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잠긴 김진욱 감독 (서울=연합뉴스) 10월 2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두산 대 삼성 경기. 두산 김진욱 감독이 경기를 살펴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생각에 잠긴 김진욱 감독 지난 10월 2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두산 대 삼성 경기. 두산 김진욱 감독이 경기를 살펴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기사 수정 : 28일 낮 1시 44분]

사상 최초로 감독교체 없는 '따뜻한 겨울'은 결국 환상에 불과했다. 2013년을 마지막 한 달 남겨두고 프로야구계에서 첫 감독 경질의 뉴스가 나왔다. 두산은 27일 김진욱 감독의 해임을 전격 발표했다. 후임으로는 송일수 2군 감독이 선임됐다.

한국시리즈 준우승 차지한 팀에서 감독 경질... 충격적

4강탈락팀도 아닌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한 팀에서 감독을 경질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올해 4강 진출에 실패한 KIA 선동열, SK 이만수, 롯데 김시진, 한화 김응용 감독 등은 모두 재신임을 받으며 남은 계약기간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김진욱 감독도 두산과의 계약이 아직 1년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비록 고비에서 삼성을 벽을 넘지 못하고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올 시즌 보여준 성과를 바탕으로 다음 시즌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해 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았다. 하지만 두산은 올 시즌 김진욱 감독이 보여준 리더십에 만족하지 못했다. 준우승이라는 성과보다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 그리고 지난해부터 누적되어온 팀 운영상의 시행착오에 대한 평가들이 더해지며 결국 감독교체라는 문책으로 이어졌다.

김진욱 감독은 2011년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한 김경문 전 감독(NC)과 김광수 감독대행의 뒤를 이어 두산의 제 8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소통의 리더십을 통하여 신구조화를 통한 끈끈한 팀워크를 구축하는가 하면, 전임 감독체제부터 이어져온 두산 특유의 '화수분'야구를 발전시켜 각 포지션에 걸쳐 끊임없는 무한경쟁 체제를 더욱 강화하여 전력을 극대화했다.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두 시즌 간 승률은 139승 116패 3무로 0.541를 기록했으며 부임 첫해 4강, 올해는 준우승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김진욱 감독의 리더십은 그동안 두산 팬들 사이에서도 엇갈린 평가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정규시즌부터 지적되어온 투수교체 타이밍을 비롯하여 포스트시즌에서 고비마다 김진욱 감독의 용병술을 놓고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잦았다.

지난해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패배를 비롯하여, 올해 중반 한때 6연패 수렁에 빠지며 6위까지 추락하기도 했고, LG-넥센과의 2위 싸움에서 밀려 4위까지 추락하는 등 김진욱 감독은 이미 몇 차례 롤러코스터 행보를 통하여 신임의 고비를 겪었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미라클 두산'의 행보를 이어가며 재평가 받는 듯 했으나, 3승 1패로 앞섰던 5차전 이후 소극적인 경기운영으로 삼성에 역전의 빌미를 허용한 장면은, 팬들뿐 아니라 구단에게도 김진욱 감독의 용병술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두산이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김진욱 감독을 교체한 것 자체는 그렇다 쳐도, 왜 하필 지금 인가하는 의문은 떨쳐내기 힘들다. 김진욱 감독은 일본에서 한창 팀의 마무리 훈련을 진행하던 중에 경질소식을 전해 듣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욱 감독은 최근까지 자신의 거취에 대한 동향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코칭스태프와 함께 다음 시즌 구상에 여념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책성이라면 차라리 시즌이 끝난 뒤 바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다. 계약기간을 아직 1년 남겨놓은 상태에서 굳이 해임이라는 수단을 택했다는 것은, 결국 두산 스스로 2년 전의 감독선임이 실패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두산은 최근 선수단에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FA자격을 얻은 이종욱, 손시헌, 최준석 등을 모두 다른 구단에 내준 것을 시작으로, 2차 드래프트와 방출, 트레이드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하여 김선우, 이혜천, 임재철 윤석민 등이 줄줄이 팀을 떠났다.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김진욱 감독의 경질은 화룡점정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역대 프로야구 스토브리그를 통틀어 이 정도로 단 기간에 한 팀을 갈아엎는 수준의 변화도 드물었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반드시 긍정적인 의미만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두산의 변화가 그동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데 대한 갈증이라면, 기존 전력을 유지하면서 전력보강에 더 신경을 써야했다. 굳이 경험 많은 베테랑들을 줄줄이 내치면서 리빌딩에 돌입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세대교체가 목표라면 우타 거포요원으로 키울 수 있는 윤석민을 트레이드한 것은 명분이 떨어진다. 아무리 야수층이 두터운 두산이지만 4번 타자를 맡을 수 있는 거포 자원은 현재 리그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두산이 외부 영입을 위하여 투자를 많이 해 왔던 것도 아니다.

감독교체의 타당성? 의문투성이

마지막으로 감독교체의 타당성이다. 김진욱 감독을 교체하면서 송일수 감독을 선임한 것이 어떤 기준에서 이루어진 인사인지는 의문투성이다. 두산은 마지막 우승을 이끈 김인식 감독 이후 최근 10년간은 김경문과 김진욱, 두 명 모두 내부 인사를 승격시켜 감독직에 임명했다. 두 감독 모두 일정한 성적을 내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우승에는 실패했다.

송 감독의 인선은 또 다른 내부 승격이라는 연결 고리 외에 별다른 명분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두산의 2군 감독을 역임해왔지만 송 감독은 지도자 경력의 대부분을 코치와 스카우터로 보냈고 1군 감독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이도 무려 63세로 현역 중 김응용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노장이다. 변화를 추구한다면서 우승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팀의 오랜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도 아니며, 소통을 중시하는 젊은 감독들을 선호하는 요즘의 트렌드와도 벗어나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 과정에서 두산 프런트의 역할과 책임론이다. 팀 전력의 한축을 담당하며 헌신해오던 베테랑과 유망주가 7~8명이 한꺼번에 팀을 떠났고, 결국에는 사령탑마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경질됐다. 현장의 목소리보다는 구단 프런트와 고위층의 입김에 의하여 주도된 변화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올해도 프로야구는 감독들의 무덤이었다. 자진사퇴하거나 그런 형식을 빌려 경질당했다.

현대야구에서 프런트의 입김이 강화되는 추세라지만, 그에 걸맞은 책임도 져야만 진정한 의미의 '프런트 야구'가 가능하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선수와 감독만이 책임을 지고 변화의 대상이 되어야한다면, 과연 프런트는 팀의 운명에 대하여 어떤 책임을 질 자세가 되어있는지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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