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인> 포스터

<설인> 포스터 ⓒ KAFA Films,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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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아카데미는 2009년부터 제작연구과정을 통해 장편 영화와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왔다. 2011년 3기 작품이었던 <짐승의 끝>을 만든 조성희 감독은 이후 상업 영화 <늑대 소년>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같은 3기 작품이었던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에서 주목받았던 배우 이제훈은 지금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발돋움했다. 4기 작품인 <밀월도 가는 길> 역시 높은 관심을 받았다.

가능성 있는 감독과 재능 있는 배우에게 기회를 주는 등용문으로 자리 잡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이 올해 자신 있게 내놓은 작품은 이사무엘 감독의 <설인>과 김승현 감독의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이다. 한국 영화의 미래를 미리 점쳐볼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이사무엘 감독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설인> 스틸

<설인> 스틸 ⓒ KAFA Films, CJ 엔터테인먼트


<설인>을 만든 이사무엘 감독은 초등학교 시절에 본 성룡의 <프로젝트 A>가 준 두근거림과 황홀함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내게 영화는 곧 성룡"이라고 외치던 소년은 이제 중년의 문턱에 섰다.

그의 영화 <설인>에서 성룡의 액션 영화와의 접점을 찾기는 어렵다. 도리어 <파고>의 코엔 형제를 떠올리게 한다. 세월은 영화적 취향도 변하게 한 걸까? 아니면 외부적 상황이 그를 이끈 걸까? 의문은 영화만큼이나 꼬리를 물었다.

- <설인>은 2012년 제6회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의 아시아 경쟁부문 초청작이었고, 버터플라이상을 수상한 화제작이다.
"신디영화제는 1회부터 관객으로 참여했을 정도로 좋아했다. 미래의 영화를 소개하고자 열심히 노력했던 영화제가 신디영화제다. 그런 영화제에 내 영화를 상영할 수 있다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상영 자체가 꿈만 같았다.

버터플라이상을 받으며 고생했던 배우와 스태프들을 떠올리니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더라. 상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상을 해주었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나를 가르쳤던 박기용 감독님과 정성일 감독님 앞에서 상을 받게 되어 기분이 남달랐다."

- 연수 역의 김태훈씨와 안나 역의 지우씨를 캐스팅하게 된 배경은?
"원래 시나리오상 연수는 40대 초중반으로 설정된 인물이다. 그것에 맞추어 몇 분의 배우와 오디션을 진행했는데 일정이 잘 안 맞더라. 연령대를 조금 낮추자고 생각을 바꾸니 불현듯 <아저씨>와 <약탈자들>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김태훈씨가 떠올랐다. 김태훈씨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반응이 좋아서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지우씨에 대한 첫 기억은 <이층의 악당>이다. 지우씨의 연기에 마음이 끌려 언젠가는 함께 작업하리라 마음먹었다. 안나의 경우도 시나리오에선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였다. 시나리오의 설정보다 지우씨의 나이가 많았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매력이 풍부한 배우라고 믿었기에 시나리오를 살짝 손보고 캐스팅했다."

 <설인>의 연출자인 이사무엘 감독

<설인>의 연출자인 이사무엘 감독 ⓒ 이학후


- <설인>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시작했나?
"언제인가 부인의 출장에 동행했던 적이 있다. 그때 문득 뒷산을 보면서 '저곳에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존재가 살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이것이 <설인>의 출발이다. 그즈음에 보았던 이만희 감독의 <암살자>의 영향을 받아서 초고는 킬러가 나오는 이야기로 가닥을 잡았다. 물론 설인의 개념은 있었지만 지금 완성된 영화와는 다른 성격이었다. 이것을 수정하다가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제작연구과정을 지원하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래서 이전의 <설인>을 완전히 뒤엎은 트리트먼트를 제출했다."

- 제작비 5천 5백만 원을 지원받아 최종적으로 집행한 금액은 7천 4백만 원이다.
"인터넷을 보면 설인에 대한 기사가 많다. 실제로 본 사람이 있을 수도, 반대로 없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만으로 채워지지 않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를 갈망한다.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설인은 '왜 사람들이 저런 것을 믿을까'하는 면에서 내게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설인> 같은 소재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나 제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지원하는 5천 5백만 원으로 <설인>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있었다. 산에 들어가지 않고, 모텔 등의 공간만 오간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렇게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어서 어느 정도 예산 초과의 부담을 안고 제작에 들어갔다. 경험 부족 탓에 생각보다 빨리 예산이 초과했고, 초과한 예산에 대해선 아직 변제가 남아있다.

