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대한 개츠비> 캐릭터포스터

영화 <위대한 개츠비> 캐릭터포스터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지난 1월, 한 독일 매체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당분간 할리우드에서의 활동을 내려놓고 환경운동가로서의 삶에 매진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전 세계의 언론들은 이 발언을 바탕으로 디카프리오가 '잠정 은퇴'를 선언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들을 쏟아냈다.

이러한 은퇴설은 이후 디카프리오 스스로 전면 부인함으로써 해프닝에 그쳤지만, 2010년 이후 현재까지 4년간 총 여섯 편의 영화들에 출연하며 누구보다 바쁜 행보를 보인 그가 상당히 지친 상태라는 것을 방증하는 발언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그는 2010년 개봉한 <셔터 아일랜드> 이후 지난 19일 국내 개봉한 <위대한 개츠비>와 얼마 전 촬영을 끝낸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포함 총 여섯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현재 할리우드의 A급 주연배우 가운데 이런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배우는 디카프리오가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연기력과 흥행성을 보장하는 최고의 배우 가운데 한명이라는 것을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지만, 디카프리오 스스로의 연기욕심도 적지 않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지난 3년 간 그가 출연한 영화들의 면면을 보자면, 마틴 스콜세지(<셔터 아일랜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클린트 이스트우드(<J. 에드가>), 크리스토퍼 놀란(<인셉션>), 쿠엔틴 타란티노(<장고: 분노의 추적자>) 등 현재 할리우드에서 거장으로 손꼽히는 감독들의 작품들에 속한다.

웬만한 배우들이 평생 한번이라도 협업하고 싶어 하는 감독들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 디카프리오로서도 행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1989년 열다섯의 나이에 TV 시리즈 조연으로 연기경력을 시작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전 세계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꽃미남 스타 시절을 거쳐 마흔을 바라보는 현재, 당대의 거장들로부터 주목받는 배우인생 최절정기를 맞이하고 있다.

'연기'와 '미모' 모두 두드러졌던 어린 시절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의 한 장면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의 한 장면 ⓒ 파라마운트 픽처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1991년, 양산형 B급 호러 <크리터스 3>의 조연으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17세였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귀여운 외모로 여러 TV 시리즈와 광고 등에 출연하였던 그는 세월이 흘러 대중들의 뇌리에서 잊히고 만 형편없는 괴작을 통해 영화계에 입문한 셈이다. 이듬해 그는 인기 TV 시리즈 <그로잉 페인스>에 출연하며 남다른 연기재능을 드러낸다.

1993년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이름을 세간에 널리 알리게 된 중요한 해였다. 이 해에 그는 최고의 연기파 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영화 <이 소년의 삶>에 출연하여 드 니로에 밀리지 않는 빼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길버트 그레이프>(1993) 또한 디카프리오의 명연기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영화 가운데 하나다. 영화의 타이틀 롤인 길버트 그레이프(조니 뎁 분)의 동생 어니로 분한 디카프리오는 정신연령이 유아 수준에 머무른 10대 저능아를 연기하였는데, 영화계에서 신인에 가까운 경력의 어린 배우로서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명연기로 세간에 충격을 안겼다.

영화평론가 자넷 마슬린은 그를 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날카롭고 필사적으로 강렬한 연기"라고 평하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두 편의 영화로 세계비평협회, LA 영화비평협회, 시카고 영화비평협회 등에서 선정한 신인상과 조연상을 수상하였고,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였다.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이 1995년에 만든 아트하우스 영화 <토탈 이클립스>는 작품성보다 영화 속 디카프리오의 빛나는 '미모'로 더 유명한 작품이다.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랭보와 베를렌느의 동성애 관계를 다룬 이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랭보 역을 맡아 뇌쇄적 매력의 천재시인을 연기하였다.

애초 이 배역은 <아이다호>로 유명한 당대의 하이틴스타 리버 피닉스가 맡기로 되어있었지만, 사전제작 단계에서 그가 약물과용으로 사망하면서 최종적으로 디카프리오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사망한 리버 피닉스의 배역을 대신 연기하게 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는 리버 피닉스로 상징되는 8~90년대 청춘스타의 계보를 디카프리오가 넘겨받은 의미심장한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1990년대 말 최고의 청춘스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 20세기폭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본격적인 청춘스타의 길에 들어서게 한 작품은 바즈 루어만 감독의 1997년 작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동명희곡을 MTV 스타일의 화려한 현대극으로 재해석한 이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반항적이고 거친 이미지의 로미오를 연기하였다. 바즈 루어만은 영화의 기획단계에서부터 디카프리오를 염두에 두었으며 그의 연기에 커다란 만족을 표하기도 하였다. 바즈 루어만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로부터 16년이 지나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재회하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성공 이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차츰 자신의 연기력보다 외모에 초점을 맞춘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10대 중반부터 연기를 해온 배우로서 누구보다 연기에 관한 의욕이 앞선 그였지만, 예쁘장한 외모로 큰 인기를 얻은 이후 그에게 들어오는 배역들은 하나같이 따분하고 뻔한 종류의 역할이었다.

