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81세, 여덟 명은 심장병이 있고 두 명은 암 환자다. 일상생활을 꾸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이는 17명의 노인이 모였다. 복지관 노래교실이나 건강체조반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텐데, 이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13일간 전국 일주를 하시겠단다. 과연 가능할까?

 영화 <달려라, 그랜드라이더스> 포스터.

영화 <달려라, 그랜드라이더스> 포스터. ⓒ (주)영화사 진진, (주)인디스토리


오토바이 운전면허를 따는 것으로 시작해, 건강체크와 신체훈련 등 일련의 과정을 마친 대만 어르신 열일곱 분이 길을 나선다. 이름 하여 '불로기사(不老騎士)'단! 노인복지관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세밀한 계획을 짜고 최대한 안전을 도모하지만, 도로는 위험천만하다.

그래도 빗길 주행과 야간 주행은 기본이다. 길을 방해한다며 옆으로 밀어붙이면서 경적을 울려대는 대형트럭에 지레 겁을 먹고 넘어질까 봐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어르신들의 오토바이에 함께 올라탄 듯 내 가슴 속이 뻥 뚫리기 시작한다.

도시를 지나 산 넘고 물 건너 내 나라 내 땅을 거침없이 내달리는 어르신들도 신이 나서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이 환해진다. 근육통에 인대가 늘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평소 낮잠을 자는 시간에도 달리다 보니 졸음운전을 하게 돼 넘어지기도 하지만 힘이 넘친다.

전국 일주가 평생 꿈이었다는 할아버지, 오래전 세상 떠난 아내와 갔던 여행이 그리워 다시 한번 떠나고 싶었던 또 다른 할아버지는 아내 사진을 오토바이 앞에 '모시고' 달린다. 60여 년 전 일본군 중위와 국민군으로 서로 총을 겨눴던 청년들이 이제 백발이 되어 나란히 달린다. 암이 재발한 아내와 함께 떠난 남편, 담담한 부부의 모습이 그림 같다.

 영화 <달려라, 그랜드라이더스>의 한 장면.

영화 <달려라, 그랜드라이더스>의 한 장면. ⓒ (주)영화사 진진, (주)인디스토리


최연소 71세에 89세 최고령, 직업도 퇴역군인에서부터 주부, 삼림감시원, 공무원, 경찰관, 목사, 이발사에 이르기까지 17인 17색이지만, 전국 일주의 꿈을 가지고 도전해 달리는 것은 똑같다.

완주 전날 밤 어른들과 스태프들이 모두 모여 파티를 하는데 내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뒷바라지한 젊은이들에게 마음 속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나중에 밝힌 노인복지관장의 이야기. 건강상태로만 보면 17명 중 3분의 2는 탈락 대상이었다는 것. 불로기사단장 어르신과 의논해서 80세 이상은 아무래도 앞으로 더는 기회가 없을 테니 우선권을 주기로 했고, 결국 80세 이상은 다 합격시켜서 함께 전국 일주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분들은 남들보다 특별히 건강해서가 아니라 꿈을 가지고 있었고 도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 전국 일주를 할 수 있었다. 

전국 일주를 마친 3개월 후, 일상으로 돌아온 어르신들의 모습도 잠깐 보여준다. 꿈을 이루었으니 다른 꿈에 도전하겠다는 할아버지, 명예나 재물이 아니라 친구를 사귀고 서로 진심을 나누며 보낸 시간이 소중했다는 할아버지, 카메라를 바라보며 한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이 오래 남는다.

"자네도 60년 후면 나처럼 돼. 내 모습이 자네 모습이야!"

앞에서는 안내 차량이 길을 열고, 뒤에서는 혹시라도 몸이 아픈 사람이 생기면 태우고 가려고 대형버스가 따라오는 것을 보며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어쨌든 계속 가는 거야!"

맞다.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일은 계속 가는 것밖에 더 있겠는가. 꿈은 인생길을 걷고 달리게 하는 무한 동력이다. 노인도 꿈을 꿀 수 있으며, 꿈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17명의 어르신이 내게 묻는다. 너는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꿈이 뭐냐고. 그런 꿈이 있긴 있느냐고. 

덧붙이는 글 다큐멘터리 <달려라, 그랜드라이더스 / 不老騎士 / Go Grandriders (대만, 2012)> (감독 : 후아티엔하오)
* '아시아 다큐멘터리 특별전 AND 쇼케이스 2013' 상영작
달려라, 그랜드라이더스 노인 도전 전국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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