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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이병훈 감독 때문이다, 라고 해야 할까? 사극의 '하오체'를 버린 현대극 말투도, 뜬금없는 개그 코드도, 주인공 커플의 '로맨틱 코미디'같은 러브신도 다 이분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하지만 '청출어람'이라고, 제 아무리 스승이 '바담 풍'이라 한들 제자들은 제대로 스승의 뜻을 이해했다면 '바람풍' 했어야 하거늘, 요즘은 제자들이 한 술 더 뜬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고? 바로 새롭게 등장한 퓨전 사극들 말이다.

이병훈 감독의 최근작으로 얼마 전 종영한 MBC <마의>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 가사 일부 '낮에는 정숙하지만, 밤에는 놀 줄 아는 여자'가 대사로 등장했었다. 그러더니, 얼마 전 시작한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은 새롭게 조명하겠다며 장희빈을 졸지에 조선판 패션 디자이너로 만들어 버렸다. <마의> 때는 대사를 저렇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지만, <장옥정>의 패션 디자이너 설정은 대중들의 차가운 반응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 되어버렸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장희빈에게 조선판 패션디자이너라는 설정을 입혀 재해석했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장희빈에게 조선판 패션디자이너라는 설정을 입혀 재해석했다. ⓒ SBS


말 그대로, '퓨전'이란 서로 다른 두 장르를 뒤섞어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마의>와 <장옥정>의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마의>의 퓨전은 애교 수준이었다면, <장옥정>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혹은 실재하는 역사를 전복시킨 이질감이 도를 넘었다. 지나치게 낯설었다고 할까.

'낯설게 하기'는 실제 존재하는 미학 용어이다. 어떤 상황 혹은 조건을 뒤틀어 냄으로써 그 주제에 대한 환기를 시키고, 오히려 주제를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낯설게 하기를 통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냥 낯설어 버린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가 되어버린다. <장옥정>은 퓨전이라는 장르의 역사 해석을 넘어 역사 왜곡이란 생각을 시청자들이 해버리게 되니, 깜짝쇼를 넘어 외면을 받게 되어버린 것이다.

사극 시청에는 장르적 기대감이 있다

 KBS 2TV 수목드라마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의 최원(이동욱 분)과 홍다인(송지효 분).

KBS 2TV 수목드라마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의 최원(이동욱 분)과 홍다인(송지효 분). ⓒ KBS


지난 24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 2TV 수목드라마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이하 <천명>) 역시 어쩌면 <장옥정>으로 갈 것이냐, <마의>로 갈 것이냐의 기로에 놓인 듯하다. 제작진은 주인공 최원(이동욱 분)의 헐렁한 캐릭터라던가, 의녀 홍다인(송지효 분)과의 로맨틱 코미디 같은 '아옹다옹'을 <마의>의 애교와 같은 성격으로 받아들이길 원하는 듯하다. 하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장옥정> 속 패션 디자이너가 주는 이질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사극에 임하는 시청자의 태도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사극을 보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겐 기본적으로 그 시대에 대한 다른 기대감이 있다. 오늘날과 다른 옷, 말투, 행동거지, 세계관, 무엇보다 자유로운 개인의 존재가 부각되는 현재와 달리 엄격한 신분체제 하의 그 시대 사람들이 살며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자 사극을 시청한다.

그런데 현대극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이 현대극과 다르지 않는 대사를 하며, 현대극에서처럼 자유롭게 행동하며 사건을 만드는 사극을 굳이 볼 필요가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퓨전 사극은 고답적인 역사 이야기의 숨통을 틔워주는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천명>은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박지영 분)와 세자 이호(인종, 임슬옹 분)간의 피 튀기는 세력 싸움을 배경으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거기에, 세자를 지키려다 희생된 할아버지에 이어 이제는 병든 어린 딸을 보살펴야 하는 내의원 최원의 이야기가 곁들여져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충분히 극적인 스토리들은 번번이 주인공 최원의 허허실실을 넘어 로맨틱 코미디 속 백수 같은 느슨한 캐릭터와 충돌을 일으킨다. 주인공이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잃게 만든달까?

최원을 그저 권력에 무심한 지고지순한 '딸바보'로만 그려내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천재임에도 그 능력을 숨긴다는 설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지나치게 주인공을 천진하게 그려내다 보니 오히려 극적 몰입감을 저해하고 있다. 천재가 평범한 범인인 척 하는 주인공은 이미 현대극에서도 유행이 좀 지난 캐릭터가 아닌가.

또, 제 아무리 '딸바보'라도, 조선시대와 현대 간 부성애의 표현은 달라야 한다. 굳이 '뽀뽀'를 연발하지 않아도, 측은한 눈빛으로 딸을 구할 수 있는 의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의 모습만으로 충분히 시청자들은 공감할 수 있다. 현대의 '아빠 코스프레'는 과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가장 연기를 잘 한 사람이 아역(김유빈 분)과 문정왕후란 이야기가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사람만이 가장 사극답게, 사극톤으로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그만큼 시청자들이 사극 <천명>의 흐름을 깨는 과도한 퓨전 스타일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최원 역의 이동욱이나, 홍다인 역의 송지효가 역량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고, 조금 더 <천명>의 색채에 맞는 톤의 연기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5252-jh.ty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퓨전사극 천명 장옥정 마의 장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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