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종영한 KBS 2TV 월화드라마 <상어>의 한 장면.

지난 30일 종영한 KBS 2TV 월화드라마 <상어>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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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수(김남길 분)가 죽었다. 김준으로 돌아왔던 이수가 죽었다. 한 조각의 생존에 대한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총알은 목을 관통했다. <상어>란 드라마를 따라왔던 사람이라면, 이승에 이수를 위한 자리가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10년 만에 만난 조해우(손예진 분)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여전히 지키고자 하는 오준영(하석진 분)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수는 복수를 하기 위해 살인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동생에게는 '간'이 필요하다.(물론 꼭 간은 죽어서 주는 건 아니다) 동생과 다시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이수의 삶을 견인해온 복수도, 사랑도 이젠 이수의 몫이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죽을 사람이 죽었다고 드라마를 바라보다, 이제야 이수가 친구라는 걸 안 오랜 친구 동수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이수의 손을 잡고, 그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데 울컥했다. 해우가 "이수야, 사랑해"라던 순간에도 올라오지 않던 감정이 솟아올랐다. 비로소, 헤집어 보게 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복수를 위해 살아갔던 한 남자의 삶을. 드라마 내내 김준이 되어, 온갖 감정을 드러내 보였던 이수였지만, 정작 드라마를 통해, 그의 삶이 안쓰러워진 건 동수의 통해 이수의 이름이 불렸을 때다.

해우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회 해우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자신의 가계, 할아버지가 저지른 엄청난 죄과를 대신 사죄하기 위해 호텔과 자신의 직업이 날아가게 만들지도 모를 할아버지의 과거를 세상에 알렸다.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가진 할아버지가 공식적 채널을 덮자 비공식적 채널을 통해 알리고, 증거가 부족하다 하자 할머니의 유품 속 사진마저 세상에 던진다. 주저함도, 거칠 것도 없이 자신의 가계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묵직한 주제의식에 못 미치는 캐릭터 구성

'1회 1떡밥'이라는 그간의 대전제를 무시하고, <상어> 최종회는 죽은 줄 알았던 이수의 생존과 할머니의 비녀 속 사진, 암살자 부인 목의 열쇠에, 마지막 박여사가 빼놓은 총알까지, 많은 사건과 그 사건의 해결이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심지어 1회부터 진짜 그림자처럼 암약하던 요시무라 회장의 존재감도 이수의 명쾌한 한 마디로 정리해 버렸다. 

덕분에 이수는 죽음의 순간을 숨 가쁘게 맞이했고, 결국 위너는 새로운 암살자가 된 형사가 되었으며, 해우는 기계처럼 자신의 가계 청산 작업을 하느라 고뇌에 빠질 틈조차 없었다. 죽음의 순간에도, 죽어가는 순간에도, 죽은 이후에도, 복수를 위해 10여년을 헌신한 이수의 삶에 대한 여운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이수를 사랑해서 그로 인해 자신의 가계를 무너뜨릴 용기를 가지게 된 해우의 결단도 드라마 내에선 그리 큰 자리를 얻지 못한 채 담백한 그녀의 소회로 넘어갔다.

<상어>가 20회를 통해 결국은 성취하고자 했던, 해우가 자신의 집안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속죄해야만 했던 의미는 묵직하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청산되지 않은, 과거라는 어둠 속에 묻힌 '역사'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독립운동가 후손인 조상국인 척 살아왔지만 실제로는 양민학살에 가담했던 해우의 할아버지 천영보(이정길 분)는 잡혀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당당했다. 그처럼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후손들의 더 나은 삶이란 미명 하에 포장되고 왜곡된 역사는 바로 잡아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자 한다.

우리는 틈만 나면 사죄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감정적 분통을 터뜨리는 건 자연스럽지만, 숨겨진 학살과 약탈의 기록들이 역사의 뒤안길에서 소리 없이 스러져 가는 것에는 무감하다. 잘 살게 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의 '사실'인 과거조차 눈감고 외면하려고 하는 현재의 우리에게 <상어>는 조상국이라는 상징적 근대인을 통해 뒤틀린 역사의 왜곡이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끝내 이수조차도 죽여 버리고 미소를 짓는 그를 통해, 과거의 역사가 여전히 현재의 악이 되어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데 마지막 회를 통해 완결된 <상어>의 주제의식은 이해는 되지만, 감동이 부족하다는 데 이 드라마의 딜레마가 있다. 이수와 해우의 사랑이라는 그 치명적인 운명에 공감하기 힘들었듯, 묵직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치명적 스토리에 헌신적으로 복무하는 듯했던 인물들이 가슴을 떨리게 하는 데는 어딘가 1% 부족한 느낌인 것이다.

천영보는 조상국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다. 이제와 이수의 아버지나 이수를 죽이려고 했던 것쯤은 눈도 꿈적할 정도가 아닌 만큼. 하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무슨 짓도 저지르고 조국을 위해서 혹은 너희를 위해서였다며 잡혀가면서 조차 뻔뻔한 조상국 회장의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고문 기술자였던 이수의 아버지 한영만과 암살자가 조상국과 함께 한, 과거의 학살자가 현재의 압제자가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뚜렷한 역사에 대한 전제는 분명했지만, 그것을 살아있는 인물로 풀어내는데 구체성을 더하지 못한 것이 전형적 인물의 딱딱함으로 남은 이유가 아닌가란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이수와 해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복마전과도 같은 역사적 인물을 무너뜨리기 위해 조상국의 손녀가 그가 없애고자 하는 인물과 사랑을 하게 되는 설정이 가장 극적이긴 하지만, 과연 두 사람이 살아있는 캐릭터로 펄떡거렸는지, 혹시나 가장 극의 중심에서 운명을 고뇌하며 고난에 빠져들었던 주인공들조차 그저 묵직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효율적 수단으로만 이용된 건 아닌지, 이수의 죽음을 당연시하며 받아들이고 있는 이 지점에서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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