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제국' 공식 포스터

▲ '황금의 제국' 공식 포스터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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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은 여러 면에서 독특한 드라마다. 내용 면에서는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하고 사건들은 엄청나게 역동적이지만, 등장인물들의 동선은 차분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심리전만은 더없이 팽팽하며, 특히 사건의 빠른 진행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드라마는 10% 내외의 시청률로만 보자면 그리 커다란 성공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마니아를 형성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저기서 작품에 대한 극찬이 쏟아지고 있는데, 그것이 높은 시청률을 만나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치열한 두뇌싸움이 내용의 대부분이어서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 이야기의 얼개가 워낙 복잡해 중간에 뛰어들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은 아니다. 

가족 간 충격적 배신과 갈등, 따스한 지점은 없나

<황금의 제국>에서는 등장인물들 간의 배신이 횡행한다. 인물 간의 관계 속 감정 상태가 어떠한가는 이 드라마에서 큰 이슈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며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은 바로 '가족의 붕괴'다. 가족관계마저도 배신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으니 누구에게든 쉽사리 감정이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얼마든지 수긍 가능하다.

가족 간의 갈등 양상은 여느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는 것이지만, <황금의 제국> 속 가족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돈과 권력에 따라 부나방이 되는 형제들, 아들을 자신의 복수의 도구로 삼는 어머니 등, 반목과 배신, 갈등과 음모 등은 흔히 말하는 '콩가루 집안'의 전형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온함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그것은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도 등골 서늘한 경험이 된다. 대개 감정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믿고 있고, 어려울 때 큰 위안이 되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가족구성원 간의 반목은 충격과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방금 전까지도 한 편이었던 이들이 등을 돌리자마자 적이 되기도 하고, 전화 한 통화나 대화 한마디로도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계속하여 서로를 쪼아대고 물어뜯는데, 한시도 마음을 놓았다가는 언제 '집어 던져질지' 알 수 없는 긴장상태의 연속이다. 그것은 '가족' 신화가 아직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우리의 정서에 크게 반하는 일로, 이 드라마로 접근하고픈 사람들을 밀어내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장태주(고수 분)와 최서윤(이요원 분)이 결혼을 통해 '가족'이 되었다. 벼랑 끝에 선 그들의 최후의 선택이다. 손에 피를 묻힌 장태주와 그 손에 반지를 끼워 준 최서윤, 그들에게 감정은 사치요, 오로지 '황금의 제국'을 지켜내고, 입성하기 위한 일들만이 살아갈 힘이다.

그들을 지켜보는 것은 숨이 막힌다. 뭔가 물꼬가 필요하다. 사방이 살얼음판인데 뭔가 마음이 놓이는 물렁물렁하고 따뜻한 지점은 없을까.

'위대한 모성' 윤설희의 사랑, 그 또한 이기심의 한 축일 뿐

'황금의 제국' 윤설희는 장태주에 대해 무한의 사랑을 퍼붓는다. 그것은 모성의 위대함을 닮았다.

▲ '황금의 제국' 윤설희는 장태주에 대해 무한의 사랑을 퍼붓는다. 그것은 모성의 위대함을 닮았다. ⓒ SBS


그 중심에는 바로 윤설희(장신영 분)가 있다. 그는 국회의원 김영세(이원재 분)를 죽인 장태주를 대신해 살인죄를 뒤집어썼다. 궁지에 몰린 그의 회생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김영세에게 접근한 것도, 최서윤과의 결혼을 권한 것도 바로 윤설희다. 자신은 감옥에 가야 할 처지임에도 말이다.

애인의 성공을 위해 희생하는 가엾은 여인이라니! 눈물겨운 장면이지만 조금 의아하기는 하다. 마치 구시대의 유물 같은 윤설희의 눈물겨운 희생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감정이라곤 바싹 말라버린 이 드라마의 한구석에도 인간적인 온기가 남아 있음을 말하는 것일까?

윤설희의 사랑은 세상 끝에 몰릴지라도 늘 최후의 보루로서 존재하는 모성과 닮았다. 모성이란 그 자체로 이타심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한 개인에게 있어 그보다 더 큰 사랑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냉정함과 대비되어 빛난다. 그러나 과연 그 사랑은 칭송받아 마땅한 것일까? 그의 행동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기심에 견주어 엄청난 가치가 있는 숭고한 행동일까?

서글픈 일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황금의 제국> 속 인물들의 감정 상태는 그들의 본질과는 별다른 상관이 없다. 배신이 횡행하는 인물들 속, 특정 인물에게 무한 애정을 보이는 따스한 마음의 소유자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윤설희의 사랑도 결국 누군가에게는 해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 매우 인간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악역을 맡은 인물들의 행위와 별 다를 바 없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영역' 안에서만 발휘되는 사랑과 희생은 이타가 아니라 이기에 가깝다.

윤설희의 무조건적인 믿음과 희생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이 드라마의 인물들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영락없이 뒤통수를 맞고 마는 그들에겐 그 어떤 조건에서도 질끈 눈감아줄 방패막이가 필요하다. 그래서 윤설희의 무조건적 사랑은 감정이란 그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황금의 제국> 속 색다른 돌파구가 된다.

그러나 만일(!) 윤설희가 장태주를 배반하는 일, 혹은 그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는 놀라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감정'이란 때로는 참으로 빠르게 변질되기도 하며, 매우 흔들리기 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허망한 지점을 곧잘 짚어내는 빼어난 통찰력, 바로 그것이 <황금의 제국>의 수많은 매력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황금의 제국 장신영 고수 이요원 손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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