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고> 영화 포스터

▲ <미스터 고> 영화 포스터 ⓒ 덱스터스튜디오,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2013년에 부활한 미스터 고

1960~1970년대 우리나라에선 박기정의 <황금의 팔>, 박수동의 <번데기 야구단>, 이우정의 <야구왕> 같은 야구를 소재로 다룬 만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보물섬' 같은 만화 잡지가 창간하면서 야구 만화는 더욱 큰 유행을 형성했다. 그러나 <공포의 외인구단>의 이현세, <제7구단>의 허영만, <달려라 꼴찌>의 이상무 등은 그 시절의 야구 만화가 군부 정권하에서 행해진 소재 제한과 검열을 벗어나려는 자구책이었다고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30여 년의 시간이 흘러 프로야구는 700만 관중 시대를 열며 국민 스포츠로서 위상을 굳혔다. 출범 당시 6개였던 프로야구팀의 숫자는 현재 NC 다이노스까지 9개로 늘어났다. 성장을 거듭하는 프로야구는 10번째 구단 KT 위즈를 발판으로 1000만 관중 시대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프로야구의 뜨거운 열기를 감지한 탓인지, 1986년에 큰 흥행을 거둔 <이장호의 외인구단> 이후 주목할 만한 야구 영화를 만들지 않았던 한국 영화계는 몇 년 동안 여러 편의 야구 영화를 쏟아냈다. <YMCA 야구단>(2002) <슈퍼스타 감사용>(2004)이 2000년대 초중반을 풍미했다면, <나는 갈매기>(2009) <투혼>(2011)은 분명 롯데 자이언츠의 인기를 노린 영화였다. <퍼펙트 게임>(2011)은 영웅의 신화를 다시 재연했고, 소외된 자들의 모습은 <글러브>(2011)와 <굿바이 홈런>(2013)으로 조명되었다.

<과속스캔들> <써니>의 강형철, <타짜> <도둑들>의 최동훈과 더불어 최근 한국 영화 시장에서 놀라운 흥행 성적을 자랑하는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도 야구 영화를 선택했다. 그런데 소재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제는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의 추억의 한 자락인, 1980년대 인기 야구 만화 <제7구단>의 주인공이었던 야구 경기하는 고릴라 '미스터 고'를 끄집어낼 줄이야.

<미스터 고> 영화 스틸

▲ <미스터 고> 영화 스틸 ⓒ 덱스터스튜디오,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한국 영화 최전선의 기술력

<미스터 고>의 특징은 선명하다. 두산 베어스를 비롯한 상당수 국내 프로야구팀이 실제로 등장하나, 고릴라가 야구를 한다는 황당한 상상을 꿈꾼다. 고릴라가 야구를 하는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투입된 제작비는 총 300억 원(순 제작비 225억, 마케팅비 75억)에 달한다. 근래 할리우드의 유행인 3D를 반영하여 <나탈리> <7광구> <물고기> 등 국내에 몇 편 없던 입체 영화의 계보에 속하면서, 돌비 애트모스 등의 입체 사운드까지 입혀졌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미스터 고>는 한국 영화 최전선에 서 있다.

대한민국 순수 기술로 완성된 <미스터 고>는 단순히 고릴라가 배트를 휘두르고, 경기장을 누비는 차원을 넘어선다. 미스터 고가 잠실 야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장면의 실재감이나 웨이웨이(서교 분)와의 우정을 표현하는 얼굴의 CG는 부족함이 없다. 에이전트 성충수(성동일 분)와 미스터 고가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에선 한 명의 배우로 느껴질 정도다.

물론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할리우드의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이나 <킹콩>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한 편의 영화로 국내와 세계 시장에 내놓았을 때 부끄럽지 않은 완성도임은 확실하다. 3D 효과도 마찬가지다.

