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비판한 영화 <전쟁과 한 여자>를 만든 제작자 테라와킨 켄(왼쪽)과 시나리오 작가 아라이 하루히코

일본을 비판한 영화 <전쟁과 한 여자>를 만든 제작자 테라와킨 켄(왼쪽)과 시나리오 작가 아라이 하루히코 ⓒ 정지욱


일본 영화평론가이자 대학 교수인 테라와키 켄은 문화청 문화부장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지한파((知韓派)이기도 한 그는 도쿄 한국독립영화제 개최를 통해 한·일 문화교류에 앞장서는 등 한국영화를 해외에 널리 알린 공로로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라이 하루히코는 일본의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다. <바이브레이터>, <케이티(KT)>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일본 독립영화의 대부라 불렸던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제작사에서 조감독으로 출발해 일본의 극작가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한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15일 개봉하는 <전쟁과 한 여자>가 이들의 작품이다. 아라이 하루히코는 시나리오를 썼고, 테라와키 켄은 제작자로 나섰다.

'전쟁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영화는 2차 대전 종전을 전후한 일본 사회의 모습을 소재로 하고 있다. 강도 높은 노출과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장면이 이어지지만 단순히 성애영화로만 보기에는 영화의 주제가 묵직하다. 

"도조 히데끼는 전범이면서 천황은 왜 전범이 아니지?"


 8월 15일 개봉하는 <전쟁과 한 여자>

8월 15일 개봉하는 <전쟁과 한 여자> ⓒ 엣나인필름

<전쟁과 한 여자>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전쟁 장면은 없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한 사람이 파멸되는 과정을 통해 반전 의식을 고취시키고, 전쟁 범죄를 부인하고 헌법 개정을 통해 우경화의 길로 들어서는 일본 사회를 비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음을 은유적으로 암시한다.

특히 전범 일본의 책임을 거론하며 천황을 비판하는 부분은 강렬하게 전달된다. "도조 히데키는 전범이면서 천황은 왜 아니냐?"는 주인공의 질문은 상당히 도발적으로 비쳐지지만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는 부분이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영화 개봉에 맞춰 한국을 찾은 두 일본인은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와 반성 없는 최근의 모습을 비판하며, 종군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사안임을 분명하게 강조했다.

아라이 하루히코는 "웹상에서는 여러 가지 말을 들었고 배급사를 통해서 상영하지 말라는 요구가 들어온 적도 있지만, 스스로 나라를 좋게 만들기 위해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이 애국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테라와키 켄 역시 "일본의 교육을 담당했던 정부 관료로서 이제까지의 일본 교육 제도에 나쁜 점이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비판하는 것이고, 매국노나 역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일본을 좋게 만들기 위해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기 나라의 나쁜 점을 자신들이 스스로 비판하지 않으면 사회는 좋아지지 않는다"면서 "일본인이 일본의 나쁜 점을 비판하는 것은 일본을 좋게 바뀌게 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인으로서 일본에 대한 건설적 비판은 일본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에 우리 외에는 이런 영화 만들 사람이 없다"

 영화 <전쟁과 한 여자> 제작자 테라와키 켄

영화 <전쟁과 한 여자> 제작자 테라와키 켄 ⓒ 정지욱

<전쟁과 한 여자>의 줄거리는 종전을 앞둔 시점에서 한 쪽 팔을 잃은 후 제대한 상이군인이 성적 불구인 상태로 강간과 살인을 해 정신외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에 의해 사창가에 팔린 유곽 여성이 염세주의자 소설가와 동거하는 이야기가 함께 전개된다.

2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 일본 사회 모습을 보여 주지만,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와 종군 위안부 문제 등이 영화 속에 담겨 있다.

영화는 제작비를 투자하겠다는 회사가 없어 감독과 테라와키 켄의 개인 돈으로 독립영화로 제작됐다. 상업영화에서는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없는 데다, 정치 사회 역사를 모르는 젊은 영화인들이 만들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테라와키 켄은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그런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뿐이었다"며 "우리가 특별히 만들었기 보다는 우리 외에 만들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가 상당히 자극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지적에 "원래 일본 영화는 표현의 폭이 넓습니다. 특히 우리가 아니라 누가 만들더라도 이 정도의 폭력과 성적인 수위는 나왔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한국 영화처럼 표현의 제약이나 억압이 많지 않고 자유롭게 보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사회를 본 한 관객은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저런 영화를 만들 용기를 내게 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아라이 하루히코는 "용기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고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종군위안부 강제 동원은 일본 정부의 책임이 커

 영화 <전쟁과 한 여자> 촬영 현장에서의 테라와키 켄

영화 <전쟁과 한 여자> 촬영 현장에서의 테라와키 켄 ⓒ 엣나인필름


일본의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라이 하루히코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일본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뒀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화에 나오는 일본인 양공주는 미국에 몸을 파는 일본을 의미한다"며 "점령군이 들어와 아무것도 없던 여성들이 몸을 밑천삼아 벌이를 했던 것처럼 일본이라는 나라가 미국의 원조를 받아 원조국가로 성립되어 온 것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테라와키 켄은 이 부분을 종군위안부 문제와 연결시켰다. 그는 "여 주인공이 미군을 대상으로 몸을 파는데, 당시 일본은 미국사람들을 위해 위안부를 제공한 것이다. 국외에서 전쟁 시에 일본 군대가 조선이나 중국인 여성을 이용한 위안소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런 수요가 있다고 이야기하자, 일본이 "네 준비하겠습니다"라고 응답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본이 부인하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이 책임이 크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시인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변명에 대해 긴 부연 설명으로 반박했다.

"전쟁 전에 일본은 군과 정부가 대등한 관계였습니다. 그 위에 천황이 군림하는 형태였지요. 정부가 아닌 군대가 여성들을 유린했다고 총리가 명령을 내린 게 아니니 정부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조선 총독부라는 일본정부의 하부조직이 군대를 위해 위안부를 확보하려고 민간업체를 이용했다고 해도 보통 어느 나라든 정부가 자국 국민에게 너희는 종군위안부가 되라고 강제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자기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민간업체에게 부탁한 것이라고 발뺌하지만, 국민들에게도 협력하라고 권유하는데 때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게다가 속이거나 강제로 끌고 가는 범죄 행위를 경찰이 방관하고 도와주기까지 한 것은 정부의 책임입니다.

아베 정권이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의 내용은 그런 것을 인정한 겁니다. 당시 경찰이 상황을 조장한 것은 일본 정부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일본은 과거의 전쟁 범죄 잊어선 안 돼

 영화 <전쟁과 한 여자> 시나리오를 쓴 아라이 하루히코

영화 <전쟁과 한 여자> 시나리오를 쓴 아라이 하루히코 ⓒ 정지욱

8·15를 앞두고 정부 각료 일부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려는 것과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사회에 대해 테라와키 켄은 "그들이 외부의 시각을 알고 있으면서도 국내에서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런 일을 벌이고 있다"며 "모든 일본 국민들이 거기에 동조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라이 하루히코 역시 "일본인 전체가 우경화되는 건 아니다"라며,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것은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잊지 말자라는 취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아버지도 중국에서 전쟁 후 생환하신 분 중의 한 분이다,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하셨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세대들이 자신이 겪거나 한 일이 아니니까 나랑은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는 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들 두 사람은 '한국 감독과 함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볼 의도는 없냐'는 물음에 "과연 그런 영화에 누가 투자할지 모르겠다"며 웃어 넘겼으나, 아라이는 "구체적으로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상하이에서 폭탄을 사용했던 가장 과격하게 활동했던 의열단과 관련된 프로젝트가 있긴 하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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