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KBS 예능을 총결산하는 <2012 KBS 연예대상>이 숱한 화제를 남기며 막을 내렸다. <개그콘서트> 출연 개그맨들을 비롯해 수많은 예능인들이 골고루 상을 타간 가운데 영예의 대상은 <안녕하세요><불후의 명곡>의 신동엽이 수상했다. 2002년 제 1회 KBS 연예대상을 수상한지 딱 10년만에 다시 한 번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2012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한 MC 신동엽

2012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한 MC 신동엽 ⓒ KBS


'최고의 MC' 신동엽은 왜 추락했나.

신동엽은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MC 중 한 명이다. 과거 방송 3사 예능 라인을 한 손에 움켜쥐고 좌지우지했고, 나오는 프로그램마다 대박 행진을 이어가 예능계 대표 '흥행보증수표'로도 이름을 떨쳤다. <해피투게더><맨투맨><헤이헤이헤이><두남자쇼> 등이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한 당대 최고 예능 프로그램이다.

MC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순발력과 애드리브다. 순간순간 치고 들어가는 애드리브는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이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의외의 웃음을 캐치하는 것도 가히 동급 최강, 국내 최고다. 깐족거리면서도 밉지 않은 이미지에, 재미없는 상황에서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MC 신동엽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의 이런 장점은 토크와 콩트가 대세를 이루던 2000년대 초중반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했다. <해피투게더>와 같이 게스트를 한곳에 몰아넣고 양질의 토크를 집중적으로 뽑아내는데 열중하는 프로그램에서 신동엽은 PD와 시청자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의 능수능란한 실력을 선보였다. 당시 그는 방송가에서 예능의 황제, 희극지왕이란 별명이 부끄럽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영광은 그리 길지 않았다. 2006년을 기점으로 철옹성 같이 느껴지던 '신동엽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그는 사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신동엽은 서울예전 동기인 유재석, 김용만 등을 영입해 연예기획사인 DY 엔터테인먼트를 출범시켰다. 말 많고, 탈 많았던 DY 엔터테인먼트의 시작이었다.

당시 방송가에서 막강한 파워를 휘두르고 있었던 그는 본격적인 연예사업에 뛰어들면서 "대한민국 예능계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야심찬 포부까지 밝혔다. DY 엔터의 주축 멤버만 해도 유재석, 김용만을 위시해 노홍철, 이혁재, 송은이, 강수정 등 당대 최고의 기라성 같은 MC들이 모두 밀집해 있었다. 이만하면 대한민국 예능계를 통째로 옮겨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야심 차게 시작한 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팬텀과의 인수합병, 디초콜릿(구 팬텀) 주식 확보, 회사 경영권 분쟁, 회계 비리 사건 등의 과정을 거치며 신동엽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특히 경영권 문제를 두고 디초콜릿 측과 벌였던 치열한 진흙탕 싸움은 아무리 좋은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그의 이미지에 먹칠한 사건은 분명했다. 대중이 사랑했던 귀엽고 익살맞은 국민 MC 신동엽의 모습은 이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업문제로 방송에 전념하기 어려워지고,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으면서 MC 신동엽의 경력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경제비타민><인체탐험대><대결 8대1><퀴즈프린스><오빠밴드><우리 아버지><샴페인><야행성> 등 그가 맡은 프로그램은 약속이나 한 듯 시청자들의 차가운 외면을 받았고 그중에는 시청률 1%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운 프로그램도 있을 정도였다. 그의 이름 앞에는 어느새 '흥행부도수표'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이 붙었다.

그의 가장 큰 패인은 사업에 신경을 쓰느라 트렌드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유-강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한민국 예능은 급격히 '리얼 버라이어티'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하지만 스튜디오 녹화와 1인 MC(혹은 2MC) 체제에 익숙해져 있던 신동엽은 집단으로 움직이며 소소한 에피소드를 끊임없이 펼쳐내는 리얼 버라이어티에 적응하지 못했다. 유-강의 시대에 그의 코미디가 '낡은 것' '올드한 것' '진부한 것' '지겨운 것'으로 인식된 가장 큰 이유는 트렌드를 읽어내 제때 변화하지 못한 신동엽의 치명적 실수 때문이다.

 신동엽 부활의 1등 공신인 KBS <안녕하세요>

신동엽 부활의 1등 공신인 KBS <안녕하세요> ⓒ KBS


혁신 거듭한 2012년, 신동엽의 '화려한 부활'

그런데 이렇듯 처참할 정도로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던 신동엽이 2012년 화려하게 '부활'했다.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온전히 '방송인 신동엽'으로 돌아온 그는 <안녕하세요><불후의 명곡><동물농장><강심장><SNL 코리아>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친근하고 익살맞은 예전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회복해냈다. <안녕하세요>가 월요일 밤 11시대 최강자로 올라서면서 흥행력을 검증받은 것 역시 큰 성과다.

그렇다면 신동엽은 어떻게 부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부지런한 '변화와 적응'이다. 그가 <안녕하세요>로 대세인 집단 MC 체제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것은 특히 놀랍다. 적극 트렌드를 수용한 신동엽은 집단 MC 체제 속에서 분위기를 조율하고 수습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해냈다. <안녕하세요>에서 그는 프로그램의 중심이면서, MC 집단의 한 일원이다. 이건 'Only 신동엽' 밖에 없었던 예전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뿐 아니라 그는 자존심도 버렸다. 강호동-이승기 후임으로 <강심장> MC 자리를 선뜻 맡은 것은 상당히 파격적 선택이었다. 신동엽은 데뷔 이래 단 한 번도 누구의 후임 MC로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강심장> 후임 MC로 기꺼이 들어간 이유는 방송하고 싶은 열망과 의지가 누구보다 컸기 때문이다. 자존심 대신 방송인의 삶을 택한 셈이니 이거야말로 정말 대단한 용기다.

 KBS <불후의 명곡>의 MC 신동엽

KBS <불후의 명곡>의 MC 신동엽 ⓒ KBS


스튜디오형 MC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 역시 높이 평가 받을만하다. 신동엽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무리하게 시도하기보다는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르를 통해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불후의 명곡> 같은 스튜디오 진행을 통해 개인플레이에 강한 본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수백 명의 관중 앞에 홀로 서서 신동엽만큼 자신감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MC는 흔치 않다. 특히 보조 MC조차 옆에 붙이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힘만으로 프로그램의 완급을 조절하며 객석을 쥐락펴락하는 솜씨는 누구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정도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오롯이 빛난다. 전현무의 말처럼 "자체발광 예능인"답다.

결국, 이러한 노력 끝에 신동엽은 2012년 KBS 연예대상의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고비도 많았다. 하지만 방송인으로 돌아온 신동엽은 게으름 피우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끊임없이 변신하고 적응했다. 그래서일까. 정상에 다시 오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신동엽에게 이번 대상은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한 의미로 다가갈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오늘의 영광에 취하지 말고, 내일을 위해 또 열심히 뛰는 국민 MC 신동엽이 되길 바란다. 그의 건투를 빈다.

신동엽 KBS 연예대상 불후의 명곡 안녕하세요 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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