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에 맞춰 개봉하는 다큐 영화 <그리고 싶은 것>과 일본 영화 <전쟁과 한 여자>

8.15에 맞춰 개봉하는 다큐 영화 <그리고 싶은 것>과 일본 영화 <전쟁과 한 여자> ⓒ 시네마달,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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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싶은 것>과 일본영화 <전쟁과 한 여자>가 8.15 광복절에 맞춰 개봉한다. 두 영화는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비슷한 주제가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우경화인데, 두 작품 모두 8월 15일 개봉한다는 것 역시 이런 문제의식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하는 부분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단순히 우리만이 아닌 동아시아 국가들, 더 나아가 국제적으로 우려가 커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위안부는 우리를 늘 예민하게 만드는 문제다.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사과하고 반성하기는커녕 번번이 적반하장식 주장과 궤변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두 영화는 마치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 한국의 시선에서 그리고 양심적 일본인들의 시선에서 각각의 부분을 들여다본다. 그렇다고 닮은 영화는 아니다. 주제가 비슷할 뿐이다. <그리고 싶은 것>이 다큐로서 직접적인 접근방식을 취한다면, <전쟁과 한 여자>는 극영화로 2차 대전 직후 일본 사회를 그리면서 지금의 일본을 진단한다.

표현의 차이도 크다. 다큐 <그리고 싶은 것>에서는 우익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일본의 분위기가 전달돼 온다면, <전쟁과 한 여자>는 에둘러 가는 측면이 있지만 대놓고 스스로의 속살을 까발린다. 특히 전쟁 범죄를 부인하려는 우익에게 전쟁에서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상식을 강조하며,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비틀어서 조롱한다.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과 한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그리고 싶은 것>이라면, <전쟁과 한  여자>는 전쟁 과정에서 스며든 인간의 잔인함에 초점을 맞춘다. 피해자인 한국과 일본의 시선 차이가 드러나는 두 영화지만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고, 잘못을 사죄하는 양심적 일본인들은 두 작품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와 닿는 부분이다.

<그리고 싶은 것>, 역사에 대한 또렷한 기억을 요구

 <그리고 싶은 것>의 한 장면. 그림책 '꽃할머니'의 삽화 중 일본군이 소녀들을 잡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일본 출판사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싶은 것>의 한 장면. 그림책 '꽃할머니'의 삽화 중 일본군이 소녀들을 잡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일본 출판사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 시네마달


<그리고 싶은 것>은 촬영 기간이 꽤 소요된 영화였다. 보통 다큐멘터리가 2~3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제작된다면 <그리고 싶은 것>은 2007년 촬영을 시작해 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는 한중일 작가들이 평화를 주제로 그림책을 펴내기로 하는 과정에서 생긴 갈등과 이견 등을 드러내고 있다. 권윤덕 화가의 <꽃할머니>가 가장 첨예한 문제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심에는 그림책 <꽃할머니>의 주인공 심달연 할머니의 모습이 자리잡고 있다. 할머니는 13세 어린 나이에 산나물을 뜯으러 나갔다가 언니와 함께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트럭에 태워져 위안부로 끌려가 큰 상처를 얻었다. 그는 말년에 꽃을 가꾸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고, 꽃누르미(압화) 작품을 만들어 전시회 등을 열기도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리려 했던 작가의 의도는 번번이 제동이 걸린다. 가해자의 시각과 피해자의 시각은 상반된다. '국가 성폭력을 이야기' 하려는 한국 출판사와 '불행한 경험을 극복하고 희망을 획득한 한 여성의 아름다운 삶에 초점을 맞추려는 일본 출판사의 대립은 역사인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물론 가해자로서의 반성이 엿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우익의 반발을 두려워 한 일본 측 출판사는 완곡하지만 줄기차게 그림의 수정을 요구한다. 사실 일본 측의 태도는 은근히 불쾌하기까지 하다.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성을 끌고 갔다고 하지 말고 그냥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끌고 갔다"고 표현하길 원하는 시선은 씁쓸한 맛을 남긴다.