- "설인의 시간이라고 들어봤어?"라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오프닝이 좋다.
"시나리오 단계에선 없었던 부분이다. 편집 과정에서 영화에 무엇이 좀 더 필요할까 무척 고민했다. 그러다 <설인>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오가는 영화니까 이야기하는 식으로 문을 열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완성된 오프닝에는 인물들이 설산으로 모여든다는 느낌과 영화가 하나의 작은 세계로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모두 담겨있다."

- <설인>의 러닝타임은 91분으로 요즘 영화들의 러닝타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90분 정도를 예상했다. 그 정도 선에서 명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단순하게 보이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갈수록 긴 러닝타임의 영화를 보길 부담스러워하는 내 성향도 반영되었다."

- 짧은 러닝타임에 비해 공간에 모이는 중요한 등장인물의 숫자는 적지 않은데.
"처음엔 코엔 형제의 영화처럼 여러 인물에게 무게를 싣는 방식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촬영 후반에 제작비가 떨어지면서 시나리오를 줄이는 수 외엔 달리 돌파구가 없었다. 촬영 회차와 실내 공간의 숫자를 축소하다 보니 원래 시나리오에 있던 부분이 덜어지면서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발생했다. 또한, 못 찍은 장면 때문에 배우들이 서운하게 느끼기도 했다."

 <설인> 스틸

<설인> 스틸 ⓒ KAFA Films, CJ 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꿈처럼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평범한 남자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는 악몽적 상황을 도시가 아닌, 강원도 산골에서 펼친다면 꿈이나 환상처럼 보이는 것이 가능하다 내다봤다.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방향을 잡아나갔다. 영화를 완성하고 나니 보는 사람의 이해를 염두에 두지 않고, 더욱 극단적이면서 과감하게 꿈 또는 환상의 세계를 표현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쉬움이 남는다."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데 특별한 대사나 장면의 연결을 활용한 이유는?
"<설인>에 나오는 인물은 연수를 제외하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공통점을 가졌다. 그래서 각자의 죽음이 무척 중요했다. 어떤 인물에겐 죽음을 앞에 두고 담담하게 신에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주고자 주기도문을 대사로 줬다. 그걸 러시아어로 말해서 인물의 과거와도 연결했다. 연수와 지우의 장면을 연결하는 편집은 시나리오에서 고려했던 것이다. 관객이 둘의 관계를 정확히 모르더라도 심리적으로 동조하게끔 구성했다.

촬영 조건이 열악하기에 카메라 위치 등을 바꾸면서 변화를 주긴 어려웠다. 대신에 유사한 장면에서는 다른 톤의 연기로 변화를 시도했다. 예를 들면 연수가 꿈에서 깨어나는 장면이 몇 차례 있는데 김태훈 씨가 강하게, 약하게 연기를 하면서 톤의 미묘한 변화를 주었다. 이런 김태훈 씨의 적극성 덕분에 연수라는 인물이 잘 표현된 것 같다."

-차기작으로 알려진 <해파리>는 어떤 영화인가?
"신디영화제에서 <설인>으로 버터플라이상을 수상하면서 차기작의 제작 지원을 받게 됐다. 차기작 <해파리>는 시나리오 초고가 나온 상태다. 졸업하면서 썼던 청춘 영화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그것을 고쳐서 트리트먼트로 제출했다.

<설인>을 작업한 것에서 자연스레 영향을 받아서일까? <설인>에서 보인 시공간을 도시로 가져와서 20대 대학생들이 범죄에 휘말리면서 악몽 같은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로 풀어가고 있다. <설인>보다 더욱 현실감을 부여하고 장르적 형태를 갖추고자 한다. 여름에는 촬영에 들어가려 한다. 제작비가 조금 더 추가된다면 배우 캐스팅에 무게를 싣고 싶은 마음도 있다. 많이 응원해 달라."

설인 이사무엘 김태훈 지우 한국영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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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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