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번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생(生)보다 우둔해 지리라. 가능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을 것이다"로 시작하는 나딘스테어의 시(詩) <인생을 다시 산다면(If I had my life to live over)>을 떠올리는 영화 한 편이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 날아들었다. <까밀 리와인드>(7월 개봉, 노에미 르보브스키 감독 겸 주연>가 영화제목이다.

 고단하고 남루한 삶을 살던 마흔의 까밀은 16살 소녀시절로 돌아가는 기적을 맛 본다.

고단하고 남루한 삶을 살던 마흔의 까밀은 16살 소녀시절로 돌아가는 기적을 맛 본다. ⓒ 노에미르보브스키


목에 달아 놓은 튜브서 물감으로 만든 피가 터지고 대사라고는 "아~악" 외마디 비명뿐인 연기를 하고 돌아온 집에서 위스키 한잔 하는 중년의 무명여배우, 까밀에게 헤어진 남자가 부동산업자를 데려왔다. 집을 내놓기 위해서다. 남자가 그 집값 절반의 권리가 있다나 뭐라나. 치사하다. 까밀 손엔 타다 만 담배가 들려있고, 집 구석구석엔 잡동사니들이 한가득. 아 남루한 인생!

까밀에게 가족이라곤 딸 하나 남았다. 아침부터 술잔을 들고 있는 엄마가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엄마 대신 술잔을 치우고 담배를 끈다. 학교 가는 길에 엄마를 데리고 나와 일터로 보내준다. 애정어린 키스와 함께. 까밀이 딸이되고 딸이 엄마가 된다.… 까밀한텐 마흔  번째 연말연시가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무도회장 낯선 군중 속, 위스키에 절어 낙화하듯 스러지는 까밀. 그녀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맘마엠므빠빠, 빠빠엠므맘마'의 24년 전 엄마 품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섭섭하다. 외모는 마흔 살 그대로인 채다. 병원에 쓰러져 있던 까밀을 발견하는 엄마와 아빠는 다정하지도 안 다정하지도 않다. 표정이 있지도 없지도 않다. 중년인 이들 삶은 재미있지도 재미 없지도 않다. 마치 그 둘에게 말괄량이 딸이 맘에 들기도 들지 않기도 한 것처럼. 부모님의 눈빛은 말한다. '맘에 안 들지만 사랑하고 있다. 까밀은 딸이고 멋모르는 사춘기 철부지 소녀이기도 하며 또 소중한 인격체이기 때문에...'라고. 아침에 학교 가라고 깨우는 엄마에게 까밀은 '학교는 다닐 만큼 다녔는데…'라며 어리광을 피운다. 평범한 가정에 '트러블메이커'인 딸은 집안의 활력소(?)가 된다.

노란 포터블 카세트에 연결한 노란 헤드폰을 머리에 얹자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자전거 페달을 지치면서 까밀은 열여섯 소녀가 된다. 스커트 아래 울퉁불퉁한 다리의 살집이 보라색 스타킹과 썩 어울린다. 까밀을 남루한 인생으로 내 몬 장본인, 이혼한 남편인 에릭의 24년전 모습을 교정으로 들어서는 중에 마주친다. '만나지 말자. 미래의 불행의 씨앗이다.' 피해 다닌다. 안타깝게도 운명은 피할 수 없다. 예정대로 까밀은 빠지지 않는 반지를 끼고 에릭의 여자로 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지금 이곳은, 과거를 제대로 보기 위해 온 것이다. 바꾸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컴퓨터 하드디스크처럼 과거를 포맷할 수 없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든 것이다. 현재의 초라한 까밀의 모습은 결코 남편 때문만은 아닌 건가?

아빠와 엄마를 다시 만난 기념으로 까밀은 마이크를 들고 녹음기를 튼다. 엄마와 아빠에게 소감을 말하라고 한다.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시키는 대로 하는 엄마와 아빠의 무뚝뚝한 표정은 말한다. '까밀, 너를 사랑해'라고. 그것을 알고 있는 까밀은 가는 시간이 아쉽고 오는 시간이 두렵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엄마는 내 눈 앞에서 예정대로 쓰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 마흔 그대로 24년 전으로 돌아간 까밀의 당시 엄마와 아빠. 더 올드해 보이는 까밀의 좌충우돌이 영화의 재미를 더 한다.

