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한 자리에 앉아 영화를 봤지만 역시 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아니,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저절로 가슴에 다가온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끝난 후 영화치료전문강사 소희정씨와 함께한 '시네토크'에서 어떤 관객은 영화 속 아빠의 처지, 또 다른 관객은 남매를 기르며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데다가 아픈 친정 동생까지 거둬야 하는 엄마를 이야기했다. 그럼, 나는? 늘 관심이 그리로 가있으니 당연히 할아버지에게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포스터

▲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포스터 ⓒ 20세기폭스코리아


성공학 강사지만 자신은 그리 성공하지 못한 아들, 그런 아들을 냉소적으로 보며 분주한 일상으로 힘들어하는 며느리, 전투기 조종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9개월째 입을 닫고 필담만을 하는 열 다섯 살 손자, 통통한 몸매에도 어린이 미인대회에 정신이 팔려있는 일곱 살 손녀, 여기에 동성애인에게 실연을 당하고 자살기도 후 병원에 있던 며느리의 남동생이 퇴원해 집으로 온다.

그럼, 이 집안의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인 나는? 얼마 전 양로원에서 쫓겨나 아들네로 왔으면서도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여전히 식구들 몰래 헤로인을 상습 복용하지만, 손주들 사랑은 그 누구에 못지 않다고 자부한다.

식구들 모두 정신 없고 서로 삐걱대는 가운데 손녀가 어린이 미인대회인 '리틀 미스 선샤인' 선발대회 본선에 나가게 돼, 온 가족이 미니버스를 타고 1박 2일 대장정에 오른다. 차는 낡아서 가는 내내 말썽이고, 평소에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지내온 가족이 좁은 차 안에 모여있으니 조용할 리 없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의 한 장면   1박 2일간의 미니버스 여행을 하게 된 식구들

▲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의 한 장면 1박 2일간의 미니버스 여행을 하게 된 식구들 ⓒ 20세기폭스코리아


가는 길과 미인대회장에서 벌어질 난리법석이야 대강 짐작이 갈 것이고, 할아버지의 모습만 한 번 들여다 보자. 평소 할아버지는 철없는 아이, 문제 청소년 같다. 헤로인 상습 복용에, 손자에게는 되도록 많은 여자들과 즐기라고 강조하지 않나, 손녀에게는 미인대회에 나가 추라면서 아이답지 않은 춤을 가르쳐준다.

그런데 도중에 아들이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성공학 책 출판이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는다. 낙담하는 아들에게 다가간 할아버지는 별 말 없이 그저 손을 잡아줄 뿐이다. 무심하고 아이 같았던 아버지의 진심을 느껴서였을까.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하룻밤 머물게 된 숙소에서 손녀 옆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가족들은 비상상황에 들어간다. 미인대회 마감 시간이 코 앞이니 하는 수 없이 할아버지의 시신을 차 트렁크에 모시고 달려가는 가족들. 그 과정에서 손자가 입을 열게 되고, 손녀는 무대 위에 올라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춤을 춘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조부모,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로 이루어진 3대 가족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 집 식구들. 안정, 평화, 화목이라는 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집안 분위기 탓에 손자 입에서는 '지옥'이라는 말이 쉽게 나온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인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는 모르지만 할아버지의 자리는 분명 있다. 철없는 노인이지만 최대한 아이들과는 소통하려 애썼고, 그 사랑을 전하려 했다. 그 마음만은 다들 알았던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세상 떠난 후 며느리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할아버지는 특이한 삶을 사신 분이지만, 너희들을 사랑하셨노라고.

가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며 노년, 중년, 사춘기, 어린시절 나름의 통과의례 내지는 고민과 아픔을 보여준다. 여기에 동성애, 만든 표정과 꾸며낸 몸놀림을 선보이는 미인대회의 아이들, 갑작스런 죽음까지도 함께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여기에 더해 아무리 가족들한테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보여도 노인은 결코 투명인간이 아니며 엄연한 가족구성원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노인 아닌 다른 누구라해도 마찬가지겠지만.

덧붙이는 글 <미스 리틀 선샤인, Little Miss Sunshine (미국, 2006)> (감독 : 조나단 데이톤, 발레리 페리스 / 그렉 키니어, 토니 콜렛, 스티브 카렐 등)
* 서울시여성가족재단 <6월 금요 영화 나들이(2013. 6. 14)> 상영작
미스 리틀 선샤인 가족 소통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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