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영화 포스터

▲ <소원> 영화 포스터 ⓒ (주)필름모멘텀,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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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쉬리>가 흥행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기며 한국 상업영화의 신기원을 연 후에 많은 한국 영화들이 개봉했지만 장르화에 성공하진 못했다. 그러나 조폭 장르만큼은 예외였다. 조폭 장르의 조폭 누아르와 조폭 코미디란 두 흐름은 여전히 한국 영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마도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느끼는 사회 분위기와 무조건 웃고 싶다는 바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조폭 장르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르화에 성공한 다른 하나는 스릴러다. 이유 없는 살인이나 잔혹한 살인 수법 등 사회에 급증하는 사이코패스 현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충무로는 <추격자>를 시작으로 많은 스릴러를 양산했으며, <황해>로 장르의 정점을 쳤다. 이후 사이코패스가 잔혹하게 피해자를 죽이던 전개는 가해자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가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로 무게가 이동하며, <돈 크라이 마미>나 <공정사회> 같은 영화를 잉태했다.

아울러 사적 정의를 실현하는 피해자의 시선에서 탈피하여 가해자에 입장에서 바라보는 <가시꽃> 같은 다른 시선에서 접근하는 영화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동 성폭행을 소재로 삼은 이준익 감독의 신작 <소원>도 기존의 영화들과 다른 시선에 선 작품이다.

자칫 분노와 신파로 흐를 수 있었던 소재...희망으로 채워

<소원> 영화 스틸

▲ <소원> 영화 스틸 ⓒ (주)필름모멘텀,롯데엔터테인먼트


2008년 범인 조두순이 8세 여아를 성폭행해 평생 불구로 만들며 사회적 공분을 촉발했던 '조두순 사건'을 직접 가져온 <소원>은 적어도 영화를 보기 전까진 지금까지 등장한 여타 스릴러 영화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거라 짐작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 음악 3부작으로 불리는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 팩션으로 현실을 꼬집었던 <황산벌>과 <평양성> 같은 평범하지 않은 행보를 보여주었던 이준익 감독이 왜 '조두순 사건' 같은 사회적 파장이 짙은 소재에 발을 담근 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천인공노할 사건을 묘사하며 분노를 일으키고, 그런 분노의 기운에 쉽사리 편승하려는 것으로 의심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피해자에게 가해진 사건의 과정이나 피해자 가족의 분노 폭발보다 피해자가 다시금 세상과 마주하게끔 일어서는 삶의 의지를 주목했다. 물론 <소원>은 현실을 고발하는 자세를 망각하진 않는다. 용의자를 긴급 체포하기 위해 피해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권력의 부주의로 인해 신변이 노출되면서 언론 등에 당하는 2차적인 피해는 어떤 것인지, 재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나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솜방망이 같은 처벌 수위까지 차분히 짚어간다.

영화에서 소원(이레 분)의 상담을 맡은 소아정신과 전문의 정숙(김해숙 분)은 소원의 아빠 동훈(설경구 분)과 엄마 미희(엄지원 분)에게 시간이 지나면 애가 달라질 수 있기에 몸의 치료와 더불어 마음의 치료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어리고 착한 소원은 엄마에게 '그일'이 창피해서 학교에 제대로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런 소원이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소원에게 지워진 힘겨운 마음의 짐을 하나씩 내려준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아동 성폭행 사건을 우리 시대의 화두인 '힐링'으로 풀어가는 <소원>은 이준익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칫 사회 고발성 영화로 흐를 수도, 아니면 신파적인 분위기나 복수의 에너지로 팽배할 뻔했던 영화를 이준익 감독은 특유의 낙관적이며 희망적인 손길로 조율한 동화로 영화를 풀어간다.

<소원>의 발견은 단연코 이레...투박하지만 진솔한 느낌

<소원> 영화 스틸

▲ <소원> 영화 스틸 ⓒ (주)필름모멘텀,롯데엔터테인먼트


상처받은 소원이 아빠를 멀리하고, 그런 소원에게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인형옷을 쓰고 마음의 문을 열고자 노력하는 아빠의 모습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든 동화다. 이것은 이준익 감독이 그동안 자신의 영화에서 보여준 순수한 마음에다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이 함께 투영된 동화이기에 진실함이 느껴진다.

또한, <그놈 목소리>에서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했으나, 그때는 오직 과잉된 연기만 보여주었던 설경구는 <소원>에서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한동안 아쉬운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가 <타워> <감시자들> <스파이>에서 과도하게 준 힘을 빼고 주위 배우들과 함께 녹아드는 연기를 보여준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그렇기에 엄지원, 김상호, 라미란 같은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

<소원>의 최고의 발견은 단연코 이레라는 아역 배우다. 근래에 등장한 '연기 신동'이라 불리는 다른 아역 배우들이 분명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지만, 무엇인가 기계적이고 인위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들과 달리 이레는 덜 다듬어졌고 투박해도 진솔하게 다가온다. <여행자>의 김새론 이후 실로 깜짝 놀랄만한 아역 배우가 나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태어났을까?"를 되묻는 소원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들려주고, 소원이 다른 이에게 "너 참 태어나길 잘했다"는 희망의 목소리를 들려주게끔 바꾸는 <소원>엔 이준익 감독의 따뜻함이 감지된다. 웃음과 눈물을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이준익은 우리 시대의 뛰어난 이야기꾼이며 광대다. 앞으로는 상업영화를 은퇴하겠다는 등의 경솔한 소리는 절대로 하지 마시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드시는 데만 매진하길 희망한다.

소원 이준익 설경구 엄지원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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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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