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포스터.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새해가 시작된 지난 1일, 이안 감독의 새 영화가 개봉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 소설 <파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이번 영화에서, 이안 감독은 특유의 그림 같은 영상미와 함께 믿기 힘든 놀라운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 그곳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건너온 주인공 파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려는 작가와 만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수학책에서 봤을 법한 특이한 이름을 갖게 된 이유, 이성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아버지와 종교인 어머니 사이에서 3개의 종교를 믿으면서 자란 어린 시절, 그리고 성인이 되기까지 파이의 삶은 흥미롭지만 다른 평범한 소년들의 삶과 크게 다르진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어느 정도 관객의 관심을 끌어낸 뒤, 영화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의 가족이 인도를 떠나서 아버지 소유의 동물들을 모두 싣고 캐나다로 떠나던 중, 폭풍을 만난 배는 그대로 침몰하게 된다. 파이는 가까스로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하게 되는데, 그 뒤 오랜시간 간 바다를 표류하며 겪은 이야기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파이의 표류기, 호랑이와 한 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호기심 많은 청년이었던 파이는, 가족의 결정으로 인도를 떠나게 되면서 사랑하는 여자와 이별하게 된다. 캐나다로의 이민을 통해 새 삶을 살 기회를 얻게 된 파이와 그의 가족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그들에게도 삶은 계획처럼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필리핀 마닐라 앞바다를 지나던 중, 뜻밖에 거센 폭풍을 만난 선박은 침몰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사고에 파이는 가족을 구하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서 구명보트에 몸을 싣게 된다.

문제라면, 배 위에 올라탄 게 혼자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배에는 동물원을 운영하던 시절 아버지의 소유였던 얼룩말과 하이에나가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바나나 더미를 타고 바다 위에서 목숨을 부지하던 오랑우탄도 이들의 구명보트에 옮겨타게 된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이에나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여 얼룩말을 물어 죽이고, 이에 저항하던 오랑우탄마저도 결국 공격받아 목숨을 잃는다. 이를 지켜보다 분노한 파이는 칼을 꺼내드는데, 그 순간 보트의 천막 아랫쪽에 숨어 있던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튀어나와 하이에나를 단숨에 처리해버린다.

혼자 바다 위를 표류하게 된 것만 해도 일생일대의 위기인데, 거대한 호랑이와 함께 같은 배에 올라타게 되다니. 과연, 파이는 이 난관을 잘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뛰어난 영상미와 긴장감 넘치는 내용전개, 그리고...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시시각각 색색으로 변해가는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을 비추면서 동시에 나름의 매력을 드러내는 바다. 영화는 화려한 CG기술을 통해 바다와 하늘 사이에 놓인 배 한 척과 뗏목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사실적이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든 장면들이지만, 위화감이 들지 않으면서 묘하게 멋진 모습들을 연출해낸다. 특히 별들이 수놓은 하늘 아래 야광해파리들이 빛을 발하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다.

살아있는 듯 실감나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 그리고 그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파이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상영시간 내내 마음 졸이게 된다. 또한 바닷속에도 상어 등 여러가지 위험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 3D로 관람한 관객이라면, 이 모든 것들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단순히 볼거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그 이상의 물음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다. 그 중요한 소재는 다름 아닌, 구명보트에 동승한 호랑이의 존재다. 주인공 파이에게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과연 어떤 의미인가?

처음에 이 호랑이는, 파이에게 큰 골칫거리이자 위기로 다가온다. 자칫하면 그 때문에 죽을 수도 있으며, 사투의 과정에서 식량과 물을 잃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파이는 배 안에 있던 나무판자들과 구명조끼로 작은 뗏목을 만들어, 호랑이가 타고 있는 구명보트와 밧줄로 이어놓았지만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서 볼 때, '호랑이'의 존재는 홀로 표류하는 파이의 '생존본능'이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가 투영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말하자면 육식동물의 야성과 같은 원초적인 욕망이 응집되어 발현된 것이다. 이는 파이가 아버지로부터 배운 '이성적 사고'와 정반대에 있는 것이며, 식량을 아껴먹는 등의 자제력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파이는 '욕망'을 대변하는 호랑이와 떨어져 뗏목 위에서 지내야 했으며,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생존가이드' 책자의 여백에 일기를 적으면서 지낸 것이다.

또한, 구명보트 위에서 또 다시 만난 폭풍 속에서 파이는 당당하게 신의 이름을 외치며 겁먹지 않고 맞선다. 이는 파이가 어머니를 통해 접했던 종교의 힘 덕분이었다. 반면, 이 순간 호랑이 파커는 보트의 천막 안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린다. 인간 내면의 두려움을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이겨내는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삶의 끝에서 만난 이성과 종교, 선택에 따라 관점은 달라진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호랑이로 표현된 원초적인 본능은 때때로 위기상황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기도 하기에 파이는 파커를 보트 바깥으로 내쫓거나 죽여버릴 수는 없었다. 처음엔 경계하고 멀리했지만, 끝내 그것마저도 자신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 등장한 배구공 '윌슨'이, 표류하던 주인공이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도구였다면, 호랑이로 나타난 보트 위의 동행자는 절망적인 삶의 순간에서 튀어나온 극단적인 욕망과 비이성의 표출이었다. 파이가 마침내 구조되고 다시 사람들이 사는 세상속으로 돌아오게 되자, 호랑이인 리처드 파커가 밀림 속으로 말없이 사라져버린 것도 이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열린 결말을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생각해볼만한 소재를 내밀고 있는 듯 하다. 관점의 차이는 선택의 결과다. 주인공 파이가 자신을 찾아온 작가, 그리고 관객인 우리에게 들려준 두 가지 이야기 중 당신은 어느 쪽을 믿을 것인가? 현실적이지 못하지만 우리를 꿈꾸게 하는 초현실적 이야기, 그리고 차가울 정도로 냉정한 현실적인 이야기. 이해하기 쉬운 쪽은 후자이지만, 더욱 마음이 끌리는 쪽은 분명 전자에 가깝다.

'맹목적인 믿음'을 견제하려는 이성, 그리고 그 이성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신화. 모두 욕망을 뛰어넘어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해주는 것들이지만,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느 한 쪽만으로는 부족할는지도 모른다. 오랜 인류역사를 거쳐온 21세기에도 여전히 종교와 과학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며, 또한 어느 쪽도 완벽하지는 않다. 어쩌면, 그만큼이나 부족한 우리에게는 여전히 양쪽 모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표류기를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로 간직하며 살아가는 파이의 삶처럼.

라이브 오브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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