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프로그래머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프로그래머 ⓒ 서울독립영화제


[기사수정 26일 11시 30분]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초창기 시네마테크 운동을 이끌었던 '문화학교 서울'과 '인디포럼' 등에서 활약한 뒤 2002년부터 서독제의 수장으로서 10년 넘게 영화제를 이끌고 있다. 이도 모자라 작년 개봉해 화제를 모은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과 <나나나 :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 등을 프로듀싱 하기도 했다.

영화와 운동 사이,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사이, 그리고 산업과 정책 사이. 조 집행위원장은 이 모든 카테고리를 넘나드는 가운데서도 근본적인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관점'을 강조한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고 다른 인사들로 정부가 채워진다고 해도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 없이는 독립영화도, 예술도, 문화도 살아남기 어렵다는 인식이 이미 확고하기 때문이다. 서독제의 지평 역시 이러한 한국의 척박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뿌리를 내렸다. 그런 점에서 그에게서 듣는 2012년의 독립영화계 현안과 고견들은 분명 경청할 만했다.  

- 영진위 후원 얘기 좀 더 해 보자. 독립영화 지원 철회는 한동안 이슈가 됐었다.

"내실 있게 감사를 하지도, 법적 검토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중단해 버렸었다. 지원이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법리 검토도 받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나왔다. 영진위 내부에서도 지원을 안 한 것이 오히려 과도하단 평가가 난 걸로 알고 있다. 문광부나 영진위 실무자들은 노력을 한 걸로 알고 있다. (실무자들이) 지원을 해주면 어떻게 될까봐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 이 정부의 가장 안 좋은 부분 중 하나였다."

- 먼저 위축되게 만드는 게 가장 나쁘지 않나. 특히나 돈과 밥그릇과 연계시켜서.

"정부 논리는 이런 거다. '정부가 지원했는데 4대강 영화 트는 건 아니지 않느냐.' 공무원들은 불똥이 튈 까봐 전전긍긍이고. 그런 흐름이 사실 가장 후진 거다. 작년 경우에도 기업에서도 후원 직전에 사인을 안 해주는 거다. 위쪽에서 전화를 받은 것 같기도 하고."

- 좀 더 큰 얘기를 해 보자. 한창인 대선 시기에 맞춰 한국독립영화협회가 다음 정부에 제안하는 독립영화 진흥 정책을 내놨다. 

"꼭 대선 때문에 나온 제안은 아니다. 지속가능한 과제를 총정리 해서 내놓은 것뿐이다. 제작지원 활성화를 비롯해 독립영화 정책이 다 후퇴했는데 예산은 계속 집행이 됐는가, 효율적으로 적재적소에 썼느냐 평가해 봐야 한다. 더불어 문화 다양성 문제나 독과점, 시민의 문화향유권 문제까지 다 짚었다. 이참에 박근혜 대선캠프나 문광위 국회의원에게 다 제출했다. 이번에 의제를 제기한 거고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 같다."

- 올 한해 독립영화계는 어떻게 평가하나.

"<두 개의 문>의 흥행도 있었고 여러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고 호응도 얻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인디스페이스, 인디플러스라는 전용관의 덕을 보기도 했는데, 영화 자체의 힘들은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고. 작년 서독제에서 선보인 영화들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았는데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지 못해 좀 아쉽다. 그 분위기가 독립영화계에서만 고착화된 것도 그렇고."

- 고착화는 어떤 걸 얘기하는 건가.

"대략 20개 관에서 1만을 동원하면 성공했다고 안도하는 패턴이 고착화됐다고 할까. <두 개의 문>이 과연 7만에서 끝나야 하나. 상영․배급 환경, 극장환경도 문제였고 작품의 힘들도 덜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영화들을 수용할 수 있는 관객들은 존재하는가도 문제고. 이번에 <터치>의 민병훈 감독님도 그렇고, 감독들이 그렇게 모두 이슈메이킹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다. 김기덕 감독을 보면서 이건 영화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영역이 모두 문제라는 걸 절감했다."

- 올 한해 두 편의 천만 영화가 나왔지만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등 독과점에 대한 문제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스크린쿼터는 여전히 아쉽다. 예술영화를 주로 트는 극장들도 73일을 간신히 채우는 실정이다. 기본적인 독과점 문제가 있고, 제작자들의 마인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들도 천만 영화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런 독과점에 대한 문제의식이 크지 않다. 주류 내에선 비판이 적은 거다. 자본의 욕망을 사회가 규제해주지 못하고 있다. 김치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배추김치만 먹어라 하는 격이다(웃음)."

- 이건 비단 이번 정권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방심하면 안 되는 게, 표현의 자유나 문화의 영역을 후퇴할 거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했다. 문화의 영역이 실질적으로 삶에 영향을 많이 안 준다고 치부해 버리는 거, 그게 참 후진 거다. '먹고 살기 힘든데 독립영화 지원을 해?'라는 식으로 시민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어렵긴 마찬가지고.

다음 정부에서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개혁적인 정부라도 '자연을 복원합시다'라면서 극장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해 버리면, 문화 영역은 금방 날라 갈 수 있다. 어떻게 정책을 짜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각 단위, 그러니까 인디문화나 클럽신, 예술영화, 독립영화 영역은 항상 긴장하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 사실 이번 정부들어 선 독립영화계가 안 싸우려야 안 싸울 수가 없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정책적인 의제를 놓고 많이 싸웠다. 헌데 이 정부 들어선 4대강을 막고, 강정을 막는 게 급했기 때문에 독립영화 지원이란 의제는 끌고 가지도 못했다. 이번 정부만의 문제도 아니고, 누가 대통령이 됐든, 사회적인 의제로서 지킬 건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거다. 예컨대, 박원순 시장이 취임했어도 서울시 문화예산은 삭감됐다. 한국영화가 우선순위도 아니고, (예산이나 정책지원의) 차례가 문화까지 내려오지 않는다."

