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에는 역시 가족을 빼놓을 수 없다. 가족은 인물과 에피소드가 다양하고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3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유용한 소재다. KBS 2TV <패밀리> 역시 한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일일시트콤이다. 요즘 말에 비유하자면 '얼짱'이라기보다 '훈남'에 가까운, 선풍적인 인기보다 잔잔한 호응을 얻고 있는 이 시트콤은 한 재혼가정이 진정한 '패밀리'가 되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간다.

 우성가족과 열성가족의 결합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트콤 <패밀리>

우성가족과 열성가족의 결합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트콤 <패밀리> ⓒ KBS


겉으론 완벽한 '우성 가족' 엄마 우신혜(황신혜 분)와 덜떨어진 가족의 표상 '열성 가족' 아빠 열석환(안석환 분)의 재혼으로 가족이 된 이들의 처음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우아한 생활을 해 온 우성 가족 할머니 나일란(선우용녀 분) 여사의 눈에 열성 가족 할머니 궁애자(남능미 분)는 말 그대로 '궁상'이었고, 전교 1등에 학생부회장인 우다윤(다솜 분)에게 새 오빠 열우봉(최우식 분)은 빵 셔틀이나 하는 '찌질이'였다. 각 집안의 동갑내기 큰딸 우지윤(박지윤 분)과 열희봉(박희본)은 외모로 비교당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어쨌든 이들은 한가족이 됐다. 그리고 100회가 넘은 지금, 이들은 누가 봐도 한가족이다.

'우성가족'의 결핍을 채워준 '열성가족'

이 가족의 변화는 조용하지만 강렬하다. 특히 우성 가족에게 찾아온 변화를 보면 이 드라마가 어떤 가족상을 그리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지난 11일 신혜는 막내 막봉(김단율 분)의 생일파티를 해 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두 딸을 키우면서 제대로 엄마 노릇을 못했던 그녀는 이 기회에 아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호텔을 예약하고, 이벤트 회사를 통해 마법사를 초청하는 등 고급 생일파티를 준비한다. 그러나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실망한 그녀는 내년엔 더 멋진 생일파티를 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막봉에게 이번 생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내 열막봉은 신혜엄마의 노력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일파티를 열었다.

막내 열막봉은 신혜엄마의 노력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일파티를 열었다. ⓒ KBS


막봉이 신혜를 바꾸고 있다면 애자와 우봉은 다윤을 변화시킨다. 그것이 확연히 드러난 에피소드가 지난 4일 방송됐다. 늘 계획적으로 살아온 다윤의 방학계획을 무너뜨리는 열성가족의 하루. 그녀의 다이어트의 꿈은 애자의 비빔밥에, 공부 계획은 가족끼리 둘러앉은 윷놀이에 무너졌다. 남은 반찬으로 만든 비빔밥을 한데 모여 먹어본 적 없던 다윤에게 그 밥은 난생 처음 먹어본 '가족의 맛'이었다. 우봉에게 입버릇처럼 "너희 가족 때문에 내 계획이 망했어"라고 하면서도 그 가족 사이에서 누구보다 아이처럼 즐겁게 놀았던 다윤. 애자의 무릎에 누워 편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보니 그 어린 날이 괜히 안쓰러웠다.

 열성가족을 통해 '가족의 맛'을 알게 된 다윤. <패밀리>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은 그녀가 아닐까.

열성가족을 통해 '가족의 맛'을 알게 된 다윤. <패밀리>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은 그녀가 아닐까. ⓒ KBS


사람을 성장시키는 사랑

사람은 소통을 통해 성장한다. 성장은 관계된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을 자라게 한다. 지윤은 희봉을 보며 성장했다. 예쁜 외모와 애교로 힘든 일을 피해왔던 지윤. 그녀에게 삶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희봉을 만나고 그녀의 인생도 바뀌었다. 희봉을 칭찬하는 엄마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았고, 짝사랑했던 지호(심지호 분)가 희봉과 사귀게 된 것을 계기로 그녀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이 과정을 겪으며 한층 성숙해진 지윤은 처음으로 독립을 결심한다.

 열희봉과 차지호는 지호와 신혜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막봉의 생일 잔치 준비를 돕기로 한다.

열희봉과 차지호는 지호와 신혜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막봉의 생일 잔치 준비를 돕기로 한다. ⓒ KBS


희봉과 지호는 서로를 바꿔놓았다. 이 시트콤의 또 하나의 인기비결인 두 사람은 희봉과 지호의 이름을 딴 '봉지커플'로 불린다. 까칠하고 결벽증이 있는 지호가 다정한 남자가 되고 자신을 꾸밀 줄 모르던 희봉이 지윤의 옷을 빌려 입고 데이트에 나가는 수줍은 '아가씨'가 되는 과정은 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다. 좋아하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서툴었던 두 사람. 여러 에피소드를 거쳐 이제 제법 연인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두 사람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는 이처럼 변화의 과정을 담고 있어야 한다. 한 가족이 새로운 가족을 만나 성장하는 이 시트콤이 꾸준히 사랑받으며 100회 이상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과정이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이다.

가족이 함께 보기 좋은 시트콤 <패밀리>

시트콤이라고는 하지만 <패밀리>에 배꼽을 잡을 만큼 웃긴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패밀리>의 재미는 일상의 작은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사건, 내 이야기이자 내 친구의 이야기가 캐릭터를 통해 에피소드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때로는 예상 가능하기도 하고 진부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부담이 없다는 것이 이 시트콤의 장점이다. 자극적인 소재와 지나친 악역으로 피로한 이야기 더미 속에서 빛을 발하는 이 시트콤은 마치 매일 밥상에 올라오는 '쌀밥'같다. 인스턴트로 자극에 익숙해진 입맛 때문에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을 내는 쌀밥. 차근차근 <패밀리>의 지난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마지막 회가 될 120회를 기다려본다. 

패밀리 KBS2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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