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지원의 이혼 문제가 화제가 됐다. 결혼 2년만의 파경이라 팬들의 충격이 상당한 상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비극을 겪고 있는 사람이 비단 은지원만이 아니란 것이다. 은지원과 함께 연예계에 발을 들여 놓은 '젝스키스' 멤버 대부분이 극심한 슬럼프를 겪으며 힘든 연예계 생활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 때 같은 소속사 식구였던 '핑클'의 행보와 너무나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90년대 최고 아이돌 그룹이었던 젝스키스와 핑클

90년대 최고 아이돌 그룹이었던 젝스키스와 핑클 ⓒ DSP 엔터테인먼트


90년대 최고 아이돌, '젝스키스'와 '핑클'

젝스키스와 핑클은 한 때 SM과 함께 아이돌 시장을 양분했던 DSP가 낳은 최고의 아이돌이었다. SM의 H.O.T와 S.E.S와 격렬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가요계를 장악하다시피 했던 이 두 그룹은 나올 때마다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10대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의 등장은 '가요계 4대천왕' 혹은 '1세대 아이돌그룹'이라고 불리던 H.O.T-젝키-S.E.S-핑클 시대의 화려한 개막을 예고하는 전초전이었다.

DSP가 낳은 '최초의 히트 아이돌'이었던 젝스키스(이하 '젝키')는 97년 데뷔해 2000년 해체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히트곡과 화제를 낳은 전설적인 그룹이었다. 막강한 라이벌이었던 H.O.T가 세련된 음악을 추구했던 것과 달리 친근하고 대중적인 음악으로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젝키는 H.O.T에 버금가는 인기를 모으며 상위 댄스그룹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아직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커플>과 <예감>은 젝키의 대중적 색깔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 히트곡이다.

젝키의 뒤를 이어 1년 후 출범한 여성 아이돌 핑클도 그에 못지않은 성공을 거뒀다. 1집 앨범 '블루레인' '내 남자친구에게' '루비'를 시작으로 '영원한 사랑' '자존심' '화이트' '영원' 등의 노래를 히트시킨 핑클은 라이벌 S.E.S에 필적하는 거대 여성 아이돌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핑클이 나오면 시청률 3~4%가 날 뛴다"는 방송가 속설이 있을 정도로 핑클의 브랜드는 대한민국 전체를 들썩이게 하는 빅히트 상품이 분명했다.

이처럼 젝키와 핑클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인기도,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명성도 세월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순 없는 일이었다. 2000년대 초반 들어 와해되기 시작한 1세대 아이돌 그룹의 시대는 젝키와 핑클의 운명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2000년 5월 18일, 데뷔한지 약 3년 만에 공식 해체 기자회견을 갖고 <드림콘서트>를 끝으로 뿔뿔이 흩어진 젝키는 이후 고난의 연속이었다. 리더 은지원만이 안정적인 연예계 생활을 유지했을 뿐 나머지 네 멤버(고지용은 연예계 은퇴)는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대중의 싸늘한 시선을 온 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젝스키스는 해체 후 고난의 길을 걸었다.

젝스키스는 해체 후 고난의 길을 걸었다. ⓒ DSP


젝스키스와 핑클, 확연히 갈라진 솔로 독립

특히 강성훈과 이재진의 경우는 유달리 고난이 심한 편이었다. 젝키 시절 은지원과 함께 젝키의 '투 톱'으로 활약했던 강성훈은 솔로 독립과 함께 고유의 매력을 잃어버리고 걷잡을 수 없는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내 놓는 앨범마다 족족 실패했고 나오는 방송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여기에 병역비리 사건, 외제차 사기사건 등의 악재가 연달아 터지면서 강성훈의 웃는 모습은 더 이상 TV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최근 그는 사기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 받고 항소를 준비중에 있다.

이재진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를 바 없다. 강성훈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군대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병역 비리 문제로 연예계 재기가 힘들어 진데다가 재입대 이후에도 탈영 문제가 불거지면서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이다. 남자 연예인으로선 사형선고와 같은 대형 병역 사건이 연이어 터진 건 그에게 큰 불행이었다. 힘든 시기를 거친 그는 매부인 양현석의 도움을 받아 현재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운영 중이다.

김재덕-장수원의 제이워크도 실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빅 히트곡이라 할 만한 노래가 없었고, 공백기가 길어지며 대중 소구력도 현저히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현재의 제이워크는 무색무취 상태에 머물러 있는 그룹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솔로 활동 이 후 추락과 몰락을 거듭한 젝스키스와 달리 핑클의 개인 활동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4집 '영원'과 함께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핑클은 오히려 솔로 활동이 그룹 활동의 실적을 능가할 정도로 파격적 인기를 얻었다. 이 중심에는 단연 '핑클의 리더' 이효리가 있었다.

2003년 솔로 1집 '텐미닛'으로 '이효리 신드롬'을 일으키며 대한민국 최고의 섹시 아이콘으로 일약 급부상한 이효리는 가요계 뿐 아니라 예능계까지 접수하며 지금까지 대중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타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유고걸' '치티치티 뱅뱅' 과 같은 히트곡에 <해피투게더><프렌즈><패밀리가 떴다> 등의 국민 예능 프로그램까지 종횡무진 한 것이다. 김태호 PD의 말처럼 그녀는 한국 예능 부문 최고의 존재, 국민적 사랑을 받는 톱스타가 분명하다.