 서울독립영화제 2012의 얼굴들. (위 좌측 위부터 아래 방향으로) <뜨개질>을 연출한 윤은혜, <JURY>에 출연한 배우 강수연, 안성기, 정인기, <소심인>을 연출한 개그맨 손헌수, 김태용 감독의 <그녀의 연기>에 출연한 박희순, 공효진, 영화 <영아>의 김고은 등.

서울독립영화제 2012의 얼굴들. (위 좌측 위부터 아래 방향으로) <뜨개질>을 연출한 윤은혜, 에 출연한 배우 강수연, 안성기, 정인기, <소심인>을 연출한 개그맨 손헌수, 김태용 감독의 <그녀의 연기>에 출연한 박희순, 공효진, 영화 <영아>의 김고은 등. ⓒ 서울독립영화제


"도망가고 싶었지만... 서독제의 1차적인 목표는 이뤘다"

- 대기업들은 어떤가. 멀티플렉스 내에 예술영화관도 운영하고 있긴 한데.

"생색내게 해주면서 받아낼 건 또 받아내자는 입장이다. 이번 영화제도 압구정CGV와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하는데, CGV에 왜 들어가느냐며 욕을 하는 감독들도 있다. 비판할 건 비판하고 받아낼 건 받아내고 해야 한다. 독과점은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게 맞고, 무비꼴라쥬와 같은 기획은 제안들을 먼저 더 많이 하려고 한다. CGV에도 압구정은 한 개관을 한국영화독립상영관으로 지정하라고 제안한다거나."

- 민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건가.

"인건비와 영사환경이 문제다. 감독들이 자기 영화를 틀어 보고선 자꾸 화면이 어둡다는 얘기를 한다. 영사 환경 개선을 위해 영진위에 요청한 상태다. 또 하나는 스태프의 근로환경이 열악하다는 점이다. 사무실도 없는 정도니까. 인디스페이스 자체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공간이니만큼 공적 지원도 필요한 부분인 거 같다. 무엇보다 독립영화 배급의 전초기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다."

- 반대로 인디스페이스가 멀티플렉스처럼 교차 상영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도 존재한다.

"딜레마 중 하나다. 독립영화전용관이 영화를 선택해서 틀어야 하나, <두 개의 문>처럼 흥행이 되면 한 영화만 상영해야 하나. 영화들은 많은데 프로그래머 취향에 따를 것이냐 프로그램을 더 강화할 것이냐. 가능하면 다양한 영화들에 기회를 줘야 하는데 또 그러면 여타 상상마당이나 인디플러스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얘기도 들리고. 평가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도 싶다."

- 영진위는 좀 바뀐 거 같나?

"영화계를 위해 일을 하느냐, 영진위의 비전을 위해 일을 하느냐는 물음들이 들린다. 인사치레나 얼굴 비추기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중평이다."

- 집행위원장을 맡은 지 올해로 만 10년이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지겹죠(웃음). 도망가고 싶었는데 도망도 못 갔고(웃음). 서독제가 민간 영역에서 진행됐던 1999년 사무국장부터 시작했는데, 그간 서독제가 독립 장편영화의 활성화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창작 활성화도 됐고, 독립영화전용관도 상업영화에 견줄만한 영화들이 나오고 있고. 1차적인 목표는 이룬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후년 40회가 중요하다고 본다. 관 중심의 단편영화제에서 이만큼의 페스티벌로 끌어와 독립영화계의 중요한 행사가 됐다. 이제 서독제에서 영화를 보여주려는 그 창작자들 욕망을 어떻게 더 북돋아 줄 것인가. 그리고 해외 독립영화도 보여줘야 하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나. 올해가 끝나면 영화제의 장기적인 비전들을 다시 논의해봐야 할 것 같다."

- 사실 문외한으로선 우리나라 영화제가 많다고들 한다. 실제로 적지 않기도 하고.

"페스티벌로 보면 예산보다 홍보가 많이 되는 게 바로 영화제다. 부산국제영화제도 예산에 비하면 홍보효과가 큰 거다. 스타가, 감독들이 오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고. 지자체가 관여하긴 쉬운데 또 잘하긴 어렵다. 우리 의지나 영화들만 있다고 해서 잘 되는 것도 아니고. 8억에서 15억 규모의 중소영화제들이 많다. 다들 영화제를 위한 영화제이기보다 정체성을 더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관객들이건 창작자들이건 만족시킬 수 있고."

- 영화제가 코앞이다. 영화제도 흥행이 중요한데(웃음).

"흥행, 잘 되야 한다(웃음). 올해는 더 파이팅을 했다. 시기가 약간 당겨지기도 했고, 다들 영화보는데 에너지를 많이 쓰면서 의견도 많이 구하고, 좋은 영화를 많이 틀기 위해 노력했다. 편수도 이번 정부 들어서 가장 많다. 전주나 부산, DMZ 영화제 상영작들도 최대한 검토를 많이 하고 공격적으로 많이 가져왔다. 해외 부문도 흐름에 맞고 쟁점이 있는 영화들이라 관객들이 만족할 거다. 기대해도 실망하지 않을 거다."

===2012년 서울 독립 영화제 관련 기사===

[서울독립영화제①]서울독립영화제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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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③]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집행위원장, "박원순 시장도 문화예산 삭감"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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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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