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먹고 사는데 최소한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한 달 월급 88만원이라면 과연 어느 정도의 생활이 가능할까. 비정규직 확산일로의 시대에 들 법한 의문들이다.

그렇듯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원들의 대결과 화합의 장을 잘 그려내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감동은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직장의 신' 비정규직 박봉희와 정규직 구영식은 사내연애 중이다. 임신까지 한 상태로 재계약이 불투명한 상태. 미스김은 그들을 위해 장규직과의 씨름 한판에 나선다.

▲ '직장의 신' 비정규직 박봉희와 정규직 구영식은 사내연애 중이다. 임신까지 한 상태로 재계약이 불투명한 상태. 미스김은 그들을 위해 장규직과의 씨름 한판에 나선다. ⓒ KBS


'시스템'에 휘둘리는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

<직장의 신>의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원들의 모습은 여러 면에서 비교할 때 하늘과 땅 차이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장규직(오지호 분) 같은 '독한' 정규직 사원들로 인해 설움을 겪는 모습은 계속 표현되고 있지만, 서로 어울려 애환과 정을 나누는 모습은 그런대로 '견뎌낼 만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비정규직을 강하게 대변해주는 미스김(김혜수 분)의 장규직에 대한 응징은 나날이 통쾌해지고, 선량한 눈빛을 가진 정규직 사원 무정한(이희준 분)은 비정규직 사원 정주리(정유미 분)의 실수들을 무한정 감싸주고 있다.

만일 그 이야기가 실제 상황이라면 어떨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비정한 시스템은 그저 시스템으로 그칠 수 있을까? 다 같은 조직의 일원으로 여길 수만 있다면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그러나 서글픈 것은 우리의 일상은 늘 그 '시스템'에 휘둘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지만, 어느 쪽에 서있든 그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것에 이미 순응하고 있는 한은 말이다.

 지난 23일 방송된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미스김(김혜수 분)이 장규직(오지호 분)에게 소주 한잔을 건네고 있다.

지난 23일 방송된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미스김(김혜수 분)이 장규직(오지호 분)에게 소주 한잔을 건네고 있다. ⓒ KBS


미스김의 '소주 한잔', 시스템 균열의 단초 되길

박봉희(이미도 분)와 구영식(이지훈 분)은 아무도 몰래 사내연애를 하다 들키고 만다. 비정규직인 박봉희는 재계약을 앞두고 있지만, 임신을 한 터라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 장규직은 그 사실을 고위직에게 알리려 하고, 미스김은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선다. 두 사람은 사내 체육대회에서 씨름판을 벌이지만, 장규직이 일부러 져줌으로 해서 결국 사건은 무마되었다.

두 사람의 암묵적 합의가 한 커플을 실의에서 구해냈지만, 사실 미스김과 장규직 두 사람의 처신은 애초에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했을 따름이라는 것. 엄밀히 말하자면 회사의 내부규정에 따라 정석적으로 행동한 사람은 장규직이다.

드라마에서는 그 기계적 태도에 잠시 '인정'을 가미하여 시청자들의 감동을 샀지만, 현실에서는 장규직의 태도가 더 선호될 공산이 크다. 평상시 선량한 마음가짐과는 별개로, 막상 자신의 영역이 비정규직 등의 문제로 침범 당하게 되면 누구나 '발끈하게' 되지 않을까. 비록 지금 부처의 현신처럼 보이는 무정한일지라도 말이다. 

'감정이입'이 곧 '이타주의'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미스김의 활약에 울고 웃고, 정주리의 어려운 처지를 동정하고, 임신한 박봉희가 절대 해고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저 드라마 속의 일에 감정이입하는 것일 뿐, 현실에서의 상황에 적용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직장의 신>은 약육강식의 정글과도 같은 사회적 시스템에 구속되어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의지는 어딘가에 저당 잡힌 채, 시스템이 만든 차별적 지위를 살뜰히 적용해가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모든 것이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일 뿐인데 뭐가 이리 복잡할까.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저 남의 일일 뿐, 감동은 그저 보고 있는 그 순간으로만 그쳐야 하는 것일까. 20대의 95%가 비정규직이 되어 '88만원 세대'가 될지 모른다는 누군가의 말은 그래서 더욱 서글프게 들린다.

씨름 대결에서 일부러 져준 후 포장마차에서 쓸쓸히 술을 마시고 있던 장규직에게 미스김이 다가간다. 그리고는 "소주 한병 더!"를 외치는 그에게 말없이 자신이 먹던 소주를 따라주고 일어선다. 장규직은 감동에 젖지만, 곧 미스김이 자신의 몫조차 계산하지 않고 떠난 것을 알고 그의 등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 '소주 한잔'은 큰 물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비정규직 직원 미스김과 정규직 직원 장규직, 두 사람이 가진 적대적, 대결적 분위기에 자그마한 균열을 만들기 시작한 것. 이제 그것이 두 사람 뿐 아니라, 이 사회의 냉혹한 시스템에 큰 의미를 던져주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직장의 신 미스김 김혜수 오지호 비정규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