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티브 잡스: 더 로스트 인터뷰>의 포스터

영화 <스티브 잡스: 더 로스트 인터뷰>의 포스터 ⓒ AVA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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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스티브 잡스는 TV 시리즈 <괴짜들의 승리>의 진행자 밥 크링글리를 만나 장시간에 걸친 인터뷰에 응하였다. 해당 인터뷰는 일부만 편집되어 방송에 사용되었지만 이후 원본 필름이 유실되어 행방이 묘연했다가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해인 2011년, 시리즈의 연출자인 폴 센의 차고에서 VHS 복사본이 우연히 발견됨으로써 <스티브 잡스: 더 로스트 인터뷰>라는 제목의 인터뷰 영상이 세간에 공개되기에 이른다.

스티브 잡스의 1995년은 어떠했을까. 1985년 애플의 공동경영자로 선임되었던 최고경영자 존 스컬리는 회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끊임없는 불화를 일으켰고, 결국 이사진은 잡스가 더 이상 회사에 보탬이 되지 않는 존재로 전락하였다는 판단 하에 그를 회사에서 내쫓기에 이른다. 자신이 세우고 일구어낸 기업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을 충실히 따르던 애플 출신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넥스트(NeXT)라는 이름의 컴퓨터 회사를 창립, 화려한 재기를 꿈꾸었으나 현실의 높은 장벽을 실감하며 처참한 실패를 맛보게 된다.

NeXT를 창업할 즈음인 1986년, 그는 영화사 루카스필름에서 컴퓨터그래픽 부문을 담당하던 자회사 픽사를 인수하는데 애초 NeXT의 부수적인 업무에 이용할 목적이었던 픽사는 <틴토이>라는 제목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일약 아카데미 수상을 거머쥐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게 된다. 알다시피 이후 픽사는 <토이 스토리><몬스터 주식회사><니모를 찾아서> 등 공전의 히트작으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발돋움한다.

20년 전 스티브 잡스가 제시한 오늘날의 비전 

 영화 <스티브 잡스: 더 로스트 인터뷰>의 한 장면

영화 <스티브 잡스: 더 로스트 인터뷰>의 한 장면 ⓒ AVA엔터테인먼트


그러나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러한 성공은 본 인터뷰가 이뤄진 1995년 이후에 벌어진 일들로, 당시 스티브 잡스는 고전을 면치 못하던 NeXT의 경영난으로 인해 결국 야심차게 개발한 차세대 워크스테이션의 생산을 중단하고 기약 없는 앞날을 도모하던 야인의 신세에 다름 아니었다.

이렇듯 1995년, 만으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현재 우리가 그의 이름에 대해 지니고 있는 거대한 메타포-IT 산업분야를 넘어 인문, 문화, 사회학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와는 다소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물론 애플의 창립 이후 그가 내놓은 애플 Ⅱ, 매킨토시 등은 당시 개념조차 없던 퍼스널 컴퓨터 시장을 열어젖히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온 발명품이라는 평가를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갖은 기행과 무모한 모험정신으로 이제 갓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선 애플의 위상을 뒤흔들지도 모를 문제아적 존재라는 의심의 눈초리 또한 공존하는 상황이었다.

20대 초반에 이룬 성공으로 사회적 명예와 부를 거머쥐었지만 반복되는 실패로 추락을 거듭한 실리콘밸리의 성공신화. <괴짜들의 승리>라는 프로그램 제목에 빗대자면, 당시 그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과거의 영광에 도취되어 아직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특출한 괴짜'에 다름 아니었다.

놀라운 것은 본 인터뷰가 스티브 잡스 일생의 '흑역사'에 가까운 시기에 이뤄진 것임에도, 애플 초창기와 복귀 후 이뤄낸 눈부신 성공 시기에 여러 매체와 가진 인터뷰들에서 드러나는 특유의 거침없는 자신감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과거의 업적을 돌이켜봄에 있어 그것을 일련의 요행이나 시대의 우연적 흐름이 작용한 산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하고-분명히 그러한 측면도 작용했겠지만-이를 냉철한 분석과 현실 판단을 근거로 획득한 필연적인 결과로써 확신한다. 1993년에 이미 공정 생산라인을 중단함으로써 경영난을 인정한 바 있는 NeXT의 현재와 전망에 대해서도, 이를 결코 단순한 시행착오나 실패로 단정 짓지는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이라는 공룡기업이 이미 거대한 파이를 차지하여 한치 앞도 낙관적으로 내다볼 수 없는 1990년대 중반의 업계 상황에서, 향후 10년간의 전망과 계획에 대해 설파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도 그는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인터넷(웹)과 객체지향 기술이 인간의 삶을 좌우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그의 전망. 이는 물론 빌 게이츠와 팀 버너스 리 등 90년대 업계의 거두에 의해 예견된 바 있는 새롭지 않은 전망이었다. 하지만 애플 Ⅱ로부터 이어지는 객체지향 기술에 대한 잡스의 집요한 성찰은 매킨토시, 아이맥, 아이팟 등 그가 내놓은 IT 기기의 기저를 관통하는 철학에 가까운 것이었고, 인터넷(웹)으로 인해 컴퓨터가 단순히 계산의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넘어 인간 간의 소통의 장치로 변신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는 그의 비전은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통신기기들을 통해 상당 부분 현실로 구현됨으로써 20여 년 전 그가 내놓은 낙관적 전망에 보다 큰 무게를 느끼게 한다.

스티브 잡스는 본 인터뷰가 이뤄진 이듬해인 1996년, 자신의 회사인 NeXT를 인수합병시키는 조건으로 11년 만에 애플로 복귀하게 된다. 잡스가 빠진 애플은 끝없는 추락을 거듭하였는데, 그를 경영컨설턴트로 다시금 불러들인 즈음에 이르러서는 무려 1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복귀 이후, 회사의 골칫거리였던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특허분쟁 해결을 시작으로 스티브 잡스는 경영권을 서서히 되찾기 시작하여 머지않아 당시 CEO였던 길 아멜리오의 공석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스티브 잡스 복귀 이후, 아이팟과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애플의 부활은 익히 알려진 사실일 것이다.

요컨대, 1995년 이후 스티브 잡스의 인생은 화려한 후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잡스 생애의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 알려지지 않은 하프 타임의 숨고르기를 <스티브 잡스: 더 로스트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 더 로스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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