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에서 당당히 환호하고 있는 이재성

적지에서 당당히 환호하고 있는 이재성 ⓒ 이충섭


이재성(록키체육관·29)이 일본 원정 3연승을 거두며 '일본 킬러'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재성은 지난 11일 나고야 카리야체육관에서 열린 OPBF(동양태평양복싱연맹) 수퍼밴텀급 도전자 결정전에서 홈링 나고야 출신의 사토 세이고(27)를 맞아 화끈한 명승부를 펼치며 3-0 심판전원 일치 판정으로 통쾌하게 승리했다.

이재성은 신인왕·한국챔피언을 거쳐 2008년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뉴욕 등에서 3년 동안 여섯 경기에 나섰지만 2승 1무 3패로 그리 두각을 드러내진 못한 선수다. 하지만, 지난 2011년부터는 일본에 진출해 2011년 12월 11일 자신의 첫 일본 원정경기였던 마츠모토 아키히로를 1라운드 KO로 잠재우며, 2006년부터 6년 넘게 이어지던 한일전 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당시 마츠모토는 21세의 동양챔피언 출신으로 세계타이틀 전초전 성격으로 이재성을 제물로 삼고자 했으나 이재성에게 1라운드 1분 만에 충격의 KO패를 당했다. 이재성은 이어 지난 9월 오사카 원정에 나서 오구마 요이치(32)에게 1라운드부터 정타를 허용해 코피를 흘리며 KO패의 위기를 맞고서도 집념의 투혼을 발휘, 2-0 역전 판정승을 거둔 바 있다.

난타전 경기를 치른 이재성에게 불과 두 달 만에 시합이 들어온 건 사토 측의 적극적인 요청 때문이었다. 이재성이 비록 동양랭킹 3위에 등극한 상위 랭커지만 오사카 경기를 지켜본 사토 세이고 측이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라며 이재성과의 OPBF 도전자 결정전을 성사시킨 것이다. 사토는 10승(6KO) 1패의 전적으로 최근 6연승을 달리며 동양챔피언을 노리는 정통파 강타자다. 게다가 사토의 고향 나고야 홈링에서 경기가 열리는 탓에 이재성은 KO승이 아니고서는 결코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어려운 경기를 치를 것으로 예상됐다.

1회전부터 '불꽃' 튀기는 접전

 선제 잽으로 사토를 공략하는 이재성

선제 잽으로 사토를 공략하는 이재성 ⓒ 이충섭


메인이벤트로 열린 이재성 대 사토의 경기는 홈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 시작됐다. 사토는 군더더기 없는 원투 스트레이트와 잽을 앞세웠다. 주먹을 난사하지 않으면서도 유효타를 잘 때린다는 사토는 소문대로 물 흐르는 듯한 거침없는 공격을 펼쳤다. 이에 맞선 이재성은 사토의 공격 타이밍을 읽으며 자신의 장기인 왼손 잽과 훅으로 한 박자 빠른 공격을 펼쳤다. 1회전부터 그야말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사토는 일방적인 응원에 주눅이 들 줄 알았던 이재성이 침착하게 맞불 작전으로 나오는 것에 잠시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재성의 움직임을 충분히 연구한 듯 쉽게 말려들지 않았다. 사토는 이재성의 공격이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으면 바로 간결한 주먹으로 이재성의 안면을 강타했다. 이재성이 다양한 기술과 움직임으로 현란한 공격을 퍼붓는 상황이었지만, 사토의 날카로운 카운터에 이재성이 언제 걸려들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 경기가 진행됐다. 사토의 정확한 주먹에 이재성은 3라운드부터 코피를 흘리며 '혈전'을 치렀다.

 피로 얼룩진 이재성의 트렁크

피로 얼룩진 이재성의 트렁크 ⓒ 이충섭


설상가상으로 홈링의 텃세가 시작됐다. 이재성이 좋은 공격 흐름을 타는가 싶으면 주심이 끼어들어 '오픈블로우를 치지 마라' '상체를 너무 숙이지 마라' '상대방 주먹을 잡지 마라' 등의 주의를 주며 공격 흐름을 끊었다. 여차하면 경고를 반복하며 벌점 1점을 주기라도 하면 판정에 큰 영향을 끼칠 상황이었다. 주심의 장난은 휴식시간에도 계속됐다. 경기를 관전하던 한 재일교포는 "선수 상태를 점검하러 양 선수 코너에 오는 주심이 이재성 측에게 이런저런 주의사항만을 얘기했지만, 사토 측에 가서는 '이재성의 움직임을 잡으려면 복부를 때리라'고 코치했다"고 항의했다.

현란한 공격 퍼부은 이재성 "체력 강화해 압도적 경기 펼칠 것"

 이재성을 격려하러 라커룸에 찾아온 재일교포 응원단

이재성을 격려하러 라커룸에 찾아온 재일교포 응원단 ⓒ 이충섭


이재성은 이에 동요하지 않았다. 심판에게 짜증을 내며 항의를 하게 되면 되레 경고를 줄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니 동요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재성과 사토 두 선수는 경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더욱 치열한 난타전을 전개했다. 이재성은 신들린 듯 좌우로 흔들며 사토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을 잡아 다양한 공격을 퍼부었다. 사토는 사력을 다하며 역전 KO승을 거두기 위해 끝까지 위협적인 공격을 시도했지만, 끝내 이재성의 현란한 리듬 앞에 경기 종료 종소리를 듣고 말았다.

아무리 홈링의 텃세를 감안하더라도 이재성은 적극적인 공격으로 한 수 위의 기량을 보여줬다. 결과는 이재성의 3-0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 상대인 사토도 판정 결과를 깨끗이 인정했다. 일본 관중들은 단 한 명도 야유하지 않고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복싱 강국 일본의 수준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재성은 "200g 초과로 계체량을 1차에 통과하지 못했다, 추가 운동을 해서 겨우 통과한 데다가 경기 직전 화장실까지 다녀오는 등 최악의 컨디션이었다"면서도 "하지만, 일본 정통파 복싱스타일을 무너트리는 나름의 전략이 이번에도 유효했다, 스태프들의 작전과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다음 경기에는 체력훈련을 좀 더 강화해 더욱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겠다"고 덧붙였다.

 경기 후 서로 격려하는 사토와 이재성

경기 후 서로 격려하는 사토와 이재성 ⓒ 이충섭


 경기에 나선 이재성과 록키체육관 스테프들

경기에 나선 이재성과 록키체육관 스테프들 ⓒ 이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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