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인의 삶> 포스터

영화 <타인의 삶> 포스터 ⓒ 에스와이코마드

"이 음악을 들은 사람이라면, 제대로 들은 사람이라면, 여전히 나쁜 사람일 수 있을까?"

<착한 사람의 소나타>라는 음악이 흐르고 한 남자가 그의 연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 남녀의 대화를 도청해 엿듣는 남자의 눈에서는 주르륵 한 줄기 눈물이 흐릅니다.

6년 전에 개봉했을 때 묵직한 감동으로 만났던 <타인의 삶>을 다시 봤습니다. 2013년에 다시 만난 이 영화는 2007년에 만났을 때보다 더 마음을 적십니다. 때는 1984년 분단 하의 동독, 당시 10만 명의 비밀경찰과 20만 명이 넘는 스파이가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목표 하에 반체제·반사회주의 성향의 모든 이들을 감시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은 사찰과 도청·고문과 투옥이 횡횡하던 시대였습니다.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는 경찰대학의 교수이기도 한 비즐러란 남자가, 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인 연극 배우 크리스타를 도청하고 사찰하는 게 이 영화의 소재입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저 자신의 삶과 현실을 투영해서 보게 됩니다. 좋은 영화나 문학 작품들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저는 영화 초반에 사찰과 취조, 잠을 못 자게 하는 고문 장면을 보면서 괴로웠습니다. 또한 일거수일투족 모든 사생활이 고스란히 타인의 시선과 감시 하에 놓이는 현실이 무척 두려웠습니다. 지난해 민간인 사찰로 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었던 지인 생각도 났습니다.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24시간 감시해 그들의 불온한 낌새를 캐내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다가 '타인의 삶'을 엿보던 비즐러의 삶이 서서히 변화합니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취조 방법을 가르치는 비즐러는 한편 외로운 남자입니다. 혼자 살며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그의 모습은 참 쓸쓸해 보입니다. 그는 고장날 줄 모르는 기계처럼 그가 믿는 체제와 국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합니다. 동독을 버리고 서독으로 도주하거나 도주를 돕는 이들, 체제에 위협하는 발언을 하는 이들을 하나하나 잡아들여 족치는 일을 합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시와 음악과 같은 예술입니다. 브레히트의 시는 차가운 강철 같은 그의 마음을 데우기 시작하고, 소나타는 그로 하여금 눈물을 떨구게 합니다.

푸르렀던 9월의 어느 날
어린 자두나무 아래서 나는
말없이 그녀를, 그 조용하고 창백한 사랑을
우아한 꿈을 꾸듯 품에 안았다
우리 머리 위로 아름다운 여름 하늘에는
오랫동안 보아 온 구름 한 점 떠있었다.
아득히 높은 곳의 새하얀 구름은
내가 올려다보았을 때, 이미 사라져 버렸다.
– 브레히트 <마리 A에 대한 회상> 중에서

'타인의 삶'을 엿보던 비즐러는 결국 그들의 삶에 젖어 들고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이 사랑을 나눌 때, 그도 사랑을 나눌 여자를 찾기도 합니다. 또 크리스타가 자신감을 잃고 흔들릴 때 우연인 것처럼 위장해 다가가 격려해주고, 마지막에는 드라이만에게 큰 위기가 닥치자 그를 헌신적으로 지켜줍니다. 그 결과, 그의 지위는 강등되고 그는 우편배달부로 남은 인생을 살지만 그래도 그는 행복해보입니다.

결국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세상은 변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달라진 세상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삶. 쓸쓸하기도 하지만 따뜻하기도 합니다.

타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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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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