핑클의 리드싱어 옥주현 역시 그 성과가 눈부시다. 솔로 앨범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뮤지컬에 진출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최상으로 끌어올렸다. 뮤지컬 <아이다>를 시작으로 <시카고><캣츠><몬테 크리스토><엘리자벳> 등 대형 뮤지컬의 여주인공을 독차지한 그녀는 2005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 신인상, 2008년 더 뮤지컬 어워즈 여우주연상, 2010년 서울문화예술대상 뮤지컬배우 대상, 2012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성유리 역시 연기자 전향으로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드라마 데뷔작 <천년지애>의 대박과 함께 순탄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눈의 여왕><쾌도 홍길동><태양을 삼켜라><신들의 만찬> 등 여러 작품을 통해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2012년 MBC 연기대상에서는 특별기획 부문 여자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진 역시 <왕과 나><혼><영광의 재인><대풍수> 등 꾸준한 작품 활동을 지속하며 연기자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절정의 인기를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큰 구설에 시달린 적도 없고,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과 캐릭터만 잘 만난다면 성공 가능성이 없다고 보이진 않는다.

 1세대 아이돌 그룹 중 솔로활동에 가장 성공한 그룹 핑클

1세대 아이돌 그룹 중 솔로활동에 가장 성공한 그룹 핑클 ⓒ DSP


젝스키스와 핑클, 무엇이 달랐나

이렇듯 젝키와 핑클은 '솔로활동'을 전향한 뒤 극명하게 운명이 갈린 케이스다. 한 때 같은 소속사에서 한 솥밥을 먹었고,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동등한 인기를 구가했던 이 두 그룹이 어째서 이렇게 상반된 길을 걷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그룹 활동 전략과 해체 방법에 있었다.

젝키와 핑클은 모두 대중 소구력이 높은 그룹이었지만, 그룹 활동의 전략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젝키는 기본적으로 각 멤버들의 개성이나 색깔보다는 팀 자체의 폭발력과 팀워크를 중시했던 경향이 있었다. 화이트 키스나 블랙 키스 등의 유닛들도 실상은 젝스키스라는 팀 자체의 브랜드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된 측면이 컸다. 즉, 6인의 멤버가 각각 가지고 있는 개성보다는 젝스키스 자체의 색깔 만들기에 더욱 주력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젝키는 솔로로 전향하는 순간 대중의 시선 속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반 대중은 젝키 자체를 사랑했던 것이지 멤버 하나하나에게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아니었다. 즉, 젝키 멤버들에게 개인 활동이란 기존의 색깔과 이미지를 새롭게 바꿔나가야 하는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었던 셈이다. 이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그들에게 아마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핑클은 달랐다. 핑클은 처음 활동할 때부터 네 멤버의 각기 다른 개성을 철저하게 어필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했다. 철저히 '팀 중심'이었던 젝키와 달리 핑클은 멤버 개개인의 인지도를 상승시켜 팀의 브랜드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치밀한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이는 훗날 핑클이 솔로로 전향했을 때 대중들이 큰 거부감 없이 그녀들을 받아들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게다가 젝키와 핑클은 마지막 순간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젝키는 자의 반, 타의 반 공식 해체 선언을 하며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그들 스스로 젝키의 종말을 대중에게 고한 것이다. 이는 그들이 더 이상 젝키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자, 지금까지 누린 모든 인기와 이미지를 완전히 이어받을 수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젝키의 공식 해체 선언은 젝키를 추종하던 엄청난 팬덤의 붕괴와 몰락을 유도한 측면이 컸다. 이는 젝키 멤버들의 솔로 활동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허나 핑클은 공식 해체 선언 대신 '잠정 활동 유보'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핑클 팬의 이탈을 미연에 방지했다. 실질적으로 해체와 다름없는 솔로 활동이었지만 그녀들은 핑클이라는 그룹이 쌓아놓은 든든한 명성 아래에서 자신들의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언제든지 다시 뭉칠 수 있다'는 여운은 핑클에 대한 대중들의 사랑을 그대로 붙들어 놓았고, 멤버 개개인에 대한 관심 역시 극대화 시킬 수 있었다. 젝키의 역사 자체를 부정해 버린 젝키와 달리 핑클은 영리하게 핑클이라는 그룹 자체를 유지함으로써 기존 팬층의 규합을 유도한 것이다.

실제로 그녀들은 각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자주 한 자리에 모이는 모습을 미디어에 노출시킴으로써 끊임없이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해체 이 후, 단 한 번도 같은 자리에서 마주하지 못한 젝키와는 상반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제 2의 젝키'가 될 것인가, '제 2의 핑클'이 될 것인가

이처럼 한 때는 당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자 10대들의 우상이었던 그들은 활동 전략의 차이, 해체 과정의 차이, 멤버 각자의 실력 차이 등으로 인해 데뷔 10년이 넘은 지금에 이르러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젝키 멤버 대부분이 극심한 슬럼프와 구설에 허덕이고 있다면 핑클 멤버는 전원 모두 대중의 끝없는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그룹의 엇갈린 운명과 극명한 차이는 지금 활동하고 있는 2세대 아이돌 그룹에게 크나큰 교훈이 되지 않을까. 지금으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제 2의 젝키'가 될지 '제 2의 핑클'이 될지는 그들이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아무쪼록 선배 그룹들이 천천히 걸어가며 남긴 이 교훈들을 타산지석 삼아 '제 2의 젝키' 보다는 '제 2의 핑클'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은지원 파경 젝스키스 핑클 이효리 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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