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현악 4중주단 '푸가'. 남자 셋, 여자 하나로 이루어진 이 연주단은 무려 25년 동안이나 함께 연주를 해왔다. 쉬지 않고 연습하고 서로 맞춰봐야 했을 테니 어쩜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네 사람은 연주단의 동료, 선후배를 넘어 스승과 제자, 돌아가신 어머니의 옛 동료로 아버지 같은 존재, 옛 연인, 부부, 친구 등으로 서로 얽혀있다. 25년 세월을 지나왔으니 앞으로도 아무런 문제 없이 흘러갈 것만 같았다.

영화 <마지막 4중주>  포스터

▲ 영화 <마지막 4중주> 포스터 ⓒ (주)티캐스트


창단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최고 연장자이며 연주단의 정신적 지주인 70대의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병 초기 진단을 받는다. 신경계통의 만성 퇴행성 질환으로 떨림과 경직이 오고 운동이 느려지며 자세가 불안정해지는 병. 관절의 움직임이 불편하니 손가락을 써야 하는 첼리스트에게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본인은 물론 단원 모두 충격을 받는다. 약물 치료를 받으며 고별 공연을 하고 은퇴하겠다는 피터. 그러나 피터의 발병으로 인한 연주단의 앞날에 대한 고민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단원들 간의 감정 폭발로 이어진다.

비올리스트 '줄리엣'의 옛 연인과 현재 남편인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 두 남자 사이의 오랫동안 쌓인 갈등에서부터, 남편 '로버트'의 외도로 인한 줄리엣 부부의 이혼 위기, 두 사람의 딸 '알렉산드라'의 반항과 제1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과의 돌연한 연애까지.

4중주단의 위기 속에서 모든 사람이 혼란에 빠지고 서로 부딪치며 상처를 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괴로워한다. 이때 피터가 마지막 무대의 연주곡으로 '베토벤의 현악4중주 14번'을 제안하는데, 이 곡은 악장과 악장 사이에 쉬지 않고 전곡을 이어서 연주해야 하는 난이도가 높은 곡이다.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보이던 단원들의 갈등은 우여곡절 끝에 봉합의 실마리가 보이고 네 사람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영화 <마지막 4중주>의 한 장면  25년간 4중주를 해온 네 사람, 피터의 병으로 위기를 맞는다...

▲ 영화 <마지막 4중주>의 한 장면 25년간 4중주를 해온 네 사람, 피터의 병으로 위기를 맞는다... ⓒ (주)티캐스트


서로의 관계나 성격 차이를 떠나 전문 연주자로서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역시 연주 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고스란히 대입할 수 있다. 멜로디를 이끌어 나가는 제1바이올린에 대한 제2바이올린 주자의 생각과 느낌. 도드라지게 빛나지는 않아도 뒤를 받쳐주는 것은 제2바이올린의 힘이라는 것을 때론 잊는다. 거기다가 전체의 무게 중심인 첼로의 묵직함과 세 악기 사이를 이어주는 비올라.  

그래서 영화는 여러 종류의 협주 중에서도 '4중주'를 고른 모양이다. 은퇴 음악가들이 모인 양로원에서 왕년의 스타들이 모여 좌충우돌하다가 연주를 하게 되는 영화 <콰르텟(Quartet)>(영국, 2012 / 감독 : 더스틴 호프만)도 역시 '4중주(창)'이다.

서로 갈등하지만 누군가는 앞에 나서고 또 하나는 뒤를 받쳐주고, 한 편에서는 굵직하고 무겁게 중심을 잡아주고, 또 한 편에서는 서로를 이어주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이라 여긴 것은 아닐까.

그것을 알았기에 피터는 악장 사이에 쉬지 않고 이어서 연주를 해야 하는 어려운 곡을 마지막 곡으로 선택했나보다. 어파치 인생이란 갈등과 고민 속에서도 쉬지 않고 달려가야 하는 것, 우리 앞에는 어렵고 힘들어도 감당해야 하는 시간들이 놓여있으니까.

피터는 다른 사람 아닌 자신의 몸과 마음까지 자신을 배신한다는 고백을 하며 괴로워한다. 나이 듦이란 삶의 어느 모퉁이를 돌다 갑자기 복병(伏兵), 그것이 병(病)이든 사랑이든 사별이든, 그런 복병을 만나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몸을 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과 마주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피터는 열심히 약물 복용과 운동 치료를 받으며 고별 연주를 준비하고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다음 연주자를 구한다. 무대 위에서 연주를 중단하는 그 순간까지 성실한 그의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다. 나이 들어가는 것 역시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다.

덧붙이는 글 <마지막 4중주, A Late Quartet (미국, 2012)> (감독 : 야론 질버만 / 출연 : 필립 시모어 호프먼, 크리스토퍼 월켄, 캐서린 키너, 마크 이바니어 등)
마지막 4중주 4중주 협주 관계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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