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싶은 것> 메인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싶은 것> 메인 포스터 ⓒ 시네마 달

2007년 9월, 한·중·일 그림책 작가 각각 4명씩 총 12명이 '한·중·일 평화그림책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 중국 난징에 모였다. 이들은 동시대의 어린이들에게 '과거를 정직하게 기록하고 현재의 아픔을 공유하며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연대하자'라는 의미로 '평화'라는 주제아래 그림동화책을 만들어 역사인식과 동시에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결정한다. 이와 더불어, 이들이 만든 12권의 동화그림책을 한국, 중국, 일본에서 공동출판하기로 약속한다.

이들 중 한국의 권윤덕 작가는 고심 끝에 '일본군 위안부' 소재를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사회적인 상황을 고려하자면 이는 매우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녀의 결심은 하나의 큰 모험이나 다를 바 없었다. 거기에다 위안부문제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이며 아픈 역사문제이자 성문제가 결합이 되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보는 그림책으로 그려낸다는 것은 보통이상의 노력과 정성 그리고 세심함이 요구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중·일 작가들이 모두 모인자리라 '일본군 위안부' 소재를 지지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권 작가의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다른 작가들은 흔쾌히 지지했다. 꼭 그려줬으면 좋겠다고.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어린이 그림동화책 <꽃할머니>는 이렇게 탄생했다.

위안부 소재 어린이 동화책을 둘러싼 역사인식의 차이

지난 1일 오후 2시, 서울 왕십리CGV에서 영화 <그리고 싶은 것>(8월 15일 개봉)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은 권윤덕 작가가 그림책 <꽃할머니>를 만드는 과정이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녀는 자료참고를 위해 증언집을 찾던 중, 대구에 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심달연 할머니를 알게 돼 그녀와 인터뷰를 하고, 그것을 토대로 동화책을 만든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작가 스스로 괴로웠다. 할머니의 증언을 들으면서 자신의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느꼈고, 이는 날카로운 그림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히 일본과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 문제, 즉 전쟁 시 가장 쉽게 침해당할 수 있는 여성과 아동들의 인권 및 실상에 대해 알리고, 이것을 제대로 미래세대에게 전해 평화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화책 내용 중 한 부분. 권윤덕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국 뿐만 아니라, 당시 피해를 입은 아시아권 나라들 전체로 그려냈다

동화책 내용 중 한 부분. 권윤덕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국 뿐만 아니라, 당시 피해를 입은 아시아권 나라들 전체로 그려냈다 ⓒ 시네마 달


그래서 그녀는 심 할머니의 증언을 사실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하되 일본의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는 책 속에 넣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독자들이 감정적으로 동화책을 바라보지 않기를 바랐다. 이는 한국 작가들과의 의견 충돌로 이어졌다. 욱일기를 넣지 않겠다는 권 작가의 생각과는 달리, 다른 한국 작가들은 일본이 전쟁의 가해자임을 표현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욱일기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역사 인식차이도 존재했다. 한 일본출판사 관계자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가 고통과 아픔을 겪은 한 할머니가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로 그려지기를 바랐다. 과거보다는 현재에 더 초점을 맞추자는 거였다.

하지만 권 작가는 자신의 의견을 꺾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출판 전에 자신의 이런 생각들과 그림을 확인받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초등학생 및 중·고교생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림책을 접한 한 일본 초등학생은 "저희와 같은 연령의 사람들을 억지로 데려간 것은 정말 심하다고 생각합니다"라며 "만약 그게 나였다고 정말 최악이고 상처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한다. 한 일본 교사도 "반드시 알려야하는 역사문제"라며 권 작가를 지지한다.

역사의 산증인이 사라지기 전에...

권 작가의 철저하고 세심한 준비 끝에 2010년 그림동화책 <꽃할머니>가 출간됐다. 하지만 일본 출판사는 자국 내 사회적 분위기 및 '우익테러'에 대한 우려 때문에 출간 불가를 표명했다. 그 사이 심달연 할머니는 지병으로 세상을 뜨고 만다.

영화는 약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중 신고 및 등록된 피해자는 고작 237명, 다시 그 중에서 현재 생존자는 58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막을 통해 보여주며 이제는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사라진다고 말하며 온전한 역사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함께 역설한다.

영화가 끝난 뒤 이어진 기자 간담회에서 권 작가는 일본에서 출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작년에 일본 출판사에서는 책을 출간하려고 했는데, 현재 일본의 정치적인 상황이 너무 우경화가 돼서 못한다는 답변이 왔다"면서 "그래서 나는 이번 프로젝트가 각국 12명의 작가들이 참가했기 때문에 그들 모두에게 출판을 못한 이유를 밝히고, 대안을 모색해보자고 편지를 썼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그리고 싶은 것> 시사회에서 권효 감독(오른쪽)과 권윤덕 작가(왼쪽)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그리고 싶은 것> 시사회에서 권효 감독(오른쪽)과 권윤덕 작가(왼쪽)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박지현


"그림책에 폭력적인 장면을 그리지 않으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들고 강연을 가서 아이들에게 '일본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뭐라고 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자신들이 그러지 않았다'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런데 일본사람을 만나봤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한다. 이들은 매스컴을 통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분노해야 될 대상은 일본이 아니라, 일본이든 한국이든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연대를 해야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를 제작한 권효 감독은 영화 중간에 나오는 3·1절과 국군의 날 행사장면 삽입 이유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외면과 감추려고 했었던 것들이 여전히 한국사회에 만연한 이유는 군사주의 및 남성주의적 문화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위안부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감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서조차 잘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삽입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결국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디 한 나라만의 잘못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거였다. 모두 함께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평화'는 좀 더 늦게 찾아올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그림동화책 <꽃할머니>는 미완성 작품이다. 일본에서 책이 출판되고, 한국과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그날, 바로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싶은 것 권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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