나이 마흔 그대로 24년 전으로 돌아간 까밀의 당시 엄마와 아빠. 더 올드해 보이는 까밀의 좌충우돌이 영화의 재미를 더 한다. ⓒ 노에미르보브스키


마이크를 대고 엄마가 집 창틀에 갇힌 벌에게 하는 말을 녹음하는 까밀. '따뜻해서 왔구나. 꼬마 꿀벌아 네 집을 찾아가렴. 행운을 빈다.' 16살 시절 책상처럼 침대처럼 옆에 늘 계셔 줄 줄 알았던 엄마. 엄마의 목소리를 녹음해 놓고 리와인드 시켜 듣고 또 듣는 까밀이 사랑스럽다.

시간과 함께 청춘도 소멸한다. 사랑도 식는다. 보고 싶은 엄마도 사라진다. 16살로 돌아간 까밀이 마흔의 외모 그대로 인 이유를 알았다. 과거를 그저 완벽하게 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인 게다. 미래에서 온 까밀의 이야기를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 물리선생에게 '딸이 있기 때문에 돌아가야 해요'할 때, 까밀에게 16살 소녀의 설렘은 없다. 24년 전으로 돌아간 까밀은 여전히 마흔이기에 중간 중간 위스키와 담배를 찾는 중년이 불쑥불쑥 나타나곤 한다.

까밀은 다시 마흔 살의 현실로 돌아온다. 꿈에서 깨어나듯.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면 이혼 중인 남편에게 집을 빼앗겨야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 무명배우로 연명해야 한다. 술을 줄여야 한다. 담배를 끊어야 한다. 다시 사랑도 해야 한다.

과연 다 해야 하는 걸까? 다시 '나딘스테어'의 싯구절을 되뇌어보자. "이번 생보다 우둔해지리라.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다 해도 좋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아무래도 좋다. 살아온 만큼 살 날이 펼쳐져 있으니 그것으로 됐다.

24년 뒤에 돌아보고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여기에서 잘 살아보자. '벼르고 벼른 제사 물 떠놓고 지낸다'는 속담이 있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다가 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너무 안이하게 준비하다가 망치기도 한다. 하나하나 해결하자 한번에 하나 씩 할 수 있는 것부터.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하게 하지 말자. 남의 도움도 '정도 껏'을 넘는다면 과감하게 사양하자.

남편, 에릭에게 친절하게 설명한다. '당신과 처음 사랑을 나누었던 시절을 보고 왔노라고, 그때 당신은 멋졌고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사람이라고…' 전 남편 에릭의 눈빛이 흔들린다. 16살에 만나 교교한 달빛아래서 사랑을 나누고 임신을 해버린 우리의 소녀 까밀.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들끓던 청춘의 거품이 사라지고 난 뒤 들리던 산울림의 '청춘'이 애달프다.

 헤어진 남편 에릭과 재회한 까밀, 그녀의 운명은 까밀과 결혼하는 거였다.

헤어진 남편 에릭과 재회한 까밀, 그녀의 운명은 까밀과 결혼하는 거였다. ⓒ 노에미르보브스키


다시 찾은 물리선생은 일흔 살이 되어 있다. '다시 만나면 사랑을 속삭이고 키스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까밀은 키스를 해줄까 해주지 않을까… 영화의 키워드는 'here'와 'now'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지금에 집중해야 한다는….

'오지 않은 전혀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지금 난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일은 물론 의미 있는 일이다. 다만 '지금'의 무조건적인 희생은 부질없다. 가버리고 나면 잘 했건 못했건 결과에 대한 후회는 남는 법이니까. 후회를 안 하는 사람에겐 미련이라도 남게 되어 있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과거라는 시간의 유산을 간직하면서 살게 된다.

그래서 까밀은 말한다. '지금과 여기가 소중하니 하루하루 사랑하면서 살라고.' 까밀을 연기한 감독이자 주연 배우인 '노에미 르보브스키'는 64년생이니 우리나이로 오십이다. 사십을 연기하다니 뻔뻔하다. 그러다가도 다시 생각하면 귀엽다. 나딘스테어의 싯구절처럼 사는 여자란 생각이 들었다.

"가능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을 것이다."


까밀 에릭 나딘스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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