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방영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홍석천

지난 4일 방영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홍석천 ⓒ SBS


요즘 들어 대한민국 내에서도 동성애자,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 그리고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지난 4일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캠프>) 80회 게스트로 출연한 홍석천이 전하는 한국의 성 소수자가 처한 현실은 작년 11월에 개봉한 이송희일 감독 영화 <백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영화 <백야>에서 원규(원태희 분)은 몇 년 전 동성애자에게 혐오를 하던 이들에게 집단 폭력을 당하고 그 충격에 한국을 완전히 떠나 독일 승무원이 된다. 린치 사건을 통해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된 부모하고 인연을 끊은 지는 오래다. 잠시 한국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원규는 동성애 사이트 채팅에서 만난 태준(이이경 분)과 평생 잊지 못할 밤을 보낸다. 태준은 원규를 대신해 몇 년 전 동성애자에 증오심을 뿜어낸 남자에게 복수하고, 원규와 태준은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긴 이별을 한다.

2009년 실제 종로에서 일어났던 동성애 대상 '묻지마 폭행'을 토대로 만들어졌던 <백야>는 실제 성 소수자로 꿋꿋이 살아야 하는 이송희일 감독의 경험담이 묻어나는 동성애자들의 슬픈 현실이다.

반면 김조광수 감독의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은 가족들에게도 인정받고 사회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며 남들처럼 당당히 살아가고 싶은 동성애자들의 바람이 담긴 판타지다.

<두결한장>의 민수(김동윤 분)이 그랬듯이 대부분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은 '커밍아웃'이 두렵다. 행여나 부모를 포함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낸 이후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 민수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레즈비언 의사 효진(류현경 분)과 위장 결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자 한다.

요즘 용감히 '커밍아웃'을 하며 여전히 동성애에 곱지 못한 현실과 당당히 맞서 싸우는 성 소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나,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더 많아 보이는 '커밍아웃'은 홍석천의 말마따나 생사의 경계를 넘는 진지한 삶의 고민이다.

그런데 지금보다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더 곱지 않았던 시절, 상당히 유명한 연예인 축에 속했던 홍석천은 당당히 커밍아웃을 선언하였다. 지난 13년간 우리나라 유일 커밍아웃 연예인으로 살아왔던 홍석천의 성 정체성 고백 이후 삶 또한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커밍아웃 대가로 방송에서 잠시 물러나야 했으며, 2003년 김수현 작가의 <완전한 사랑> 캐스팅 이후 연예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지난 4일 방영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닌한가>에 출연한 홍석천과 홍석천 아버지

지난 4일 방영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닌한가>에 출연한 홍석천과 홍석천 아버지 ⓒ SBS


커밍아웃 이후 성 소수자 혐오감에 비롯된 물리적, 정신적 폭력에도 견뎌내야 했지만 가장 홍석천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부모님이다.

보통 우리나라 부모가 그랬듯이 아들이 좋은 여자 만나서 행복하게 잘사는 게 소원이었던 홍석천 부모에게도 아들의 커밍아웃은 하늘이 무너지는 날벼락과 같은 충격이었다. 여전히 홍석천 부모님은 홍석천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아들이 평범한 사람으로 되돌아갔으면 하는 솔직한 바람을 내비친다. MC 김제동의 솔직한 고백처럼 성 소수자를 어렴풋이 이해하는 이성애자들 또한 말과 머리로는 편견이 없다고 하지만 은연중에 드러나는 편견은 성 소수자, 이성애자 모두 극복해야 할 과제다.

홍석천은 지난 4일 SBS <힐링캠프>를 통해 지난 몇 년 동안 자신이 알던 성 소수자 지인들을 10명 가까이 잃었다고 비통함을 표한다. 홍석천이 커밍아웃 한 지 13년이 흘렸지만, 여전히 연예계에서 커밍아웃한 이는 오직 홍석천뿐이다.

김조광수, 이송희일 감독과 더불어 한국에서 젤 유명한 성 소수자 문화인사 한 사람으로서 홍석천은 바쁘다. 다수의 이성애자가 즐겨보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동성애자를 둘러싼 무지에서 생긴 거부감을 걷어내는 것은 항상 그의 몫이다. 동시에 몇몇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휘두르는 폭력에 힘들어하는 성 소수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연예인 유일 커밍아웃 스타로서 자신이 먼저 겪었던 성 소수자의 비애를 다음 세대에 대물림되지 않도록 용기를 낸 홍석천의 진심은, 동성애에 관대하지 않았던 이경규까지 이해시킨다.

 지난 4일 방영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홍석천

지난 4일 방영한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홍석천 ⓒ SBS


홍석천의 말에 따르면, 다수와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호모포비아가 암암리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나라에서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하지만 홍석천은 포기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해피엔딩이었지만 영화 <두결한장>의 마지막 장면처럼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부모 앞에서 동성애 연인과 떳떳이 결혼식을 올리고, 미국 영화 <라잇 온 미>의 주인공들처럼 성 소수자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도 어떠한 불이익을 받지 않고, 남들처럼 똑같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오늘도 홍석천은 달리고 또 힘을 내어 열심히 달릴 것이다.

겉으로는 이해한다고 하나 실상은 다수가 옳다는 맹목적 믿음 하에 소수의 가치와 성향지닌 이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 그럼에도 틀림이 아닌 다름을 진솔하게 일깨워주는 홍석천의 고백은, 홍석천 본인은 물론 시청자들까지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힐링캠프> 프로그램의 진정한 정체성을 회복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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