 구청사는 할아버지이고 신청사는 아기라고 비유할 수 있을 텐데, 이 아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 아기는 사생아입니다. 엄마 아빠가 자기 역할을 다해서 낳지 못하고 돌보지 못한, 좀 불행한 존재예요. 사람들이 신청사가 사생아라는 것을 알게 되면 연민의 눈을 보내지 않을까요. 거기서부터가 관심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말하는 건축 시티:홀 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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