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과 난간, 기둥과 수많은 방을 가진 곳, 학교는 그저 차가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구조물에 불과한 것인가. 교내 폭력, 학생들 간의 갈등, 성적에 매달려 다른 것은 생각지도 못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무관심한 교사들이 어쩔 수 없이 함께 하는 공간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적어도 <학교 2013>, 이 드라마 내에서의 학교는 말이다.

<학교 2013>은 16부작에 불과했지만 교사와 학생의 입장을 오가며 많은 에피소드를 담아냈다. 그 중에는 현재의 학교의 현실을 거울처럼 비췄다는 평도 있었고, 어떤 면은 조금 낭만적으로 그려졌다는 평도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는 학교가 사각의 구조물에 불과한 곳이 아니어야 한다고,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 모두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뜻했던 드라마, <학교 2013>이 막을 내렸다.

<학교 2013> "나쁘게는 살지 않을게요."라는 오정호의 한마디는 강세찬을 울렸다. 또한 이것은 드라마의 주제를 잘 드러낸 명장면 중의 하나가 되었다.

▲ <학교 2013> "나쁘게는 살지 않을게요."라는 오정호의 한마디는 강세찬을 울렸다. 또한 이것은 드라마의 주제를 잘 드러낸 명장면 중의 하나가 되었다. ⓒ KBS


"나쁘게는 살지 않을게요.", 우리 시대 교육에 건네는 메시지

오정호(곽정욱 분)가 드디어 교내 봉사활동을 끝냈다. 매번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재활용 분리수거를 다 마치는 것이 힘들었던 그였다. 수레를 끌고 가던 그는 강세찬(최다니엘 분)과 마주치고, 학교를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그는 결국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다. 몸을 다친 아버지를 대신해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인재(장나라 분)와 강세찬은 오정호가 학교에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의 퇴학만은 막으려고 그동안 안간힘을 썼던 그들이었다. 정의감에 불탔던 정인재와 모든 것에 냉소적이었던 강세찬, 그들이 학교와 아이들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벽에 부딪히면 정면 돌파를 택했던 사람과 냉정히 뒤돌아버리기 일쑤였던 사람. 

오정호는 학교를 그만두며 강세찬에게 "나쁘게는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의 성장을 알리는 상징적인 그 한마디. 그것은 <학교 2013>이 전하고자 했던 수많은 메시지들 사이에서도 아주 큰 울림을 남겼다. 세상에 눈을 부라리며 한 치의 경계도 풀지 않고 시종일관 방황하던 오정호였기에 그 말의 의미는 더욱 큰 반향을 불러올 수 있었다.

<학교 2013> 길은혜가 '학교폭력위원회'를 열겠다는 말에 억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상태다.

▲ <학교 2013> 길은혜가 '학교폭력위원회'를 열겠다는 말에 억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상태다. ⓒ KBS


잘못된 시스템이 낳은 '괴물' 길은혜, 보듬어야 할 또 다른 존재

오정호는 극심한 가난과 폭력적인 아버지를 가진 가정환경이 만들어낸 문제아였다. 어찌 보면 오정호의 일탈은 교육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빈부 격차, 소외계층의 문제 등,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를 하는 것이 빠를 수 있다. 물론 엇나간 그 행위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학교의 골칫거리가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정호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길은혜(길은혜 분)다. 그는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가정환경을 가진,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학생의 모습이다. 그러나 <학교 2013>의 막판 에피소드에서 그는 마치 '소시오 패스'로 우려될만한 언행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오판으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입었고, 그것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 후에도 여전히 뻔뻔한 모습이었던 것. 그는 다른 사람이 입었을 상처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다.

길은혜의 꿈은 아나운서이고 이유는 '성공적 결혼에 부합하는 조건이며, 잘하면 재벌가의 며느리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난희(오영실 분)와 조봉수(윤주상 분) 등 교사들은 정인재와 대화를 끝낸 후 교무실을 나서는 길은혜의 뒤에서 "저런 아이들이 시험도 잘 보고, 대학을 졸업해서도 요직을 맡는다.", "우리가 지금 뭘 키워서 내보내는 건지.. 어이구."라는 자조적인 말들을 내뱉는다.  

 <학교 2013>의 장면들

<학교 2013>의 장면들 ⓒ KBS


'벽에 부딪힐 때마다 돌아서면 선생 못해'라며 늘 정인재를 격려해주던 조봉수였다. 그 '벽'이 의미하는 것은 일그러진 사회, 문화, 교육 등의 시스템과 그것의 희생양이 된 학교, 교사,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들 아니던가. 길은혜가 보이고 있는 사회의식도 그 폐해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길은혜에 대해 교사들이 하는 말들은 그 '벽'의 단단함을 확인시키고 있을 뿐이다.

이른바 '일진'이라는 이름으로 물리적 폭력에 앞장서는 오정호 등의 학생들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어찌 보면 길은혜의 행태다. 그는 가치관이 전도된 사회적 결과물이 분명하지만, 사실상 누구도 손쓰기 어려운 상대다. 뒤로 숨을만한 곳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제 거기에 권력이 더해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학교 2013>은 길은혜에 대해 더 이상 그리지 않았다. 그 결과로 그는 드라마 막판에 이르러 가장 두려운 존재로 남게 되었다. 드라마는 그를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었지만 그냥 내버려두겠다는 서글픈 체념의 표시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믿는다. 정인재와 강세찬이 종례를 마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오정호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지켜보는 우리 또한 또다른 정인재와 강세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난 28일 종영한 KBS 2TV 드라마 <학교 2013>의 27일(토) 마지막 촬영 현장에서는 촬영을 이끈 수장 이민홍 감독이 선생님과 2-2반 전체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선사했다.

지난 28일 종영한 KBS 2TV 드라마 <학교 2013>의 27일(토) 마지막 촬영 현장에서는 촬영을 이끈 수장 이민홍 감독이 선생님과 2-2반 전체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선사했다. ⓒ KBS



KBS 학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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