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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TV 속에서 여성이 악역으로 그려지는 방식은 다소 전형적이었다. 아무리 능력 있고 뛰어난 외모의 여성이라도 악역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주인공을 질투하고 삼각관계에 휘말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본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라지만 결국 그들의 욕망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대척점에 놓인 주인공과 엮이는 남자 주인공이다. 결국은 뛰어난 자신들의 능력을 겨우 남자 빼앗는데 사용하는 주체적이지 못한 캐릭터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남성 악역들이 비리가 많은 기업 회장, 악덕 고리대금업자, 정계의 거물로 그려지는 사이, 여성은 그런 직업군으로 등장해도 결국은 결혼을 반대하는 시어머니나 남자를 빼앗으려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색다른 시도도 있었다. <선덕여왕>의 미실이나 <야왕>의 주다해는 본인의 야망과 욕망을 위해 행동하는 주체적인 악역이었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미실이 실질적으로 악역이라기보다 주인공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야왕>에서 주다해의 악행이 점차 설득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진정한 권력형 여성 악역의 등장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각종 전략과 술수로 무장한 권력형 악역에 있어서 여성들의 영역은 아직 남성에 비해 좁은 것이 사실이었다.

본능과 욕구에 충실한 여성 악녀, 섬뜩하지만 신선

'황금의 제국' 최동성 회장의 아내인 한정희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악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복수심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SBS <황금의 제국>의 한정희(김미숙 분). ⓒ SBS


그러나 이제 여성들이 변화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누군가의 엄마나 약혼녀가 아닌, 주체적인 캐릭터를 갖춘 인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황금의 제국>과 <투윅스>는 각각 한정희(김미숙 분)와 조서희(김혜옥 분)라는 여성 악역을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드라마의 여성 악역 캐릭터들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일단 <황금의 제국>의 인물들은 단 한 명도 '절대 선'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욕망을 가진 인물들로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주인공인 장태주(고수 분)나 최서윤(이요원 분)마저 사랑타령 보다는 권력 싸움에 집중하고 있는 드라마에서 한정희가 돋보이는 것은 김미숙이 보여주는 뛰어난 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드라마 전반을 장악하는 중요한 스토리의 구심점이기 때문이다.

복수심에 불타 치매에 걸린 남편의 마지막을 외롭게 만들고 그 딸에게도 지옥을 선사하려는 모습은 단순한 오해나 치사한 간계가 아닌, 철저히 정치적인 머리싸움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업의 계열분리나 주식의 분배 등을 무기로 자신이 철저하게 망가지더라도 다른 인물을 파멸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단순한 악녀 이상의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황금의 제국>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결국 치매에 걸리며 자신이 복수를 다짐했던 남편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그가 끝까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MBC 수목드라마 <투윅스>에서 두 얼굴을 가진 조서희 역으로 열연중인 배우 김혜옥

MBC <투윅스>의 조서희(김혜옥 분). ⓒ MBC


<투윅스>의 조서희 역시 단순한 악녀가 아니다. 그는 깨끗하고 바른 정치인이라는 이미지 뒤에 숨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기반해 행동하는 악녀다. 한정희가 악한 인간의 본성을 가진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그려진다면 조서희는 주인공들이 절대적으로 쳐부숴야하는 절대 권력을 가진 악이다.

조서희는 꽤 현실적인 생동감을 얻었다. 이는 김혜옥의 뛰어난 연기력이 뒷받침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인물에 대한 묘사가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청렴을 가장하면서도 뒤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늘리려는 목적을 가진 권력형 인물들을 우리는 그동안 많이 목격해 왔다. 그러나 조서희가 신선한 것은 그런 인물이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인 탓이 크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둠의 세계와 손을 잡고 자신의 손만은 절대 더럽히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뒤에서 조정하는 그의 섬뜩함은 남성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 이들의 이중적인 태도는 여성이기에 더욱 더 그 간극을 벌릴 수 있다. 상냥한 겉모습과 어두운 속내가 표현될 때의 격차는 시청자들에게 더욱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이들에게는 모정이라는 강점이 있다. 한정희는 자신의 아들을 그룹의 후계자로 세우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조서희 역시 정신지체를 가진 아들을 해외에 유학시킨 채 자선 경매에서 한 몫을 단단히 챙겨 그와 함께 스위스로 도피할 거라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모정마저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그려지며 그들의 행동마저 합리화 시키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진정한 권력형 악녀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아이 때문이다'라는 변명이 그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 그 이상을 얻기 위해서 정치 싸움에 뛰어든 그들에게 시청자들은 전율을 느낀다.

이제 악녀들은 남성을 쟁취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목적보다 자신들의 본능과 욕구에 중점을 둔 형태로 그려지고 있다. 남성의 힘이 없이도 자력으로 자신의 위치를 만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잡으려 하는 그들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지만, 그만큼 신선하다.

이제 여자 악녀들도 단순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그 단순하지 않은 악녀를 소화해 낸 연기자들이 무엇보다 반가운 이유는 드라마의 분위기를 신선하고 독특하게 그려내는 데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역할을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소화해 낸 그들의 능력은 가히 박수칠 만하다. 앞으로도 이런 신선한 캐릭터들을 계속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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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 투윅스 김혜옥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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