다행히 작가는 "큰 아쉬움은 없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림에 증오심과 복수심이 가득했다면 아이들이 어떻게 봐야 할까를 고민하며 변해갔다"면서 "순화돼서 그림을 그렸다기보다  나 자신이 순화됐다"고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그림책에 대해 심달연 할머니가 너무 좋아하셨고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전부 그렸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큐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의 한 장면. 일본 그림책 작가가 위안부 출신 심달연 할머니를 만나 눈물짓고 있다

다큐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의 한 장면. 일본 그림책 작가가 위안부 출신 심달연 할머니를 만나 눈물짓고 있다 ⓒ 시네마달


하지만 영화는 엄밀히 말해 미완성이다. 한국에서 출판된 그림책이 일본에서는 아직까지도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경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당분간 출판이 어렵다는 일본 출판사의 반응은 일본 사회의 경직된 분위기를 전달해 준다. 일본에서 책이 출판되는 모습을 담으며 마무리되어져야 했던 영화는 완성을 1년 미뤘음에도 끝내 그 모습을 담아내지 못했다. 우익의 목소리가 커지는 일본 사회의 벽을 느끼게 해 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싶은 것>은 기억되지 못한 역사가 결국 역사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설명한다. '기억되지 못한 20만 명의 소녀, 기억하지 못한 237명의 할머니, 지키지 못한 179명의 망자'는 영화에 대한 함축적 표현이다. 광복절을 앞둔 11일 또 한 분의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생존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57명으로 줄게 됐다. <그리고 싶은 것>의 촬영 과정에서 심달연 할머니도 2010년 끝내 일본에서 나와야 할 책을 보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했다.

가해자는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들은 사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지고 있는 현실에서 <그리고 싶은 것>은 역사에 대한 또렷한 기억을 요구한다.

<전쟁과 한 여자>, 일본 사회를 향한 양심적 일본인의 비판과 반성

폭력·강간·섹스가 가득한 이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사이에는 교집합이 있다. 떨어 뜨려 놓고 보면 이야기가 안 될 것 같은데, 일본 군국주의 부활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이 그렇다. 특히 일본의 우경화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부분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최근 한국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의 역사의식 부재를 비판하며 헌법 개정 반대 의사를 밝히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과 한 여자>는 이런 일본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영화로 구현했다. 전쟁과 전쟁범죄에 대한 일본의 안일한 인식을 2차 대전 종전 전후 일본 사회의 모습과 연결시켜 비판한다. 양심적 일본인이 일본 사회에 가하는 충고로도 읽힌다. 직접적으로 천황의 책임을 거론하는 부분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전쟁과 한여자>의 한 장면

<전쟁과 한여자>의 한 장면 ⓒ 엣나인필름


하지만 겉모습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핑크 영화(또는 로망 포르노)로 만들어졌기에 노출과 함께 여성을 향한 성폭행이 난무한다. 일본의 핑크 영화는 인간의 성적욕망을 바탕으로 정치 사회적 비판이나 다양한 실험을 담고 있기에 노출 강도가 센 편이다. 배급사 측은 개봉을 앞두고 제한상영가 등급이 나올까봐 노심초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끝 부분의 반전은 앞의 거친 장면들을 이해하게 만든다. 영화 속 잔인함과 폭력은 일본의 과거를 보여주는 거울인 셈이다. 마지막 부분은 이 영화의 목적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영화의 문제 의식에 자연스런 공감이 이뤄진다.

전쟁으로 망가진 한 인간을 통해 반전의식도 고취시키지만, 매춘 여성을 통해 일본을 의인화 시킨 것은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종전 이후 유곽의 여성은 미군을 상대하는 양공주로 변신하는데, 패전국가로서 일본의 모습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의 뱃속아이는 일본인이다. 이 역시 전범의 원죄를 갖고 있는 지금의 일본을 상징하고 있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일본의 유명 작가 아라이 하루히코다. 그는 "의도적인 설정"이라고 말하고 "최근 들어서도 일본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을 표현해 봤다"고 덧붙였다. 위안부 문제 등에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을 매춘여성으로 대입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영화 <전쟁과 한 여자>의 한 장면. 유곽을 떠돌던 여성과 종전 때까지 한시적으로 동거하는 소설가

일본영화 <전쟁과 한 여자>의 한 장면. 유곽을 떠돌던 여성과 종전 때까지 한시적으로 동거하는 소설가 ⓒ 엣나인필름


그렇다고 영화에 직접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전쟁 중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범죄 행위를 증언하는 과정에서 포괄적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전쟁과 한 여자>는 전쟁 범죄를 부인하고 미화하려는 일본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여자와 아이들이 무사했을 것 같아?" 

일본이 저지른 잔학한 행위에 대해 양심적 일본인이 가하는 통렬한 비판과 반성이 <전쟁과 한 여자>가 주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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