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영화는 언젠가는 보게 된다는 말이 있다. 여러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볼 수 있었던 기회를 몇 번이나 놓쳤던지라 이번 상영회는 며칠 전부터 기다려졌다. HIV(인간 면혁 결핍 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ADIS에 걸린 두 남자의 이야기는 내용만 봐서는 올해 DMZ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보았던 <당신에게 내가 없다면>과 비슷한 듯 보였다.

아픔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이겨내려는 자와 이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자포자기하며 살아가는 자. 인물의 성격만을 가지고 본다면 두 영화는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공간이 다르기에.

결코 두 영화의 본질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없다. 고유정, 노은지의 공동작품인 <옥탑방 열기>가 그리는 공간은 숨 막힐 듯 집과 건물이 꽉 찬 도시에서도 아주 작은 옥탑방이다. 하늘에 금방이라도 다을 듯한 옥탑방이 아픈 두 사람이 자고, 먹고, 숨 쉬며 대화하는 곳이다. 이 작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가브리엘은 새로 이사 온 옥탑방을 치우고 닦고 하면서 새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두열이란 존재와 알콩달콩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12년 동안 은둔형 인간으로 살아온 두열에게는 옥탑방을 처음 맞은 설렘처럼 계속해서 자신의 터전으로 삼기에는 스스로 고통이 따른다.

타인과 함께 살아본 적이 별로 없어 보이는 그에게는 자신을 사람으로 대해주는 가브리엘의 관심조차 때로는 무거운 짐이 된다. 그래서 그 작은 공간 안에서 창으로 갇혀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나비처럼 답답해한다.

 도시 한 복판의 아주 작은 옥탑방

도시 한 복판의 아주 작은 옥탑방 ⓒ 고유정, 노은지


영화는 그런 두열의 2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 동안 옥탑방을 떠나고 다시 오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떠날 때마다 가브리엘은 스스로 성처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두열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오랫동안 자르지 않고 남겨 놓았던 새끼손가락의 손톱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린 상처인것이다.

가브리엘에게마저도. 두열이 떠날 때마다 가브리엘은 아무말 없이 두열의 짐을 정리해주고 그의 거처와 내일을 진심으로 걱정한다. 떠난 뒤에도 자주 걸려오는 그의 전화를 피하지 않고 받아주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유는 모두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점점 시력이 사라져가는 자신임에도 한 사람을 위해서 밥을 하고, 청소하며 그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브리엘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작고 초라한 옥탑방이지만, 그럼에도 그 공간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브리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두열은 그런 그에게 또다른 상처이다. 12년 전 성매매의 경험으로 인해 병에 걸린 두열은 끊임없이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아파한다. 그런 일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삶은 달라졌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희망이란 존재는 희미해 보인다. 옥탑방은 그에게 단지 숨고 싶은 곳이다.

굳이 타인과의 소통이 필요없는 곳. 그곳에서 두열은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허비한다. 그런 그에게 열성적으로 밖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가브리엘의 노력은 힘든 요구였던 것이다. 떠날 때마다 쌓여가는 자신의 큰 짐들은 꽤나 버거워 보이지만 그래도 두열은 그곳을 오래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좁은 공간안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두 남자

좁은 공간안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두 남자 ⓒ 고유정, 노은지


가브리엘의 첫 소설은 <하늘을 듣는다>이다. '하늘을 듣는다'라는 행위는 하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옥탑방에서 가브리엘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행동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늘은 어쩌면 그에게는 소통하고 싶은 세상이다. 죽어도 혼자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의 의지는 그의 주변에 존재하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만나고 싶었던 가수 한영애를 출판 기념회에서 보게 된다거나 그의 생각들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다 그가 그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감염자들의 인권을 위해서 노력하고 갇혀있던 두열을 그와 함께하는 모든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게끔 헌신을 다하는 모습도 가브리엘의 천사같은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럼에도 두열은 또다시 그의 곁을 떠난다. 다시 올 것을 알기에 가브리엘 또한 그를 놓아준다.

힘든 현실들이 그들 앞에서 반복되겠지만 그래도 가브리엘은 또 한번 자신을 믿기로 한다. 두열의 마지막 말처럼 '사랑하고 싶다'는 것은 그들의 현실처럼 쉽지는 않다.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 봄이 오고 가고 다시 여름이 온다. 작은 옥탑방에서 느꼈던 열기들은 가브리엘과 두열이 함께 떠난 한적한 바닷가에서 증발되고 바다 멀리 사라진다. 제발 그 옥탑방 열기가 한 여름의, 한 시절의 뜨거운 사랑이 아니길 바란다.

 옥탑방 열기는 과연 사라질가?

옥탑방 열기는 과연 사라질가? ⓒ 고유정, 노은지



옥탑방 열기 윤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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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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