<타이타닉>의 주연배우 제의가 들어왔을 때도 그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화가와 상류층 여성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는 애초 디카프리오의 흥미를 끌기에 부족한 이야기였고, 자신이 연기해야 할 잭 도슨이라는 인물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길버트 그레이프>를 통해 디카프리오의 재능을 눈여겨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적극적인 설득작업에 나섰고 결국 그는 데뷔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하기로 동의한다.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 ⓒ 20세기폭스


<타이타닉>은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에 가까운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미국과 월드와이드를 통틀어 총 18억 4천 5백만 달러의 수입을 거둔 이 영화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차기작 <아바타>로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경신하기 전까지 약 10년 간 흥행수입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주연배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의 위상 또한 급격히 달라졌다. 1975년 생으로 디카프리오와 한 살 터울인 케이트 윈슬렛은 열한 살에 연기를 시작하여 피터 잭슨의 <천상의 피조물>, 리안 감독의 <센스, 센서빌러티>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재능 있는 여배우였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은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출연한 <타이타닉>으로 본격적인 메인스트림 배우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이로부터 11년이 지난 2008년 샘 멘데스 감독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통해 다시 한 번 연기호흡을 맞추게 된다.

<타이타닉>은 이듬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11개 부문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는 <벤허>,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과 더불어 역대 아카데미 최다 수상 기록에 해당한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하였으나 케이트 윈슬렛 또한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수상은커녕 후보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여 자존심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디카프리오의 남우주연상 후보 탈락은 미국 내 그의 열성 팬들을 좌절시켰고, 이들로부터 걸려오는 항의전화에 주최 측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디카프리오는 '<타이타닉>의 축제'가 된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연기파 배우'로의 변신, 그리고 환경운동가로서의 삶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한 장면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


<타이타닉> 이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자신의 '꽃미남' 이미지를 덜어내고자 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하려 하였다. 1999년 우디 앨런 감독의 <셀러브리티>에 자청하여 출연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괴벽을 일삼는 난폭한 성격의 젊은 톱스타 영화배우를 연기하였는데, 불과 10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분량임에도 꽤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하였다.

2000년 대 이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리들리 스콧,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당대 최고 거장들의 작품들에 출연하며 '잘생긴 외모'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기파 배우로서의 행보를 이어나가게 된다. 특히나 마틴 스콜세지와는 <갱스 오브 뉴욕>을 시작으로 <에비에이터><디파티드><셔터 아일랜드> 그리고 2013년 하반기에 공개될 예정인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까지 다섯 편의 영화를 협업하며 로버트 드 니로에 이은 스콜세지의 '페르소나'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영화배우 뿐만 아니라 환경운동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0년 그가 출연한 영화 <비치>의 제작진이 촬영을 위해 나무를 베어 옮기거나 자연 속 야생 환경을 훼손한 일로 비난받은 적이 있었는데, 디카프리오는 이 일을 계기로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환경운동 재단을 설립할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바즈 루어만 감독과의 재회, '위대한 개츠비'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지난 16일 국내 개봉한 <위대한 개츠비>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청춘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한 바즈 루어만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불가사의한 배경을 지닌 남자 개츠비를 연기하였다.

<위대한 개츠비>는 20세기 초 뉴욕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물랑 루즈>가 그러하듯이, 원작이 지닌 시대적 특수성을 화려한 편집과 현대적인 음악으로 치환시킴으로써 현대극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따라서 바즈 루어만이 그려낸 도시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재즈시대의 뉴욕이 아닌, 오로지 그의 영화 속에서만 묘사된 별천지에 가깝다.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반응이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은 듯 하지만, 북미지역 극장가에서는 흥행에 호조를 보이는 중이다. 박스오피스 모조의 집계에 따르면 <위대한 개츠비>는 개봉 2주차에 접어든 현재 1억 3천만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여 제작비인 1억 500만 달러를 모두 회수한 상태다. 국내에서도 지난 16일에 개봉한 이후 4일만에 60만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가도에 파란 불이 켜진 상태.

지난 3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개봉을 앞두고 직접 내한하여 영화홍보에 나섰지만 총 관객 수 26만명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다. 2개월 만에 화려한 멜로영화 <위대한 개츠비>로 국내관객을 찾게 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번에는 흥행배우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위대한 개츠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