<미스터 고>가 고릴라가 야구 경기하는 장면이나 3D에만 집착했다면 분명 기술 만세를 외치던 <디 워>의 함정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미스터 고>는 고릴라와 인간이 어떤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가를 놓치지 않는다. 영화는 '야구 경기하는 고릴라'가 아닌 '야구 경기하는 고릴라와 소녀의 관계'를 주목한다.

<미스터 고> 영화 스틸

▲ <미스터 고> 영화 스틸 ⓒ 덱스터스튜디오,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프리 윌리>를 연상케 하는 웨이웨이와 링링의 이야기

원작 <제7구단>에서 고릴라가 야구 경기를 하는 모티프만 빌려 온 <미스터 고>는 원작과 매우 달라졌다. 영화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서커스단을 이끄는 15세 소녀 웨이웨이와 그녀의 유일한 친구이자 서커스단의 자랑거리인 고릴라 링링(애칭 미스터 고), 둘이 돈을 벌기 위해 에이전트 성충수의 제안으로 한국에 야구를 하기 위해 온 이야기다.

웨이웨이와 링링의 관계는 소년과 범고래의 우정을 다룬 <프리 윌리>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인간의 욕심을 대변하는 자는 에이전트 성충수로 대표된다.

자신이 링링을 모두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웨이웨이는 실제로 링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도리어 이해해주던 이는 링링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링링이 타석을 바꾸는 장면에서 최고조로 극대화된다. 이것은 스포츠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투혼이기도 하다.

성충수로 대표되는 스포츠 에이전트와 자본의 세계는 영화에 탐욕이란 옷을 입혀주며 이야기를 확장한다. 그러나 돈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 성충수의 변화는 작위적이며, 가파르다. 웨이웨이와 링링에 관계와 비교하면 링링과 성충수의 전개엔 공감이 어렵다.

난동을 부린 고릴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따뜻한 시각, 언론의 자세, 일본 구단들의 경쟁 등은 코미디라는 장르를 고려하더라도 무리수가 따랐다. 그러나 김용화 감독은 적절하게 조연 배우를 배치하여 응급처치해놓았다. 마동석, 김정태, 김응수, 김강우, 변희봉, 오다기리 조 등은 적재적소에서 느낌표와 쉼표처럼 기능하며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해낸다. 여기에 추신수, 류현진도 가세했다. 그렇게 <미스터 고>는 재미를 흐트러지지 않으며 리듬을 이어간다.

<미스터 고> 영화 스틸

▲ <미스터 고> 영화 스틸 ⓒ 덱스터스튜디오,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전진

몇 년 전,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의 지옥 훈련과 1위라는 성적에 연결해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TV 드라마로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중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1980년대라는 순수함이 억압받던 군사 정권 아래에서 시대에 저항한 반항아의 순애보가 아닌가. 이걸 별다른 고민 없이 고스란히 2000년대로 가져오면 시대착오가 될 수밖에 없다.

반면, 김용화 감독은 영리하게 <제7구단>에서 미스터 고만을 빌려 발전된 CG 기술로 되살렸다. 이야기는 <오!브라더스>가 <레인맨>, <미녀는 괴로워>가 <미세스 다웃파이어>, <국가대표>가 <쿨 러닝>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처럼 <미스터 고>를 <프리 윌리> 같은 인간과 동물의 교감으로 풀어갔다. 이들의 교감은 소년과 외계인(E.T), 소년과 로봇(리얼 스틸), 소녀와 늑대(늑대소년) 같은 보편성이 존재한다.

결국, 한국 영화의 덩치를 키워 외국으로 나가는 방법은 <괴물>처럼 한국적인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던가, 할리우드처럼 상투적일지라도 전 세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정서에 기술을 덧씌우는 방식을 구사해야 한다.

한국 영화는 <퇴마록> 이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2009 로스트 메모리즈> <7광구> 등의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 이것을 배웠다. 김용화는 할리우드적인 영화로 <미스터 고>를 완성했다. <미스터 고>는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해운대> <타워>에서 발전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또 다른 진화다.


미스터 고 김용화 성동일 서교 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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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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