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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방송된 <꽃보다 할배>의 한 장면

2일 방송된 <꽃보다 할배>의 한 장면 ⓒ tvN


요즘 드라마와 예능은 확연히 구분된다. 상황극을 위주로 한 예전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드라마와 같은 픽션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예능 프로그램들이 하나둘씩 '리얼'을 표방하면서 이 둘의 구분이 명확해졌다. '100% 리얼' '대본이 없는'을 강조하며 진정성을 외쳐댄 끝에, 예능은 허구와 픽션의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리얼과 논픽션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대중이 드라마는 관대한 눈으로, 예능은 엄격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드라마에서 방송용으로 부적합한 장면이 나온다면 막장이라고 치부하지만, 예능에서는 그리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다. '방송사고다' '폐지를 고려해야 한다' '징계해야 한다' '방송인의 자질이 없다'는 등 거침없는 비난을 쏟아낸다. 예능 프로그램이 '리얼'에 점점 더 집착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드라마는 허구라서 용납될 수 있지만, '리얼'을 주장하는 관찰형 예능 프로그램은 실생활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는 이유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드라마에서의 과다한 노출은 극의 흐름에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어느 정도 무마될 수 있다. 하지만 리얼 예능에서의 과다한 노출은 격한 반응을 부른다.

여기에 비춰보면 지난 2일 방송된 tvN <꽃보다 할배>의 여러 장면은 분명 방송사고감이었다. 할배들이 식사하는 자리에는 언제나 술병이 놓여 있고, 때로는 술을 마신 할배들의 혀가 꼬여 있다. 게다가 여행경비를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제작진과 고스톱판을 벌였다. 화투장을 클로즈업하는가 하면 승패에 따라 돈이 왔다갔다했다. 호텔 방에서 야한 영화를 넋을 잃고 보는 할배들의 표정도 그대로 노출됐다.

ⓒ tvN


술자리와 도박판, 19금 영화 관람까지. 나무라려고 한다면 한도 끝도 없는 거리로 가득했다. 드라마가 아닌 리얼 예능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도 이것에 요란을 떨지 않는다. 방송사고라며 입에 거품을 무는 이도 없고, 쓴소리를 하지도 않는다. 왜일까? 분명 할배들은 부어라 마셔라 했고, 도박에 해당되는 행위를 보란 듯이 펼쳐 보였는데도 말이다. 

<꽃보다 할배>를 꾸준히 시청한 이들이라면 이미 그 이유를 간파했을 것이다. 할배들의 교훈적 메시지와 또 그것을 영민한 연출력으로 극대화한 나영석 PD의 천재성 덕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술을 마셨지만 술자리는 욕할 수 없을 정도로 정겨웠고, 술주정인 듯했지만 그들의 한마디에는 진한 여운이 담겨 있었으며, 고스톱을 쳤지만 거기엔 도박과 투기가 아닌 화합과 소통이 숨 쉬고 있었다.

"우리는 실수를 두려워하거든. 젊은이들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개선되고 더 좋은 걸 찾을 수가 있을 것 같아." 짜장라면 하나를 끓이는 것에 주저했던 신구의 이 한마디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그 진심은 젊은이들에게 든든한 힘이 됐다. 사실 주변에서는 아무도 실수를 독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타하기에 여념이 없다. 신구는 이렇게 팍팍한 세상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위안을 선물했다. 

ⓒ tvN


"마누라 없는 말년은 상상할 수도 없다"던 박근형은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해 대성당의 십자가 12개의 길 모두를 사진에 담았고, 또 그녀를 위해 경건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신께 기도를 드렸다. 암 수술을 앞둔 아내에게 "너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라고 말했던 그의 마음은 70세를 훨씬 넘겼음에도 지고지순했다.

할배들이 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에는 아이들의 교육을 문제 삼아 딴죽를 걸만한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고, 방송사고였다며 옐로우 카드를 들만 한 요소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할배들의 연륜, 그것으로부터 묻어 나오는 성찰과 여유, 진정한 감흥이 깃들어 있을 뿐이었다. 비난은 저절로 잠재워질 수밖에 없다. 설사 "투고" "쓰리고"를 외치는 흥분의 순간을 목격했다 할지라도 말이다.

나영석 PD는 방송사고감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다. 칭찬할 만하다. 기특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를 '믿고 본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나영석 PD는 'PD의 브랜드화'를 이번에도 여실히 증명했다. 한지민으로 이서진의 마음을 콩닥거리게 하더니, 이제 대중의 마음까지 녹였다. '리얼' 을 외치는 관찰형 예능 프로그램에 들이대던 엄격한 잣대를 이렇게 허물어버렸으니, 나영석이야말로 참으로 얄궂은 PD가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DUAI의 연예토픽,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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